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움 5. 마담B

알다영화여성 주인공

블록버스터 움 5. 마담B

느티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편집자 주 :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흥행에 크게 성공한 대작 영화를 '블록버스터'라 부른다. <핀치> 사전의 '블록버스터'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막대한 제작비는 들이지 않았을지라도, 흥행에 크게 성공한 적은 없을지라도,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숨겨진 대작 영화를 소개한다. '움'은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여성 및 일반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다(남성은 맨움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움의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지배하는 그 날까지.

 

<마담B(Mrs.B. A North Korean Woman)>, 2018, 윤재호 감독, 다큐멘터리

여기, 이름을 말하지 않는 한 여성이 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좀처럼 웃음을 보여주지 않는 얼굴이다. 돌처럼 굳은 그 얼굴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쉽사리 어떤 표정이라 단정할 수 없는 그 복잡한 얼굴은 그의 삶이 응축된 결정 같았다.

마담 B. 그는 2003년 탈북했고, 2014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그이와 같은 사람을 ‘탈북자’ 혹은 ‘새터민’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통일부가 사용하는 공식문서에서는 법률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쓴다. 이러한 단어들이 마담B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그가 한때 북한에 거주했고 지금은 남한에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그 사이 마담B의 삶은 복잡한 경로를 그렸다. 영화는 그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이 그가 정체를 숨겨야만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자신의 얼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직업, 가족들의 얼굴까지 모두 공개한다. 그의 이름이 ‘마담B’인 것은 아마도 쉽게 무엇 하나로 가둘 수 없는 그의 복잡한 정체성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영화 같은 삶

영화 포스터의 선전문구가 말하듯 그의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마담B는 탈북 후 인신매매 브로커에게 농촌으로 팔려간다. 비참한 전개를 예상하겠지만, 이후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를 산 남편과 시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를 따뜻하게 대하고 그가 북한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것을 내버려 둔다. 그들은 심지어 마담B의 북한 가족들(남편과 두 아들)이 탈북해 남한으로 떠나기 전, 자신들의 집에 머무는 것도 허락한다. 중국인 남편은 마담B의 마음을 헤아려 아이도 갖지 않기로 한다. 마담B는 신의와 애정을 보여준 중국인 남편에게 ‘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안정될 수 없었다.

마담B는 팔려온 뒤 딱 1년만 열심히 일해 도망가자고 마음먹었다. 1년 뒤 모은 돈을 헤아려보았다. 북한에 있을 때는 쉽사리 엄두 못 낼 큰 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 중국에 사는 사람이 되어 보니 그 정도는 보잘것없는 돈에 불과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북한 가족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합법적인 신분을 갖지 못한 외국인 여성이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은 불법적인 일밖에 없었다. 북한 여성은 중국 공안에 적발되면 북한 송환이 원칙이다. 불법적인 일의 피해자였던 마담B는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아가씨’를 고용해 노래방에 파견해 돈을 벌기도 하고, 인신매매 브로커 노릇도 한다. 영화 초반이 비추는 것은 ‘탈북 브로커’로서의 마담B다. 그는 카리스마 있는 수완가로 예민한 탈북 과정을 빈틈없이 지휘한다. 

마담B의 삶을 채운 아이러니가 폭발하는 것은 그가 남한행을 결정하면서부터다. 북한 남편과 두 아들을 한국으로 먼저 보낸 후 그도 한국행을 결심한다.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을 넘어 태국 방콕까지, 6개월이 걸리는 위험과 고통의 행군이었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살길을 찾아 내달리는 강인한 이 여성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내 처지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하는 비참함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마담B를 무너뜨린 것은 국가정보원이었다. 마담B와 북한 남편은 ‘간첩’ 혐의를 받았다.

국정원의 조작과 복수

탈북민은 한국 입국 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지금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받는 게 수순이다. 이 과정에서 마담B는 ‘얼음’이라 불리는 마약을 한 차례 매매한 사실을 밝힌다. 국정원은 이 사실을 마담B가 ‘마약 매매 수익금을 김정일 충성자금으로 북한 보위부에 상납했다’는 사실로 뒤바꾸어 자백을 종용한다. 

