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움 4. 더 와이프

알다영화여성 주인공

블록버스터 움 4. 더 와이프

명숙

편집자 주 :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흥행에 크게 성공한 대작 영화를 '블록버스터'라 부른다. <핀치> 사전의 '블록버스터'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막대한 제작비는 들이지 않았을지라도, 흥행에 크게 성공한 적은 없을지라도,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숨겨진 대작 영화를 소개한다. '움'은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여성 및 일반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다(남성은 맨움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움의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지배하는 그 날까지.

 

<더 와이프>, 2017, 비욘 룬게

세상의 아내들은 자신의 꿈을 쫓아야 한다

글렌 클로즈의 빼어난 연기력으로 화제가 되었던 <더 와이프>. 극장 안에는 중년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무엇을 상상하며 아니, 무엇을 기대하며 영화를 보러 왔을까?

<더 와이프>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남성 작가의 글이 사실은 그의 아내가 쓴 작품이었다는 내용이다. 아내는 스웨덴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영광을 독차지하려는 남편에게 환멸을 느낀다. 그러나 <더 와이프>는 단순한 대필작가 서사나 부부 간의 뻔한 애증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의 꿈 실현에 대해

<더 와이프>는 조안(글렌 클로즈 역)이라는 한 여성이 남편 조셉(조나단 프라이스 역)의 대필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개인의 사랑과 글쓰기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조안은 남편의 성공을 위해 킹메이커로 살았거나 사랑 때문에 작가로서의 성공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쓴 작품을 읽히고 싶었던 작가의 꿈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려는 주체적 선택이었다. 단순히 그녀를 피해자로만 해석하는 것은 너무 평면적이다. 그렇게 해서는 조안의 캐릭터가 납작해져서 그녀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영광을 들여다볼 수 없다. 어쩌면 조안을 피해자로만 보는 것이 오히려 그녀의 주체성을 탈각시키는 게 아닐까.

조안의 대학시절, 영문학과 교수인 조셉이 소개해준 여성 작가는 “작가라면 글을 써야한다”는 그녀에게 “여성의 대담한 문체를 대중들은 못 견디죠”라며 충고한다.

“글을 쓰지 말아요. 작가라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써서 읽혀야 해요.
그런데 여자가 쓴 글은 출판되지 않아요. 출판되더라도 읽히지 않고 서재에 묵혀있어요.
출판사 임원, 비평가들은 죄다 남자거든요. 책으로 나온대도 여자 책은 아무로 안 읽어요.”

이런 비관적인 충고는 그녀가 출판사에서 보조로 일하면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출판사의 남자들은 여성의 글에 대한 편견을 늘어놓는다. 마침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글 쓰는 능력이 떨어졌던 사랑하는 남자 조셉이 그녀의 옆에 있었다. 조셉의 이름으로 책이 출판되는 것은 ‘읽히는 책을 내고 싶었던 조안의 욕망’을 실현하는 ‘공동작업’이다. 처음에는 남편의 글을 단순히 교정 보던 것이 아예 전업이 되어, 나중에는 아이를 돌볼 시간조차 없이 하루 8시간 꼬박 글을 쓰는데 할애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동작업이니 믿을 만했다. 그러하기에 처음 책 출판이 결정됐을 때 ‘우리 책’이 출판된다며 서로 손을 잡고 뛰며 즐거워했다.

그래서 조셉의 전기를 쓰겠다며 작품 탄생의 비밀을 캐려는 나대니얼에게 그녀는 "당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여성이 자기 욕망을 그대로 실현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타협의 쓰라림과, 그럼에도 타협으로 탄생된 작품을 대중들이 알아봐줬을 때 느끼는 환희, 그 겹쳐진 감정을 남성인 그가 알 수 없을 거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 편 조안을 향한 선배 작가의 충고는 여성들이 평생 듣는 말이자 여성을 길들여왔던 구조이기도 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조안은 ‘사랑과 작가로서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대필 작가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선택의 비참한 결과를 직면하기 전까지 그녀는 결혼관계, 즉 공동작업을 인내한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조안처럼 그림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물리학을 연구하는 부부로 상징되듯, 이제는 부부가 각자의 꿈을 각자 실현할 수도 있는 사회가 열렸다.

