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 유관순 이야기>, 2019, 조민호
어둠으로 빛을 말하다
어둠에게 미덕이 있다면 단 하나, 빛을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리라. 고난을 어떻게 마주하는지, 고난의 시기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통해 사람의 면모나 공동체의 실체가 드러난다. <항거 : 유관순 이야기>는 어둠의 시기에 빛을 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구체적으로는 100년 전 유관순을 비롯해 식민지 억압에 저항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영화는 찬란하게 빛나는 3․1독립만세운동을 그린 것이 아니다. 어쩌면 후일담으로 읽힐 수도 있을 3․1운동 이후 감옥에서의 모습을 담았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투쟁의 의지를 내려놓지 않았던 여성들이 감옥에 갇힌 채 서로 갈등하며 독립의 마음을 벼리는 일상과 투쟁을 그린 영화다.
그래서 유관순이 만세운동을 조직하던 모습은 별로 없다. 어떤 이는 아쉬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서사의 장점은 세상의 이목을 받지 않는 폐쇄된 공간인 감옥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유관순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보이는 곳에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든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했음이 감옥에서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감옥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일제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는 간수와 형무소장에게 맞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아가 감옥에서의 행적은 유관순의 곧은 성격을 더욱 잘 드러낸다. 3․1독립만세운동으로 1~2년형 정도를 받았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관순이 7년형이나 받았던 이유는 법정모독 때문이다. 그녀가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재판을 받지 않는다"며 재판정을 소란스럽게 해서다. 신념을 숨기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녀는, 일본침략자들이 보기에 성가시고 버릇없는 ‘독종’여성이었을 것이다. 이는 영화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처절하게 투쟁하는 그녀를 보며 의아해하던 조선인 배식담당자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라고 묻자 “그럼, 누가 합니까?”라고 답한다. 독립운동의 주체로 스스로 자각한 그녀에게 적당히 하자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흑백영상의 장점
어둠이 빛을 돋보이게 한 것은 단지 영화의 서사만이 아니었다. 영화는 감옥에서의 일상을 흑백으로 그려냄으로써 감옥에 갇힌 인물들의 표정을 잘 포착해냈다. 유관순(고아성 역)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눈빛, 거칠어져 부르튼 입술이 흑백 영상에 잘 드러난다. 다 해진 수의, 가혹한 탄압의 공간, 벽의 차가운 그림자, 겨울 감옥의 이미지 등은 마치 100년 전 서대문 형무소를 보는 듯 하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감옥에 결박된 신체와 자유가 박탈된 상태를 흑백의 색깔 없음으로 표현한다. 반면 열심히 만세운동을 조직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유관순의 회상신은 컬러 영상으로 묘사한다. 그녀가 자유롭게 살아있던 순간, 아니 생기가 넘쳤던 시간들이다. 흑백과 컬러 영상의 교차는 유관순의 성격과 일생의 다면성을 보여주는 장치다. 무표정의 굳게 다문 입술, 고문으로 부르튼 투사로 고정된 유관순 이미지를 탈피하게 해준다. 감옥에 오기 전의 활달하고 밝은 모습을 담는데 적절하다.
그럼에도 회상씬에서 친구들과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조직하며 다니는 모습이 없는 것은 아쉽다. 독립기념관이 발간한 유관순 전기에 따르면, 유관순은 당시 여학생 평균보다 약 20cm나 큰 장신으로, 머리에 수건을 쓰고 고을을 다니며 독립운동 참여를 설득했고, 시위 당일 무단 발포하는 일본 군대의 총구를 온몸으로 막아서며 싸웠다고 한다. 그녀의 강단진 모습은 아우내장터 시위장면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과 화목했던 장면이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쓰러지는 장면에 오열하는 모습만 나온다.
어쩌면 감독은, 17세 소녀라면 으레 감옥에 갇혀서 단란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편견과 가족주의 감수성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상고를 포기할 정도로 독립 의지가 강했던 그녀가 그리워하고 걱정했을 사람은 오빠만이 아니었을 텐데, 영화 속 유관순은 오직 오빠의 안부만을 묻는다. 진짜 유관순이라면 만세독립운동을 조직했던 이화여고 선후배들, 같이 만세운동을 조직했던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걱정했을텐데 말이다.
국가주의에 포획되지 않은
그럼에도 이 영화가 독립운동에 접근하는 관점은 좋다. 독립운동을 다룬 많은 영화들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경도돼 있거나, 오직 한 인물만을 영웅적으로 그리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나오고, 만세운동에 참여한 여러 사유도 나온다.
8호실에 갇힌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유, 신분, 참여 정도는 다 다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유로 거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해방을 염원한다. 양반도 있고 기생도 있고 평민도 있다. ‘기생년’과 한 옥사에 있는 것을 찝찝해 하고 유관순이 선동해서 자기 아들이 죽었다며 원망하던 동네 아주머니도 있고, 임신한 여성도 있고, 유관순과 함께 이화학당에 다녔던 선배도 있다. 어떤 이는 잠깐 후회하기도 하고, 선동자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갈등도 있고 배신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갈등하면서 역동적으로 서로에게 배우고 보듬는다. 입체적인 여성들의 관계는 1920년 3월 1일 감옥에서 만세운동을 다시 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여준다.
특히 기생 30여명을 데리고 만세를 불렀던 기생 김향화(김새벽)의 대사가 그렇다. 나라가 있을 때도 삶이 고달팠다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천해도 인간 대접을 받던 우리가 성노리개가 아닌 변기통과 다름이 없게 되더라구요.
애국주의 때문에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니다. 그녀가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어서다. 그녀의 대사는 기생인 여성에게 식민지전쟁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계급과 성별 등, 제국주의 전쟁 상황에서 여성이 받는 여러 교차적 억압을 드러낸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이화학당에 다니는 배운 사람인 유관순과 그녀는 다른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함께 독립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유 때문에,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김향화는 출소한 이후 만주로 떠나는 게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오며 생각해본다. 3․1운동 100주년이라 떠들썩한 2019년, 우리가 <항거>를 통해 되새기는 것이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라면,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한국에 사는 여성에게 과연 억압은 무엇인가. 불법촬영과 채용 성차별이 난무한 시대에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는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