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기관은 장애인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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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은 장애인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아요"

BOSHU

일러스트레이션: 킨지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 해.”
이건 피해자 특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죠.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이인원 소장 인터뷰

힘의 차이

성폭력은 힘의 차이를 전제해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물리적, 심리적, 경제적, 위계적 불균형이 있는 거죠. 사법기관은 협박, 폭행이 수반되어야 ‘성폭력’으로 인정해요. 그런데 지적장애인 여성의 경우, 모르는 사람이 와서, “이 음료수 마셔”하고 다정하게 해주면, ‘나랑 친구/연인인 건가?’라고 느끼게 돼요.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되지 않는 범죄가 되는 거죠. 시각장애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범행 장소가 어디였는지, 누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공포가 크세요.

청각장애인의 경우 한 가족 분위기로 운영되는 농아인 그룹이 있는데, 그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기도 해요. 지체장애여성들은 성폭력 피해가 있을 때, 방어하거나 도망가기 어려워요. 피해상담을 일대일로 하고 싶어도, 수어 통역사를 대동해야 하다 보니 불편함이 생기고요. 장애 유형에 따라 느끼는 어려움도 각각 다르죠.

관계 맺기

장애인분들은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의 경우 낮에 부모는 일하러 가고, 매일 혼자 있으면 따분하잖아요. 사람이 그립기도 하니까, 밖에 나오시는 거예요. 그럴 때 가해자가 한 마디 두 마디 말을 걸고... 사람들이 관심 가져준다고 느끼니까 경계를 못하게 되는 거예요.

최근에는 스마트폰 랜덤채팅을 통해 발생하는 사건도 많아졌어요. 피해자 연령도 낮아지고요. 랜덤채팅을 이용해서 남성들이 어린 여성과 장애인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거죠. 3년 전에 한 남성이 13세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을 했는데, 가해자가 가해 전에 떡볶이를 사주었다는 이유로 법원이 그 사건을 성매매라고 판결한 일이 있었죠. 그 피해도 채팅 통해서 발생한 거예요.

성폭력 피해 이후 피해자들은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을 하기도 해요. 집에서 피해자 보호자가 “우리 애가 요즘 너무 살쪘는데요” 하셔서 봤더니, 뒤늦게 임신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거죠. 

성폭력 후유증으로 피해자분은 피해 이후 바깥으로 돌아다니고, 그러다 재피해를 입기도 해요. 수사 기관에서는 그걸 보고 ‘피해자가 제 발로 걸어 다니고 자기가 좋아서 성관계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피해자에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일 수 있는 거예요. 피해의 특성인 거죠.

일러스트 킨지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여성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대개 피해자 지인이에요. 피해자가 사는 곳과 활동 시간을 아는 사람이죠. 계부, 친부, 삼촌, 주변 사회복지기관 직원, 부동산, 세탁소, 활동 보조인, 주간보호센터 차량운전자 등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가해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동네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저들끼리 장애 여성을 두고 ‘동네에 돌아다니는 좀 이상한 애’라고 하면서 성폭행을 하기도 하고, 버스 기사들 사이에서 “그 동네에 가면 걔가 있다더라” 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지속적으로 가해하기도 하고요.

범행이 드러나기도 어려워요. 예를 들면 장애 여성이 피해를 입고 집에 가서 “엄마 츄츄...”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하면, 가족들은 “그 아저씨가 너 이뻐서 그랬던 거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거예요. 바로 그때 상담소에 오셔야 하는 거죠. 혹은 텔레비전에서 키스나 성관계 묘사하는 장면을 가족들과 피해 여성이 같이 보다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하지 마!”라고 소리치면, 엄마가 눈치 채고 그때 상담소로 데려오시는 거죠. 하지만 상처는 다 아물었고 진술도 제한적이니까 어려워지는 거죠.

범죄 구성 요건

성폭력 상담을 하다 보면, “선생님 제가요, 남자친구 만나서 사귄 거예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한참 듣다가 뭔가 이상해서, “오빠가 몇 살이에요?” 물으면,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오빠요? 60살이요.” 라고 하세요. 그러면 저희는 “네???” 하죠. 이분들은 어릴 때부터 타인들과 관계 맺어본 경험이 적다 보니, 어떤 것이 연애이고 성폭력인지 판단하기 어려워하세요.

