“사랑에 빠지면 늘 무언가를 창조하는 느낌일까?”
오랫동안 로맨스 영화는 곧 클리셰 영화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접했던 수많은 이성애 로맨스 영화들은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고, 사랑은 이렇고, 마치 고정관념을 가르치는 교과서처럼 재미없고 비슷비슷했다. 오죽하면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를 비웃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한 편 나올 정도다(넷플릭스 <어쩌다 로맨스>). 사랑을 다루는 영화가 싫은 게 아니다. 판에 박힌 이성애각본을 전제로 한 사랑 영화가 싫었다. 신랑의 친구가 신부를 사랑해서 영상 좀 찍어 달랬더니 죽어라 신부만 클로즈업해서 촬영하고, 스케치북에 글을 써서 고백하고, 이런 게 멋있나? 설레나? 좀 무섭지 않나? 이성애 로맨스 영화가 흥행할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내가 좋아했던 사랑 영화는 손에 꼽는다. 노년의 부부가 서서히 닥치는 죽음과 질병 속에서 사랑을 유지하려 애쓰는, 마지막 순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공포를 다루는 영화 <아무르>를 좋아한다. 경쾌하고 비밀스러운 리듬의 미스터리 소설 같은 사랑 영화 <아가씨>를 좋아한다. 계급도, 연령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뒤흔드는 사랑에 빠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 <캐롤>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퀴어 영화가 많다. 퀴어 로맨스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성애 로맨스 영화에 비교하자면 영화 스타일도 다양하고 ‘아, 다음은 이렇게 되겠지’ 싶은 뻔한 전개를 매번 경험하진 않았던 것 같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퀴어 로맨스 영화다. 스산한 여름날, 외딴 섬에서 탄생한 11일 간의 불꽃 같은 사랑. 주인공 마리안느(노에미 멜랑)와 엘로이즈(아델 에젤)는 거친 파도 속에 서슴없이 뛰어드는 성격 그대로 사랑에 뛰어든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오르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떠오르는 강렬한 사랑. 서로 사랑하는 두 여성을 위협하는 ‘죽음’은 곧 ‘결혼’이다. 가부장제 그 자체다.
사랑과 연대,
연인과 공동체
영화는 집요하게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시선을 따라간다. 사랑이란 내밀한 감정이라, 로맨스 영화는 자칫하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에 대한 독백만 줄줄 나온다든지, 오로지 영화 속 두 사람의 드라마에 매몰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객인 나는 그냥 ‘잘들 논다.’하고 별 관심을 잃어버리는 제3자가 되어버리는 ‘현자 타임’이 종종 찾아온다는 뜻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런 점에서 사랑이 중심이면서도 두 사람의 로맨스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사랑 외에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주변 여성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연대한다. 감시자가 떠난 섬에서 함께 산책을 하고, 모험을 하고, 놀이를 하고, 생활을 하며 사랑을 키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연인이자 주변의 여성들에게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영화 속 캐릭터나 서사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제공하는 시각적, 청각적 완성도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추측한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매우 상쾌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유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장면들, 바다와 숲과 초원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들, 잘생긴 여성들의 또렷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가득한 화면.
이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없다. 음악이라는 것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를 관객이 느낄 수 있길 바랬던 감독 셀린 시아마의 의도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음악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관객들이 느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감독의 의도는 성공했다. 영화 속에서 음악은 딱 두 번 등장한다. 두 번 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 순간을 꼭 영화관에서 즐겨 보길 권한다.
남성이 없는 상쾌한 스크린
더 이상 성차별적인 미디어를 용납하지 않는 많은 여성 관객들의 실천 덕에 여성 감독, 여성 주인공, 여성 서사를 갖춘 F등급 영화라든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지 여부가 새삼 조명되고 있다. 영화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절대적으로 추천한다. 이 영화는 아예 ‘역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여성이 지배한다. 이름이 있는 남성 배역이 한 명도 없으며, 남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역사적인 성차별과 가부장제의 횡포를 외면하고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유토피아를 그린 것도 아니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역사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결말에도 관여한다.
여러모로 상쾌한 영화 관람이었다.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추천한다.
- 퀴어 로맨스, 특히 레즈비언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
- 연기를 잘 하는 잘생긴 여자 배우의 얼굴 감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 미장센을 중요시하며 아름다운 영화를 감상하고 싶은 사람
- 바로크 시대의 미술과 음악, 그리고 그 뒷얘기를 좋아하는 사람
- 고성이나 폐허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 파도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 현대 사회가 배경이 아닌 시대극을 좋아하는 사람
- 남자가 엑스트라로만 나오는 영화를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