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움 9. 배심원들

알다영화여성 주인공

블록버스터 움 9. 배심원들

명숙

편집자 주 :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흥행에 크게 성공한 대작 영화를 '블록버스터'라 부른다. <핀치> 사전의 '블록버스터'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막대한 제작비는 들이지 않았을지라도, 흥행에 크게 성공한 적은 없을지라도,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숨겨진 대작 영화를 소개한다. '움'은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여성 및 일반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다(남성은 맨움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움의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지배하는 그 날까지.

 

<배심원들>,  2019

재밌다. 영화 <배심원들>은 상업영화의 흥미요소가 곳곳에 깔려 있어 상영 내내 영화관에서 관객의 웃음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사건의 실체를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이뤄낸 기적이라는 감동 코드도 있다. 그래서 신인 감독의 영화답지 않다, 새롭지 않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탄탄한 스토리, 개성 있는 다양한 캐릭터 설정, 법조계의 속물근성 풍자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흠잡을 데 없다. 주인공격인 판사 김준겸(문소리 역)과 8번 배심원인 권남우(박형식 역)의 연기도 좋다.

그들을 진실에 다가가도록 한 끝없는 질문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심판한다는 건 두렵고도 긴장되는 일이다. 두려움을 잃는 순간, 그건 오만을 키우는 일이 된다. 그래서 판사라는 직업을 법조 엘리트의 상징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오히려 배심원들은 전문가가 아니어서 오만하지 않을 수 있었고, 판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결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더불어 영화는 비법조인 비전문가들에게 재판을 맡길 수 있냐는 대내외적 우려도 담아낸다.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제3자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는 판결을 내리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 두려움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정이다. 그런 점에서 8번 배심원 권남우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그는 유죄인지 무죄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모르겠다”고만 말한다. 왜냐면 자신까지 찬성해버리면 재판은 끝나기 때문이다. 

그는 모르니까, 끊임없이 '진짜인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보면 진실을 찾아가려는 노력은 곧 자신의 판단을 끝없이 의심하는 일이다. “잘 모를 땐 의심이 사라질 때까지 더 열심히 찾는 것”이라는 대사는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그러할 때 “미로도 길”일 수 있다.

물론 배심원들이 처음부터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처음이라 어려운 게 아니라, 처음이라 잘하고 싶은”,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전문가들이 잃어버린 두려움, 두려움의 자리를 차지한 전문가주의의 오만함, 그래서 놓쳐버린 진실을 배심원들은 일깨워준다.

사실 전문가와 비전문가라는 구분은 경계도 역할도 애매하다. 영화 속에는 30년 장의사의 경력에서 비롯된 사인에 대한 의심이 자격증에 밀려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전문가주의’, ‘전문성’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실제 한국의 배심원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줄이기 위한 사법민주화 방안으로 도입됐다. 법률전문가들이 아닌 시민들이 재판과정에 참여해 일반적인 법 감정과 법 상식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제도로, 2008년 처음 시행됐다. 무작위로 뽑는 배심원에 선정되면 국민은 특별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원하지 않게 배심원이 됐으니 내적 갈등도 생기고 사건을 알수록 잘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복잡한 심정이 들 수 있다. 그러한 복잡한 심경의 변화와 역동을 영화는 잘 그려냈다.

일러스트 이민

법조계 블랙코미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법조계에 대한 은근한 풍자다. 국민참여재판을 시작하는 배경 외에도 대의적인 것도 있지만 구성원들의 개인적 욕망도 있다. 승진하고 싶어 하는 법원장(권해효 역)은 ‘그림을 잘 그려’ 김준겸과 자신이 승진하길 원한다. 여기서 법조계의 속물 근성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자신을 부장판사로 바라봐주는 언론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우배석판사(태인호 역), 판사들은 낯선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는 걸 두려워한다는 청소노동자의 대사, 실제로 도망치는 판사(류덕환 역) 등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강하다. 특히 우스꽝스런 기자들의 카메라 행렬은 언론 조명에 신경 쓰는 법원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사태를 잘 모르면서 카메라만 들이대는 기자들의 모습은 부실 수사의 이면과 짝을 이룬다.

반면 주인공 김준겸 판사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여성인데다 비법대 출신이라 환영받지 못하는 비주류다. 언론이 우배석판사를 부장판사로 오인한 이유도 수장은 남자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우리 사회 남성중심성 때문이다. 그녀의 노력은 ‘재판기록만 파고들며 늦게 일하는 비법대생들’로 평가절하 된다. 그녀가 배심원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판결을 내린 것은 이러한 비주류성, 소수자성에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점은 김준겸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으로 짐작할 수 있는 단순한 도식일 뿐, 영화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러한 결론이 나오기까지 판사로서의 고민과 고뇌는 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낮다. 그냥 열심히 일하는 판사일 뿐이다. 배심원들도 찾아내는 부실 수사를 그녀는 못 본 것인가. 아니면 봤음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인가. 후자라면 무엇인지 그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판사의 비중이 낮아서인지 그녀의 심리변화를 제대로 그리지 않아 결말은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판사 캐릭터의 비중이 낮아 문소리라는 배우의 진가가 덜 드러나 아쉽다. 박형식의 역동하는 고민과 행동에 비하면 문소리는 평면적인 인물이다. 단지 평소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신념 때문이라는 식의 결론 아닌가. 적어도 김준겸 판사가 배심원들로부터 배우고 성찰했던 내용이 무엇인지 영화에 담았다면 어땠을까.

한바탕 즐겁게 웃고 영화관을 나오는데 뒷머리가 무겁다. ‘피고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라는 주요 대사 때문이다. 이 경구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판사에게 필요한 자질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자칫 피해자의 이익을 외면하는 것으로 읽혀질까 봐서다. 재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익과 권리를 두루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설정과 달리 피고인이 피해자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고 장자연 성폭력 사건이 그렇고 김학의 성폭력 사건이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게 피고인이든 피해자든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판결, 진실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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