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5일, 서울의 왁싱샵에서 30살 남성이 여성을 살해했다. 2017년 7월 11일, 군산에서 52살 남성이 지나가는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고 가방을 빼앗았다. 2017년 7월 26일, 성남의 상가 화장실에서 38살 남성이 흉기로 여성을 위협했다. 2017년 7월 28일, 부산의 가정집에 침범한 35살 남성이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고 돈을 훔쳤다. 2017년 7월 31일, 이천의 현금인출기 앞에서 29살 남성이 돈을 뺏으려고 여성을 위협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 집도 동네도 직장도 심지어 화장실도 위험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여성이 살해된 지 일 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위험이 등장하고 최첨단 여성혐오 시대가 열린다. 남자들은 이제 지하철에서 초소형카메라로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고, 창문을 통해 드론으로 여성의 사생활을 촬영한다. 웹사이트에서 강간을 모의하고 방송으로 범죄를 생중계하며 P2P로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한다.
움츠러든다
얼마 전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현관문이 덜 닫혔던 걸 확인했다. 긴장으로 머리가 곤두서는 걸 느끼고 숨을 죽인 채 집안 곳곳의 세탁실과 옷장, 화장실을 열어봤다. 그리고 나서도 혹시나 하는 찝찝한 마음이 남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내가 신경과민인 걸까?
8살 때 피아노 학원에 가는 길에,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내 가슴을 만지고 지나갔다. 11살 때 친구네 집 엘리베이터에서 바지를 내려보라는 남자를 만났다. 14살 때 집 앞에서 20대 남자로부터 연락처를 묻는 쪽지를 받았다. 17살 때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차 안에서 자위하던 남자가 창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20살 때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뒤풀이에서 남자 선배가 가슴을 만졌다. 21살 때 동아리 술자리에서 남자 선배가 입을 맞췄다. 내가 유독 운이 나쁜 걸까?
삶의 그런 일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조금 더 내 행동의 선택지를 좁히게 된다. 8살 때 첫 성추행 경험을 이야기하자, 엄마는 ‘너 무슨 옷 입고 나갔어?’ 했다. 엄마가 ‘옷’을 물어봐서 그런지 뇌리에 그 ‘옷’이 남아있다. 좋아했던 핑크색 블라우스와 하얀색 반바지였다. 나는 그 옷을 다시 입지 않았다. 선배의 성추행 이후 남자들이 주 멤버인 술자리에 늦게까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리 기분이 좋고 술이 잘 넘어가더라도 말이다.
그런 일들은 때로는 내 일상을 조금 더 귀찮게 만든다. 대학가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누군가 현관문을 세게 흔들고 간 적이 있다. 그 뒤로 나는 우편물의 주소와 이름 부분을 잘게 찢어서 버린다. 늦은 밤 귀갓길에 뒤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입을 막은 적이 있다. 그 뒤로 밤길엔 뒤따라오는 사람의 그림자를 살핀다. 이어폰을 끼고 걷다가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음량을 줄이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자주 가던 공중 화장실에서 카메라가 발견된 뒤로, 화장실에 있는 작은 구멍들과 나사를 뚫어져라 보게 되었다.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정말로 이불 밖에선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이다.
이불 속에 꼭꼭 숨어있지 않고도 안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남자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나를 성추행한 남자 선배는 내 남자친구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커플 사진을 띄우자 쓸데없는 ‘뭐해?’, ‘자니?’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연락처 좀 알려달라는 길거리의 끈질긴 남자들은 내가 싫다고 할 땐 들은 체도 안 하더니 화장실에 갔던 남자친구가 돌아오자 이내 포기하고 돌아선다. 마치 거대한 사회적 합의 같다. ‘남의 것을 뺏지 말자.’와 같은 상식이라도 되나? 내 남자친구의 의사는 늘 나의 의사보다 중요한가? 나는 어떤 남자의 것이 아닐 때는, 땅에 떨어진 동전처럼 아무나 주워갈 수 있는 존재인가?
같은 지역 같은 집안에서 자라 같은 학교에 다니며 비슷한 동선으로 움직이던 남동생은 왜 나에게만 자꾸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도, 대학교 남자 동기도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런 일은 뉴스에서나 보는 줄 알았는데.’,
‘왜 너한테는 자꾸 그런 놈들이 들러붙냐?’