마담B는 독방에 154일간 감금되었고, 계속 갇혀있게 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허위자백을 한다. 그가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을 당시는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국가정보원이 서울시청에 근무하고 있던 탈북 공무원 유우성 씨가 간첩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 드러나 국정원이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있었다. 이 영향으로 국정원은 본원 차원에서 간첩 사건들을 직접 검증했고, 마담B는 간첩 혐의에서 벗어나 석방된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마담B는 한국정부로부터 ‘비보호처분’을 받았다. 이는 법적으로 ‘탈북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정부가 탈북자에게 제공하는 집과 정착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마담B는 낯선 땅에서 당장 머무를 집조차 없이 삶을 헤쳐가야 했다. 그가 선 풍경은 흙먼지 날리는 농촌에서 휘황찬란한 대도시 서울로 바뀌었다. 거침없이 풀어헤친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리고, 유니폼을 깔끔하게 갖춰 입은 그는 어딘가 텅 비어 보였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도 배경도 가진 돈도 없이 나이 든 여성이 ‘합법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중국을 떠날 때 마담B는 비자를 받으면 중국인 남편을 한국으로 불러 같이 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한국은 진절머리나는 곳이 되었다. 마담B가 또 다시 관객의 가슴을 찌르는 결심을 밝히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리고 얼마 전(4월 7일), 그 결정 이후 마담B의 근황이 추가된 재편집 버전이 SBS 스페셜로 방영되었다. 구체적인 선택의 내용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여성이기에, 하지만 강한 여성이기에

영화 <마담B>는 삶을 보는 방식에 관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마담B의 삶은 한 사람이 놓인 복잡한 지형을 살펴보는 방법을 관객에게 담담히 이해시킨다. 마담B가 탈북한 이유는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함께 고려해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자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북한 사회가 마담B와 같은 위치의 여성에게 허락한 삶의 결과일 수도 있다.

마담B와 같은 이유로 수많은 북한 여성들이 국경을 넘었다. 1990년대만 해도 탈북민 가운데 여성은 10%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여성 비율은 급증한다. 통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0월까지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은 3만 1,093명인데 이 중 여성이 2만 2,135명이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남자 111명, 여자 697명으로, 여성의 비율이 86%에 달했다. (9월 기준) 탈북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의 탈북 동기는 주로 ‘식량부족과 경제적 어려움’과 ‘돈을 더 벌기 위해’서다. 

BBC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마담B는 "당시는 돈이 전부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태껏 애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을 잘 키워야한다는 책임감이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마담B를 절박하게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어머니다움과는 다른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인신매매 브로커로 활동한 것 역시 단순한 피해/가해의 구도로 보기만은 어렵다. 그는 인터뷰에서 탈북 여성이 중국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탈북 여성의 상당수가 인신매매를 겪는다. 마담B는 탈북여성이 길에서 살다가 북송되거나 ‘속아서’ 팔려가는 대신 ‘안전한 결혼’이 대안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중국 남성과 결혼하는 북한 여성과 돈을 반씩 나눠 갖고, 여성이 원하는 것을 전할 수 있게 통역해주었다고 한다. 일종의 실용주의적 노선을 취한 것이다. 견고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달리 보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고 할 수 있다.

끝나지 않은 싸움

분단국가의 잔혹한 현실과 한국사회의 구조를 깨달은 이후, 마담B는 무너진 듯 보였다. 이쯤에서 영화에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 마담 B의 근황 하나는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담B는 현재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청구소송'과 '비보호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 대리를 맡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마담B 부부에게 내려진 비보호 결정을 ‘부부 간첩 조작 미수에 대한 국정원의 보복'이라고 본다. 마담B는 자신에게 부당한 일을 저지른 한국 정부와 싸우고 있다.

1시간 남짓한 영화를 통해 마담B를 오롯이 알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가 가진 질긴 힘에 관해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딘가에 부딪혀 무너지더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머물지는 않을 것이란 묘한 확신을 준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먹먹한 만큼이나 그에게 존경심이 느껴지는 이유다. “여태껏 애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말한 BBC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마담B는 이러한 말을 덧붙인다. 

“50세가 넘으면서 이제는 내 행복을 위해 살고 싶다.” 

그렇게, 그는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네이버 영화관에서 다운로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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