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그 맞은 편(2018)>
이선희 감독
다큐멘터리
<얼굴, 그 맞은편>은 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옥랑상을 받은 한국의 다큐멘터리영화다. 요즘 세상을 들썩이는 불법촬영을 다뤘다. 누군가 찍은 여성의 사진이나 영상이 인터넷을 돌아다녀도 가해자를 찾을 생각이 없는 경찰, 결국 여성들이 나설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을 다뤘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는 아마도 불법촬영된 여성의 신체나 성폭력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온라인에 뿌리고 돈을 버는 사이버성폭력의 실체를 파헤쳤다는 점과 온라인에서 성폭력영상을 접하고 분노한 젊은 여성들이 행동에 나서며 성장해가는 기록이라는 점일 것이다.
성폭력이 온라인 산업과 만나 돈을 벌다
사이버 성폭력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땐, 몇몇 찌찔한 남성들의 헤어진 애인에 대한 복수로 함께 찍은 은밀한 사진이나 영상을 온라인상에 올리거나 불법촬영한 여성의 신체를 올리는 정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폭력을 놀이 정도로만 생각하는 끔찍한 남성들의 강간문화는 온라인에서 확대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대표가 소라넷이다. 그곳에선 자신의 여자친구나 여동생, 아내를 몰래 찍어 올리거나 성폭력을 한 영상을 올려도 범죄라고 여기지 않는다. 여성은 그저 육변기(남성의 육체적 욕망을 배출하는 변기라는 의미의 온라인 용어)일 뿐이다. 소라넷만이 아니다. 각종 웹하드사이트에 불법영상이 떠돌아다닌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삭제해주지 않으니 피해여성이 돈을 들여 지워야한다. 지우는 일도 쉽지 않다. 처음에는 자취생으로, 그 다음에는 유부녀로 타이틀을 바꾸어가며 유포되고 편집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불법 영상을 저작권을 붙여 저작권료를 받는 웹하드회사까지 있다. 생산과 유통과 소비는 하나의 카르텔이다.
이렇듯 사이버성폭력은 온라인 산업과 붙어 돈을 번다. 성폭력은 돈벌이 수단이 됐다. 따지고 보면 여성을 상품화해서 돈을 번 역사는 오래 됐다. 미군위안부를 조성해 외화벌이에 나섰던 정부의 부끄러운 과거사는 100년도 안 됐다. 성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성폭력을 돈벌이로 삼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됐다. 이렇게 산업화된 사이버성폭력을 뿌리 뽑으려면 국가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않다. 사이버성폭력의 실체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알았으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들은 왜 사이버성폭력에 맞서 싸우게 된 것일까. 영화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아래 한사성)의 성원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성폭력영상물을 보고 분노해 시작한 사람도 있고, 직접 피해를 받은 사람도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찍힐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에 갇힐 수 없어 그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피해여성의 얼굴 맞은편에서 성폭력 영상을 보고 유포하는 이들을 색출하고 처벌하기 위해 모였다. 영화 속 대사처럼 성폭력의 세상을 알았는데, 도저히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한사성 멤버 중 한 사람의 이야기는 더 기억에 남는다. 한 사이트에서 뜬 캡쳐영상이 언뜻 자신과 자신의 남자친구의 모습과 비슷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운 아침. 용기를 내 다운로드를 받아서 열어보니 동영상의 인물은 자신이 아니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자신이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다른 여성의 피해는 눈감아도 되는가.
이 대목에서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에 맞서 거리에 모인 여성들이 붙인 추모의 포스트잇이 떠올랐다. ‘당신은 나일 수 있었다. 우연히 당신이 죽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듯,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이버성폭력의 피해를 입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들의 용기는 이미 여러 곳에서 씨앗을 뿌리며 다양한 모습으로 자라나고 있다.
행동 사이에서 불안을 마주하며 성장한다
“미래에 큰 돈을 걸지 말고 지금 행동하라.”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말처럼 그들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했다. 그들은 생계도 뒤로 한 채 방 한 칸을 얻어 범죄자를 찾고 증거를 모으기 시작한다. 피해상담 전화를 받기도 하고 국회에 가서 법제도 마련을 촉구하기도 하고 사이버성폭력을 돈벌이로 삼으려는 회사대표에게 항의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페미니스트 투사가 되어갔다. 무모함은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법제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여전히 성폭력을 돈벌이로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이 있으니 이것을 막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영화는 함께 일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조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담았다.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힘을 키워나가는지 조금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영화 후반부엔 쉴 새 없이 행동하고 싸워온 날을 돌아보며, 계속 생계의 불안을 떠안은 채 이렇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나온다. 막막해 하는 그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느새 살아남으라고 응원하는 나를 발견한다.
싸우는 여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연대하는 여성들이 서로의 힘을 키운다.
이 말은 여전히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