2011년에 영화 <도가니>가 상영되면서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여론이 생겼고, 처벌 수위가 강화됐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재판에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무죄가 나올 확률이 오히려 높아졌어요. 법이 바뀌기 전에는 보통 집행유예나 실형 1, 2년을 구형하다가 형량이 높아진 이후로는 10년, 15년 구형이 되니까... 사법기관에서는 입증할 책임을 피해자에게 더 강하게 요구하는 거예요.

가해자를 처벌하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죠. 이전에는 집행유예라도 선고했다면 요즘에는 거의 무죄.

범행 후 수사가 시작되면 가해자들은 “난 죄가 없다. 억울하다” 라는 말만 하면 돼요. 반면 수사기관은 피해자들에게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 해. 그래야 죄가 없는 이 사람을 처벌하지”라며 입증을 요구하죠. 지적장애 여성들은 피해 입은 일을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어려우신 분들이 많아요. 수사기관에서도 이 특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입증 책임

가진 건 피해자의 증언뿐인데, ‘입증 자료’는 당연히 부족하죠. 사법기관은 지적 장애인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아요. 환청이나 망상 같은 정신 장애를 겪는 분들 중에 약 복용을 규칙적으로 못 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진술을 해야할 때 앞뒤가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사법기관은 이분들의 증언을 전부 거짓말이라고 해버려요. 법원 판결문을 읽어보면 그래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긴 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하여 무죄로 선고한다.”

초기에 활동할 때는 답답해서 많이 울었어요. 이제는 제도를 바꾸는 일에 집중하면서 차근차근 활동하죠. 여성장애인이 놓인 현실을 고려해서 수사하고 판결을 내려야 해요. 그에 맞게 제도도 변화해야 하고요.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의식도 확산돼야 하고요. 피해자 가족들이 “동네 창피하다. 합의하고 빨리 끝내야 한다”라고 해버리면, 피해자는 회복을 위한 상담이나 교육을 적절하게 받지 못해요.

일러스트 킨지

관계맺기를 위하여

보다 근본적으로, 피해자들이 왜 집에 혼자 있게 됐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회사는 장애인 고용법이 있어도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벌금 낸다’고 말하죠. 장애인 교육센터는 주간에 한 두시간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종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한정되어있어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골라보라고 당사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환경이 필요해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 수 있게 작은 단위에부터 환경이 만들어져야 해요. 우리 상담소도 변두리에 있으니까, 장애여성분들이 자주 놀러 오고 싶어도 “선생님, 거기까지 가기 힘들어요.”라고 하세요.

산내, 진잠, 송강처럼 시내와 먼 곳에도 작은 단위로 장애 여성센터가 생겨서 장애 여성분들이 마실 다닐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센터에는 전문 교육을 받은 분들이 함께 계셔야 하고요. 마을 단위로 기관 간 연계가 잘 되어야, 장애여성들이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덜 만들어 지겠죠. 이분들을 놓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해요.

새로운 관계맺기를 위하여

대전에는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가 두 곳 있고, 보호 시설이 한 곳 있어요. 가정폭력 피해 상담소는 없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도 부족하죠. 한 보호시설에 많아야 열 분 모실 수 있는데, 한 해 피해자는 6-70명 안팎으로 발생해요. 당장 갈 수 있는 긴급 피난처도 없고요. 그러면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는데, 다른 곳도 상황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소규모 그룹홈이 필요해요.

장애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의심이 들 때는 주변 분들이 상담소에 연계해주셔야 해요. 상담소에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시고요. ‘장애인 성폭력’에 관심 갖고 생각을 하면 주변에서도 금방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저도 상담소 일을 시작하고서 길거리에서 여성 장애인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장애여성 성폭력을 막고 싶은 분들이라면, 옆에서 그 여성들을 자주 만나며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 피해는 계속 반복돼요

이인원 소장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상담 전반에 관심이 있었어요. 상담 공부를 하다가, 2008년도에 장애인성폭력상담소로 교육을 받으러 왔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고, 장애인 성폭력 상담 활동가로 일하게 됐죠. 하다보니 십 년이 넘었네요.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 상담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장애여성을 지원합니다. 상담, 교육, 수사, 법적 지원 등을 제공합니다. 병원 내원할 때 동행 해드리거나 비용을 지원합니다. 가족 및 보호자, 교사와 사회복지사 등 관련인 교육도 진행합니다.

홈페이지 www.djdaws.or.kr
전화번호 042 223 8866
후원계좌 농협 351-0130-2621-43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대전지부

 

인터뷰이 이인원 소장 
인터뷰어 BOSHU 권사랑 서한나
디지털 편집 PINCH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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