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2018)>
장혜영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어떤 이는 음악을, 어떤 이는 서사를, 어떤 이는 주인공을, 어떤 이는 멋진 대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더라도 재밌는 영화면 된다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기준으로 영화를 보지도 않을뿐더러 한 개인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를 만나는 경우도 흔치 않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더욱더. <어른이 되면>은 나에게 딱 맞는 영화였다. 아름답고 재미있으면서도 여러 질문이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와 감동의 눈물과 웃음을 변해버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감독의 내레이션과 노래 가사는 가슴에 훅 들어와 균열을 냈다.
시설은 혜정의 선택도 혜영의 선택도 아니다
부제에 드러나듯 이 영화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와 흥 많은 막내 동생의 시설 밖 생존일기’다. 혜영은 서른이 넘어 자폐가 있는 발달장애인인 동생 혜정과 함께 살기로 선택했다. 혜영은 묻는다. 동생이 시설로 가게 된 것은 동생의 선택도 아닌데 대체 누구의 선택이냐고. 시설을 만드는 것 외에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의 강요는 아닌가. 그리고 혜영은 결심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포기하는 일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서 혜영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혜영이 20대 친구들과의 식사하면서 떠올리는 자유에 대한 그의 사유와 한쌍이다.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얻는 자유는 진정 자유로울 수 없음을”어느 한쪽의 희생과 양보로만 이루어지는 삶, 자유, 돌봄은 그가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닐 것이다.
동생을 장애인시설에서 데려와 함께 살 방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혜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설에 보내졌으니 함께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많다. 이제 혜영도, 혜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비장애인인 혜영은 장애인이 혜정과 어울려 사는 것을 배우고 혜정은 시설 밖 사회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영화 초반은 마치 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국판을 보는 것처럼, 우리 사회 장애인복지가 얼마나 엉망인지 알게 된다. 시설에서 나온 동생이 복지를 받으려면 서울시민이 된지 6개월이 지나야 된다든가,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의 부재, 그리고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받기 위해 '장애인등급심사'라는 30분간의 면접을 받았으나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 등.
함께 살기, 쉽지 않은 일
비장애인들만이 있는 사회에서 오랜 생활한 사람이 장애인과 함께 사는 일을 시작하려면 배우고 익혀야 할 게 많다. 모든 사람관계가 그렇듯 서로 다른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동거를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장애인끼리도 어려운 일이다. 장애유형에 대해, 서로의 특성에 대해 익숙해지는 일은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게 분투하는 일상을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린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혜영은 노들야학에서 동생 혜정을 영화 수업도 받게 하고 춤수업에도 들어가게 하지만 동생은 그리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동생이 춤을 좋아한다고 모든 춤수업이 동생에게 맞는 것은 아닐 테니. 수업을 일단 뒤로 한 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제주도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제 혜영의 친구들은 혜정의 친구가 되는 과정에 들어선다. 노래하는 유인서는 혜정의 노래선생님이 된다. 처음에 안 될 거 같은 박자 맞추기도 익힌다. 가사를 바꿔서 부르기를 좋아하는 동생이 어느새 본 가사로 노래 부르기까지 한다. 그렇게 자매는 조금씩 배우고 성장한다.
어른이 되면, 권리를 유보하는 말
장애인시설에 들어간 혜정이 하고픈 걸 못하게 할 때면 가장 듣던 말이 '어른이 되면'이었다고 한다. 혜정은 묻고 또 물었다. "그럼 난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어?" 그 말은 듣는 순간 나는 문득 청소년들이 떠올랐다. 청소년 인권을 제한하던 그 말을 장애인영화에서 들으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나 연애할 권리 혹은 정치적 권리를 제한할 때면 상투적으로 쓰던 말이 ‘어른이 되면’이 아니었던가.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는 말은 현재의 권리를 유보하고 제한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변명이다. 혜영의 독백처럼 도대체 언제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변명의 말이 사라지는 날은 언제 어떻게 해야 오는가.
그래서일까, 영화에서 나오는 노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의 가사는 영화의 질문과 딱 맞닿는 것 같았다. 그냥 나이 든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 노래가사처럼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 비장애인이 편하게 살자고 장애인들을 시설에 넣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세상은 이미 죽음의 세상이 아닐까? 그러한 사회가 정말 상냥한 세상일까?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다보니 문득 나에게 자꾸 스스로 묻는다. 나도 정말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혈연가족을 넘어
훌륭하게 잘 만든 영화임에도 이 영화가 왜 국제여성영화제에 상영된 것일까 질문을 던지던 순간, 장혜정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때 말한다. 영화는 새로운 가족에 대해서 말한다고. 영화에서 혈연가족은 혜영과 혜정 둘 뿐이다. 나머지는 혜영의 지인들이다. 지인들이 혜정과 친구가 되어 놀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며 돌본다. 있는 그대로 봐줄 것. 차별의 시선은 거두는 가장 쉬운 태도다. 그들은 혜정을 쉽게 동정하거나 터부시하지 않으며 서로에게서 배운다.
가족. 여성과 장애인과 청소년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사회적 소수자에겐 애초에 가족이 가족다운 경우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에도 우리는 ‘완벽한 가족’이라는 환상에 기대 살고 있다. 영화는 전통적 가족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자립의 길을 모색한다. 연약한 발달장애인 자매와 그 친구들이 함께 “연약한 존재들은 비밀”에 귀 기울이며 아름다움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연약한 존재들은 비밀을 안고 있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비밀
그런 아름다운 비밀
- 영화 속 노래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