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여성영화제의 사람들 9.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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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여성영화제의 사람들 9. 김소영

신한슬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로 21년 간 여성 감독, 여성 배우, 여성 영화들을 소개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돌아왔다. 2019년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예년보다 다소 늦은 8월29일부터 9월5일까지 열린다. 8월3일부터 9월30일까지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는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있다. <핀치>가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 여성영화제가 배출한 감독들, 여성영화제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20년에 대해 들었다. 아홉 번째 인터뷰는 2019년 제21회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을 맡은 김소영 감독이다.

 


여성영화제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는지?

1996년, 이혜경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셨다. 여성영화제 프로그램 디렉터를 해달라고. 그래서 하게 됐다.

계보를 세워본다면, 이번에 30주년을 맞은 바리터부터 시작된다. 90년, 91년에 바리터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전국 여성노조단체 순회상영을 했었다. 96년에는 바리터를 같이 했던 김영 집행위원이 페미니즘 영화제를 했다. 그게 사실은 서울여성영화제의 전신이고 기원이다. 페미니즘 영화제에서 <버진 머신>을 비롯해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많이 상영했다. 아주 잘 됐다.

당시 저는 여성신문과 한겨레21에 영화평을 쓰고 있었고, 시네 페미니즘에 대해 책을 쓰기도 했다. 저 뿐 만 아니라 변재란 선생님도 영화와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기도 하셨다. 변영주 감독은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퀴어영화제도 시작됐다. 말하자면 영화가 90년대 중반부터 약간 문화의 시대를 여는 데 기여를 한 거다. 그런 식의 ‘으쌰으쌰’가 있었다.

지금은 영화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투운동을 중심으로 해서 여성운동이 재전선화 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영화가 뭔가 운동을 촉발하고,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끌어안게 하는 기능을 했다. 영화를 보면서 공분하고, 격분하고, 공감하고. 그렇게 영화를 통해서 페미니즘이 담론화 되고 젠더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이혜경 선생님이 서울여성영화제로 이어가신 것이다. 여성영화제에서는 여성 영화인 뿐 만 아니라 여성문화 활동가들이 결합해서 판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당시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쟁점> 섹션이다. 영화만 트는 게 아니라 그 당시 핫한 이슈로 쟁점을 만들어서 사회학과 여성학을 하는 두 명의 프로그래머가 토론이나 포럼을 할 수 있도록 초빙한 것이다. 당시에는 서울대 사회학과 김현숙 선생님과 이대 여성학과 김은실 선생님을 초청했다. 사람들이 영화제에서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영화를 같이 보며 난상토론하고, 쟁점화하고, 역사를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쟁점> 섹션이 21년 동안 유지됐다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영화제에서 인상 깊게 본 영화를 꼽는다면?

1회 때 권은선 프로그래머가 맡았던 독일 여성영화 특별 섹션이 너무 좋았다. 특히 <창백한 어머니> 라는 영화가 좋았다. 제가 독일 페미니즘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남인영씨가 프로그래머를 할 때 캐나다의 레아 풀 감독 특별전을 했는데 그것도 참 좋았다. 또 대만 여성영화제 회고전도 정말 좋았다.


세계 여성 영화 세션을 아끼시는 것 같다.

저는 사실 역사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사는 사건에 맥락을 만들어준다. 특히 요즘 같은 SNS 시대에는 모든 것이 다급하잖아요. 여성의 삶이 늘 각박하다보니, 항상 비상사태고. 그것을 긴 호흡으로 풀어주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여성주의의 역사, 여성영화의 역사.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바꿨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고, 이런 역사는 희망이기도 하다. 꼭 이렇게 반복해서 살 필요는 없고, 전 세계 다양한 문제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지혜를 준다.

그래서 여성영화제에 오면 긴 호흡과 쟁점을 통해서 비상사태의 핵심을 심도 있게 논의하면서, 우리의 역사적인 맥락에 대한 지혜와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의 프로그래밍이 중요한 거 같다. 지금 현재의 쟁점도 있지만, 역사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역사를 통해 여성영화제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보는지?

예, 저는 해 왔다고 봐요(웃음). 1회 때 프로그램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게 참 좋은 거 같다. 어떻든 우리가 원칙을 가지고 유지해왔고 관철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20년 뒤에는 여성영화제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는지?

우리가 영화 외에 뉴미디어에도 여성 미디어 크리에이터가 있잖아요. SNS나 유투버, 웹툰, 사진작가 등등. 이런 사람들과 좀 더 결합했으면 좋겠다. 확장된 시네마(expanded cinema) 세션을 만들어 그 쪽으로 초청해도 좋고, 아니면 그 사람들이 시네마를 바꿔도 좋고. 그들이 관객으로도 오고, 우리도 그들의 작품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장소(venue)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유투브도 스크린이잖아요. 웹툰은 스크린이 아니지만, 스크린이 등장하긴 하고. 전에 여성영화제에서 이민옥 작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을 극장에서 틀어서 즐겁게 본 기억이 있다. VR이나 AR도 적극적으로 도입을 해야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여성 창작자들이 여성영화제에 자유롭게 결합하면 좋겠다. 전부터 제 꿈이다. 올해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을 보고 이아리 디자이너를 섭외해서 포스터, 굿즈로 결합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것을 살려서 좀 더 적극적으로 결합했으면 좋겠다. 여성 뉴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이 복작복작하게 여성영화제를 돌아다니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럼 좋잖아요. 영화는 영화대로 가고. 시네마는 포괄적인 뜻이니까. 여성영화제가 포섭하는 게 아니라 포섭당하는 거죠. 그런 친구들이 여성영화제를 포섭해주기를 바란다(웃음). 와서 접수하고(웃음).


나에게 여성영화제란?

나에게 여성영화제는 무엇이다, 라는 정태적 이미지보다는,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막 변해가는, 그런 다이나믹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가끔 서서 설명도 해 주고(웃음), 긴 역사의 그림자를 안고 가는 영화제이길 바란다.

또한 스태프들의 복지와 안녕이 좀 더 안정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프로그래밍이 문제였던 적은 별로 없는 거 같다. 굉장히 좋은 여성 감독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하지만 조직 부분은 좀 다르다. 새로운 프로그래밍보다는 새로운 조직을 어떻게 구현을 하느냐, 이게 항상 문제인 거 같다. 어떻게 긴 호흡으로, 지혜롭게, 구성원들이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나가느냐, 이게 항상 우리의 숙제인 거 같다.

사회적 도움이 많이 필요한 거 같다. 여성 영화와 여성 문화운동에 관심이 많은 여성 시민들이 후원할 수 있는 형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NGO로서 21년을 왔다. 꾸준하게 자율적으로 여성 문화나 영화 쪽 활동가, 학자, 프로그래머들이 이렇게까지 해서 온 건 좋은데, 그 과정에서 내부 스태프들이 분담해 온 고통도 분명히 있다. 이제는 스태프가 좀 더 화평하고 안정적이 되어야 할 때다.


2019년 9월5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텀블벅 펀딩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여성영화제의 친구, '여친'이 되어주시는 분께 이제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여성영화제 굿즈와 한국 여성 영화감독의 DVD를 선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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