쉬운 세상
남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알 것 같다. 나도 ‘남자의 것’일 때 그들의 안전한 감각을 조금 나눠 가져본 적이 있다. 남자친구가 데려다주는 밤길은 평소처럼 조마조마하지 않았고, 함께 있는 방안에서는 문단속을 계속해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뿐 아니다. 혼자 지나갈 때 늘 무례하게 내 손목을 잡아끌던 남자들은, 내가 남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 동대문의 옷가게든 홍대의 클럽 앞이든 대학로의 극장 근처든 사람을 끈질기게 붙잡고 영업하던 사람들이 이상할 만큼 우리가 무사히 지나가게 내버려 뒀다. 조금 설득하려다가도 거절하면 바로 존중하며 놓아줬다. 좁은 골목을 지나야 해서 늘 못마땅해하던 택시 기사들이 군말 없이 바로 집 앞까지 와줬다. 카드결제에도 잔소리하지 않았다. 잘 해결되지 않던 통신사와의 문제가 쉽게 해결됐다. 식당의 옆 테이블에서 쓸데없이 말을 걸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내가 그동안의 경험상 안 될 거라고 꺼리던 일들을 쉽게 해결했다. 나에게 ‘너는 해보지도 않고 걱정한다’고,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을 너무 배려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이쯤 되면 마법과도 같다. 남자들은 나와 달리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나와 다른 좀 더 쉬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자가 없이 살 수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시비를 걸 때 전화할 사람이 없고, 대중교통을 편안하게 탈 수 없고, 늦은 밤 데리러 와 줄 사람이 없는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진다. 내 삶에서 남자가 없어질 때 나는 다시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이건 갑자기 일상을 위험에 내던지는 일이다. 기분 탓이 아니라 내 경험상으론 사실이다. 여성은 남자의 것이 아닐 때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남자의 소유가 될 때의 편안함을 알고 있다. 여성들과만 어울리고 관계 맺고 연애할 때와는 사뭇 다른 세상의 온도를 안다.
더 큰 위험
그러나 주체성을 내던지고 특정 남자의 것이 되면, ‘그 남자’라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2017년 7월 9일, 인천에서 50살 남성이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했다. 2017년 7월 18일, 서울에서 22살 남성이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트럭을 몰며 위협했다. 2017년 7월 20일, 전주에서 39살 남성이 이별을 요구한 여성을 때리고 살해하려 했다. 7월 27일 남양주에서 38살 남성이 교제 중인 여성을 폭행했다. 27일 인천에서 56살 남성이 동거하던 여성을 흉기로 찔렀다. 이런 일들은 멀지 않은 과거에 곳곳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최소 1,000명이 연인에게 살해되고, 73,000명이 맞았다. 1)
남자들은 ‘아내가 시댁에 가지 않아서’, ‘자신보다 늦게 귀가해서’, ‘상추를 봉지째로 상에 놓아서’, ‘전화를 받지 않아서’ 여자를 죽인다. 2016년 한 해에만 187명의 남성이 애인이나 아내를 살해하려 했다.2)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집안이라더니, 사실은 집안마저도 위험하다. 여자를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더니, 이제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죽이고 있다. 여성의 공간이 이렇게 좁고, 여성의 자유가 이렇게나 적다.
우리 집 가부장은 ‘홧김에’ 나를 때린 적이 있다. 이내 사과했고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냥 알아버렸다. 내가 어느 곳에서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일은 조금씩 비슷하고도 다르게 되풀이되며 나를 세뇌한다. 동료는 남자친구와 다퉜지만, 그의 차를 타고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 퇴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나와 자취방을 의논하며 여자가 살기에는 좀 위험한 위치라는 얘기를 한다. 같은 집인데 남자인 너는 살 수 있고, 여자인 나는 살 수 없는 그런 집이 있다. 이런 일들이 모여 내가 여성이라는 걸 일깨운다. 잔인하고도 뼈아픈 방식으로 말이다.
아무리 21세기가 도래해도, 강산이 몇 번이고 변해도 우리는 강간 당하고 살해되고 맞는다. 나는 여성이기에 계속 이렇게 피곤하고 예민하고 불안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내일 어떤 진상 고객을 만날지는 모르지만, 내 말을 무시하던 진상 고객도 남자 직원이 나타나는 즉시 말이 통할 거라는 건 확실히 안다. 내일 버스에서 무례한 남자를 마주치더라도, 그가 화나서 나를 죽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할 게 분명하다. 세상은 원래부터 이 모양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탈출구는 아마 없는 것 같다.
1) 여성신문, “데이트 폭력은 심각한 범죄…성평등 인권교육 시작해야”
2) 한국여성의전화, “2016년 분노의 게이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통계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