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짧은 호흡의 영상물이 좋다. 30분이 넘지 않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휙휙 보거나, 밥 먹을 때 배경으로 틀어놓기 좋은 작품들. 넷플릭스 드라마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는 한 에피소드당 25분 이내로 이 조건에 알맞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 나는 간단히 점심으로 먹을 파스타를 요리하면서 배경으로 이 드라마를 틀었다가 1주일 만에 시즌 3까지 돌파하고 말았다. 지금부터 <굿 플레이스>의 함정을 몇 가지 소개한다. 스포일러는 없다.
여기서요?! 절묘한 끊기 신공
<굿 플레이스> 에피소드는 언제나 마지막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다. 크리스틴 벨이 연기하는 주인공 엘레너와 함께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holy sh**t!!!” 하고 외치게 될 정도다.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절묘한 끊기 신공!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떡밥 회수’를 안 하고 질질 끄는 전개는 절대로 아니다. <굿 플레이스>의 서사 진행은 파격적일 만큼 시원시원하다. 그 에피소드에 깔린 복선은 웬만하면 20분 안에 회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 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복선이 드러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놀랍도록 쿨하고도 치밀한 서사다.
특히 시즌 1은 드라마 장르가 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놀라운 결말을 맞는데, 시청자가 의심과 상상력이 많다면 이 결말을 스스로 눈치챌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가 제공하는 세계관을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편이고, 애초에 요리할 때 배경에 틀어놓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정주행을 시작한 지라, 나중에 반전이 밝혀질 때 거의 턱이 바닥에 떨어져 골절할 뻔했다. 힌트를 주자면, ‘믿을 수 없는 화자’가 요즘 추리 소설의 대세라고 하더라. <굿 플레이스> 시즌 1의 화자는 누구일까?
본 적이 없는 신선한 캐릭터와 세계관
<굿 플레이스>의 세계관은 명백하다. 바로 사후세계. 천국과 지옥은 없지만, 그거랑 근본적으로 비슷한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가 있다. 그야말로 죽은 다음 좋은 곳에 가느냐, 나쁜 곳에 가느냐, 그것이 문제다. 좋은 놈은 좋은 곳에, 나쁜 놈은 나쁜 곳에 간다.
천국에 대한 상상은 종교나 문화권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테러 단체는 천국에 간 남자는 수백명의 여자들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받는다며 약을 팔기까지 한다. <굿 플레이스>의 상상은 당연히 그런 식으로 성차별적이지 않다. 가장 현대적인 천국에 대한 상상은 무엇일까? 바로 극단적인 ‘개인화’와 ‘맞춤형 서비스’다. 굿 플레이스는 복수의 ‘동네(neighborhood)’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동네마다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굿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점수’를 잘 받은 착한 영혼은 자신에게 딱 맞는 동네에 배치된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루어진다. 내가 살고 싶었던 집, 내가 먹고 싶었던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하고 싶던 일들! 어쨌든 ‘좋은 사람’만 모여 있는 곳이니 각각의 욕망을 추구한대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굿 플레이스에는 이런 요구를 들어주는 NPC 같은 만능 존재, 자넷이 있다. 자넷에 대한 설정도 매우 구체적이고 흥미롭다. 마치 우주의 원리와 컴퓨터의 원리가 반반씩 섞인 것 같은 작동 원리를 가진 신비한 존재다. 자넷의 존재를 일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몇 개의 에피소드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반면 배드 플레이스는 굉장히 개인적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옥이다. 배드 플레이스에 간 영혼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기반으로 고문 당한다. 자신의 가장 혐오스러운 점과 부끄러운 점이 전시되고 놀림 받는다. 그야말로 사후세계에 대한 가장 최신형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세계관에 떨어진 네 명의 주인공 엘레너, 타하니, 치디, 제이슨. 두 명은 미국인이고 한 명은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영국과 프랑스에서 자랐으며, 한 명은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세네갈에서 자랐다. 출신도 인종도 성격도 삶도 너무나 다른 이 네 명은 죽은 다음에 만나 기묘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확실한 건, 네 명 다 결정적인 단점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들의 결점에 대해 조금도 변명하거나 감싸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극단적으로 이들의 결점을 밀어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시청자인 나는 이들을 자꾸 변호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정말 신비한 일이다. 결점이 바로 이들의 가장 생생한 개성이기 때문일까? 어차피 드라마에 나올 법한 말끔한 외모의 매력적인 배우가 연기하는 허상의 캐릭터이지만, 이런 결점만큼은 정말 ‘인간적’이어서 그런 걸까? 이 모든 고집스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곳’에 갈 수 있을까?
세상에서 제일 웃긴 철학 교육
좋은 사람은 좋은 곳에, 나쁜 사람은 나쁜 곳에 간다. 그런데 잠깐. ‘좋은 사람’이라는 게 대체 어떤 사람이지?
이건 생각보다 깊은 질문이다. 무엇이 선인가, 무엇이 악인가 따져 보는 일은 곧 인간이 3천년 정도 해 온 ‘철학’ 그 자체다. 인간의 사회적 세계는 선과 악을 어떻게 규정하고 구분하느냐에 따라 기틀이 달라진다. 이 철학을 기반으로 법과 제도, 문화와 규범이 생긴다.
<굿 플레이스>에서는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철학적 문제를 파헤친다. 그것도 정공법으로! 드라마는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는 서양 철학의 기초적인 도덕론을 정면으로 소개한다. 때로는 짧은 대사로, 때로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 그 자체로.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내내 배웠던 서양 철학의 역사가 정말 쉽고 웃기게 요약되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깨달을 수 있게, 그리고 너무 교육적이라며 흥미를 잃지 않게 적절히 양념처럼 들어가 있다. 서양철학사가 ‘양념’인 드라마라니!
아이러니, 딜레마, 반어법,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굿 플레이스>와 개그 코드가 맞을 것이다. 바로 내가 그렇다. <굿 플레이스>에는 대사 하나 하나마다 깨알 같은 블랙 조크가 콕콕 박혀 있다. 어떨 때는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여자한테 웃으라고 강요하는 사람이나, 비행기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사람은 무조건 배드 플레이스에 떨어진다는 설정이 그렇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본 이후로 버스 안에서 신발을 벗고서 냄새를 풍기는 인간을 목격할 때마다 속으로 ‘배드 플레이스에 떨어질 놈…’이라고 중얼거리며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하게 되었다.
<굿 플레이스>는 2019년 10월부터 매주 시즌 4의 새 에피소드를 공개하고 있다. 나는 하나 하나가 너무 소중해서 시즌 4가 완결 날 때까지 허벅지를 찌르며 기다리다가 한 번에 볼 생각이다. 아직 한 화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바로 시즌 1부터 정주행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