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유의미

눈을 크게 떠도 보이기나 할지 모르겠는 아시안 퀴어 여성이자 우주의 먼지입니다. 소통은 근본적으로 오해라고 생각하지만 형체가 없는 것들을 언어에 담고 싶어 글을 씁니다.
서포트

'유의미'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5월 째주
생각하다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1. '공급자'답지 않은 한슬

‘답지 않은 사람들’은 동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의 세계를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이야기입니다.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살아남아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 타협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견고한 세상에 때때로 균열을 내는 방식, 기록되지 않아 주의 깊게 들어본 적 없는 일상적인 목소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청년 여성들을 만나, 서로의 삶과 고민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연결을 꿈꿉니다. 청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경영학과 졸업하고, 스타트업처럼 대단한 걸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저는 그런 청년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서울 송파동의 아담하고 조용한 카페에서 한슬을 만났다. 차분한 색상의 인테리어가 단정하면서도 감각적이어서 한슬과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청년’의 의미를 묻는 게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 고요한 공간에 한슬의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시원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해야 할 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명확하게 전달했다. Q. 한슬은 어떤 사람인가요? 간단히 소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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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월 째주
생각하다

우리 잘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은 안 할거에요? 직장 동료가 묻는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복잡한 거짓말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런 거 관심 없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나이를 몇 살 더 먹자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한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꿈꾸는 표정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너는 그런 거 관심 없잖아. 친구들은 내가 결혼을 별로 안 하고 싶은 줄 안다. 젊은 날의 내가 ‘사랑은 이데올로기고 연애는 성역할 수행’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게 기억에 남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전엔 정말 결혼을 꿈꾸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삶이 좋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는 게 즐거웠다. 우리 엄마도, 엄마...

17.11월 째주
생각하다

우리가 잘 연애할 수 있을까

한 사람과 지속해서 깊은 교류를 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와 함께 재즈 페스티벌에 가고 싶을 때 고민 없이 제안할 사람이 있는 게 좋다. 뜬금없이 어제 읽은 책의 감상을 말하고 싶고, 상대가 내가 오래전부터 그 작가를 좋아했다는 걸 아는 채로 들어주면 좋겠다. 일터에서 영혼을 갉아 먹힌 일을 얘기하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 어제도 그저께도 나랑 얘기했던 사람과 연속성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 새로 산 니트가 내게 잘 어울리는지 봐주고, 갑자기 시간이 맞으면 같이 밥을 먹고, 예쁜 핸드폰 케이스를 발견하면 사다 주고, 오늘따라 유난히 고양이가 귀여우면 사진 찍어서 보내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 게 조금 덜 외로울 것 같다....

17.11월 째주
생각하다

벗고 버리는 옷장 미니멀리즘

애인과 몇 달간 집을 바꾸어 살아본 적이 있다. 서로의 집에서 출퇴근이 더 편리했고, 고양이를 애인이 대신 봐줄 때였다. 나는 급하게 움직이느라 당장 필요한 옷 몇 벌과 화장품, 신발 두어 개, 노트북만 가방 몇 개에 나눠 들고 갔다. 어차피 서로 왔다 갔다 할 테니, 일단 이사부터 가고 중간에 필요한 게 생기면 한 번 더 가져오려고 했다. 그 집은 구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들여놓은 게 없었고 휑하니 텅 비어 있었다. 기본적인 세면도구와 식기 몇 개, 청소도구는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가구도 침대와 냉장고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살아서 엉망진창인 내 집보다 훨씬 아늑하고 깔끔했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옷을 가지런히 개켜두...

17.11월 째주
생각하다

불안한 연애의 한복판에서

나는 겁이 많다. 그래도 이제 어른이 되어서 바이킹도 탈 수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겁이 너무 많아서 바이킹을 보면 얼른 타버린다. 해버리면 별로 무섭지 않은데, 하기 전까지 떨고 있는 게 가장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번지점프도 했다. 한 번도 주춤하지 않고 하나 둘 셋 하자마자 뛰어내렸다. 한번 망설이면 그때부터는 정말 무서워져서 울면서 도로 내려올 것 같았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얼른 해버려야 한다. 가장 무서운 건 무서워하면서 떨고 있는 순간이고, 막상 해버리면 하나도 무섭지 않다. 그렇다고 인생도 그렇게 용감하고 바람직하게 살진 않는다. 삶에서도 무서운 게 있으면 빨리 해치워버리긴 하는데, 문제...

17.10월 째주
생각하다

일어나 싱크대를 향해 행진하기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바로 가사노동이다. 물 한 잔만 마셔도 컵을 씻어야 한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어도 쓰레기는 버려야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내 컵까지 씻고 내 쓰레기까지 버려야 한다. 컵이 저절로 싱크대에 들어가 씻는다거나 쓰레기가 제 발로 현관 밖으로 걸어나가는 일은 없으니까. 오늘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어제 저녁에 먹고 식탁 위에 올려둔 치킨 뼈를 치웠고, 콜라병을 납작하게 눌러 봉투에 넣었다. 아침에 마신 주스 컵과 시리얼 그릇을 설거지하고 속옷과 수건을 빨아 널었다. 냉장고에 있던 날짜 지난 요구르트와 반쯤 남은 케이크를 버렸다. 밥을 새로 하고 즉석 짜장 소스를 전자레인...

17.10월 째주
생각하다

쉿! 조용해지는 커밍아웃

11시 55분, 교과서를 덮고 오른발을 책상 밖으로 미리 뻗는다. 5분 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제일 먼저 뛰어나가기 위해서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날도 급식실에 일등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그날의 점심시간은 유독 초조했다. 제일 먼저 밥을 받아놓고도 먹는 둥 마는 둥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친구들은 어디 아픈 건 아니냐며 나를 걱정했다. 그 다정함이 새삼스럽게도 소중해서 괜히 슬퍼졌다. 조금 뒤에도 너희는 여전히 나에게 다정할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모두 한순간에 나를 경멸하게 될까 봐 친구를 잃어버릴까 봐 겁났다. 동성애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있지만, 우리와 관련 없는 사람들 얘기였...

17.9월 째주
생각하다

팔리니까 아름답고, 예쁘니까 사랑하며

나는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쓴다. 그러나 예쁘면 다 되는 사회, 못 생기면 안 되는 사회에 반대한다. 여성의 몸을 함부로 판단해 등급을 나누는 것에 반대하지만, 아름다운 외모가 곧 자원과 권력인 시대에, 부지런히 몸을 가꾸고 관리하라는 요구를 외면할 만큼 용감하지는 않다.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이 남성의 시선인 것도 알고 있다. 일하거나 싸우기에 좋은 활동적인 몸이 아니라 공주처럼 얌전히 있기에만 적합한 몸이 유행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뒤바뀐 이갈리아에서 힘센 남자보다 키 작은 남자를 예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도 이 절망적인 사회의 일원이기에 내 눈에도 그게 더 예쁘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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