* 이하 영화 <더 와이프>의 내용 누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을 가로채는 남편들과 미스테리 구조

조안은 노벨상 수상 결정을 듣고 “당신 아내가 노벨상을 탄대”라고 할 정도로 대필작업을 부부의 공동작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스웨덴 국왕이 직업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난 킹메이커에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 조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벨상을 수상하러 간 스톡홀름에서 남편의 속내가 드러난다. 그는 물리학 부부에게 조안을 소개할 때 “제 아내는 글을 안 써서 다행이에요”고 한다. 그녀의 공로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수차례 바람을 피우던 조셉은 스톡홀름에 가서도 젊은 카메라 기자를 꼬시기 위해 호두에 글을 쓰려던 것이 발각됐다. 남편이 여자를 유혹할 때 쓰던 수법이다. 남편의 전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도, 조안을 꼬실 때도 썼던 것이다. 클리셰다. (사실 남편이 아들의 작품에 대해 평했던 내용은 젊은 시절 아내의 작품에 했던 평과 동일하다. 인용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시도 같다.)

조안은 연설문에 뻔한 얘기로 자신을 거론하지 말 것을 요청하지만, 오히려 조셉은 아내를 그의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이라며 평범한 내조를 하는 아내로 끌어내린다. 그는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작품보다는 ‘성공’에 관심 있는 남자다.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되지 않는 작품을 보는 고통을 공동작업으로 이루어낸 대중의 인정이라는 기쁨으로 상쇄하며 견뎠을 세월, 그러나 남편은 그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공을 독차지하려 한다. 그녀는 수상식에서 뛰쳐나오며 “더 이상은 못해. 이 수모를 못 견디겠어”라며 이혼을 선언한다.

어쩌면 이런 결말은 ‘공동작업’의 성과를 가로채는 대부분의 남편들의 행각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결혼이라는 공동작업을 위해 여성들은 헌신하지만, 남성들은 자기가 잘한 결과일 뿐이라고 우기며 공을 가로채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글렌 클로즈의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소감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양육자 상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쫓아야 한다는 수상소감은 영화 <더 와이프>에 대한 감상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영화는 작품 탄생의 비밀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는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가부장사회의 결혼제도가 어떻게 아내들을 착취하는지, 그 은밀한 구조를 은유하기에 적당한 서사 구조다. 일부 아내들(조안)의 전략이 가져온 비참한 결과를 접하는 복잡한 심리를 표현하기에도 좋다.

물론 글렌 클로즈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졌을 것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표정,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 그러면서도 박탈감을 느끼는 자아의 복잡한 심정을 대사가 아니라 표정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영화는 내면을 표현해야 하기에 유난히 등장인물의 클로즈업이 많다. 남편이 수상연설에서 작품의 실제 창작자인 자신을 밝히지 않을까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던 글렌 클로즈의 표정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조안의 새 삶을 기대하며

결국 남편은 그가 자주 읊던 제임스 조이스의 시처럼 눈 내리는 날 쓰러진다. 카메라는 눈 내리는 창밖을 비춘다. “그의 영혼이 천천히 쓰러진다... 이 세상에 힘없이 내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눈은 힘없이 마치 지금의 마지막 하강인 듯 산 자와 죽은 자 위에 떨어진다.”(제임스 조이스의 시)

눈이 걷히고 나면, 산 자는 산 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남편 조셉이 죽고 비행기에서 창작메모 노트를 펼치는 그녀의 표정에 생기가 넘친다. 남편의 죽음은 그녀의 창작 욕망을 잠재우지 못한다. 오히려 남편의 죽음이 그녀가 작가로서의 삶을 열 수 있게 한 것 아닐까. 남편의 영혼은 하강했으나 아내 조안의 영혼은 이제 올라가는 길만이 남은 것은 아닐까. 조안의 새로운 삶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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