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2. 내가 선택한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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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이민갈까? 2. 내가 선택한 지옥

유의미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 이민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테러였다. 50명이 사망했고 또 50명이 다쳤다. 테러범은 이슬람 사원을 공격했고, 많은 무슬림 교도들이 희생됐다. 같은 날, 내가 지내던 오클랜드에서도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기사를 봤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다음 날 시내에 나가니 평소와 달리 이상할 만큼 백인들밖에 안 보였다. 주차장에서 깨진 유리창을 보고 덜컥 겁이 났고, 길에서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백인 남성이 무서웠다. 그날 외출을 하기 전에 수없이 고민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나오자 두려워서 파트너와 손을 꼭 잡고 내내 주위를 살폈다. 거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떠드는 백인들이 괜히 미웠다. 테러는 백인 남성이 했는데, 위축되는 건 우리였다. 외국인이고 아시안이고 여성이고 퀴어인 우리였다.

익숙한 찜찜함

이런 찜찜한 기분을 어디서 느껴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일어난 다음 날에도 남성들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피해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하루도 지나지 않은 사건을 가지고 농담도 했다. 걱정도 의견도 듣고 싶지 않은데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애써 일상을 살아보려는 나에게 동조를 구했다. 그들이 웃고 떠들수록 나는 더 외로웠다. 조금도 남의 일이 아니라서 끝나지 않는 장례식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 와중에 신변의 안전을 걱정하며 일상에서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다. 그때 느꼈던 바로 그 기분이다. 불안하고 고독하고 참담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번엔 무슬림이었지만 그다음은 누구일까? 이민자를 혐오하는 자는 한명씩 여권을 확인할 수도 없으면서 어떤 기준으로 혐오를 실천하나? 왜 하필 무슬림인가? 무슬림은 여기서 태어날 수 없나? 백인이 아니라서 이민자인가? 얼마나 오래 살아야 이민자가 아닌가? 원주민이 살던 뉴질랜드 땅에 18세기에 이주한 유럽인은 애초에 이민에 반대할 자격이 있는가. 혐오엔 논리가 없다. 사회적 약자는 언제 어디에서나 이 기분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작게는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갈 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고, 크게는 이민법이 불리하게 바뀌지는 않을까, 이 사건이 비자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외국인으로
사는 건 서럽다

외국인으로 사는 건 안 그래도 서럽다. 저런 혐오자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괴롭다.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여기 오기 전에는 비자가 뭔지도 몰랐다. 그런데 와보니 비자는 거의 모든 것이다. 계속 머무르려면 무슨 비자든 비자가 있어야 하고, 비자 종류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다. 신청한 비자가 갑자기 거절된다면, 나는 이곳에서 만든 관계와 터전을 모두 뒤로한 채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렌트지만 집을 구해서 살고 있고, 그 안에 살림살이가 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데려온 고양이들이 있고, 그 고양이들이 다시는 비행기를 타는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요가를 등록했고, 다음 주에 병원 예약이 있고, 내일 먹을 물과 음식도 사놓았다. 이곳에 계속 살 것을 예상하고 많은 것을 계획하며 지낸다. 비자가 거절된다면 전부 무참히 무너질 테지만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일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용주들은 비자가 불안해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외국인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뉴질랜드의 경우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직장에서 직원의 비자를 지원해줄 수 있지만, 그 또한 번거롭고 귀찮은 서류작업을 해야 하고, 업무를 다 처리한다 해도 비자가 확실히 나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 운좋게 비자가 나온다 해도 또 다른 고생의 시작이다. 노동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비자가 걸려있으니 꾹 참는다. 고용주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직장 뿐 아니라 비자까지 위협받아 나라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퀴어 외국인으로 사는 건 조금 더 복잡하다. 직장에서는 비자를 프라이버시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지, 세금 신고를 할 수 있는지가 고용주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정보라는 걸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의 비자가 파트너 비자라면 내 입장에서는 조금 골치 아프다. 뉴질랜드에서는 서류상 결혼 여부보다 실제 동거 여부가 중요해서, 비자를 밝히면 함께 사는 사람이 내 파트너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한국처럼 폐쇄적인 아파트 문화도 아니고 다세대 주택이 흔하지 않아서 같이 사는 사람을 숨기기도 쉽지 않다. 탁 트인 앞마당에서 때때로 마주치는 이웃들은, 이 집 건물에 단 하나 있는 현관문으로 우리가 함께 들어가는 걸 볼 수밖에 없다. 

아침에 집에서 같이 나오면서 옆집에서 나온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동네에 하나 있는 한국마트에서 둘이 함께 장을 볼 때면 직장 동료들도 자주 마주친다. 한국인들의 오지랖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여기저기서 비자 상태와 만료일을 자연스레 묻고, 같이 사는 사람의 비자가 끝나가는데 나는 왜 새 룸메이트를 구하지 않는지, 렌트비를 어떻게 감당할 예정인지 묻는다. 파트너 비자를 신청했다고 말도 못하고 그냥 웃으며 자리를 피해야 한다. 이런 비자 문제는 여러 군데 상담하고 결정해야 좋지만, 우리는 좁은 교민 사회에서 아웃팅을 걱정하느라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상담받기도 어렵다. 고민 끝에 정한 곳에 업무처리를 맡기고도 에이전시가 아웃팅을 시키지 않을까 걱정한다. 왜 우리는 어딜 가도 이렇게 복잡하고 설명할 게 많은 건지 원망스럽다.

이민자들은 뉴질랜드를 집으로 선택했고, 이곳이 집이다.
They have chosen to make New Zealand their home, and it is their home. - Jacinda Ardern

재신다 아던 총리는 크라이스트 처치 총격 테러에 빠르고 현명하게 대처했다.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이민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상황을 파악해 바로 당일에 기자회견을 열었고, 주민들의 안전을 당부했으며, 총기 법을 점검해 모든 반자동 소총의 판매를 즉시 금지하고, 모든 희생자의 장례식 비용과 가족들의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런 총리를 가진 나라답게 곳곳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학교에서는 상담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계속 안내한다. 수업을 멈추고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시내 중심가와 동네 이슬람 사원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이어진다.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 때 추모와 지원에 지독하게도 반대하던 혐오의 언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지 안타깝다.

그런데도
이곳에
살기로 했다

나는 아마 여러모로 테러리스트가 싫어하는 이민자가 맞을 거다. 백인이 아니고 이 나라 시민권이 없다. 나도 국민으로 태어난 나라가 있는데, 자처해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다. 내게 편한 언어는 영어가 아니고, 이 나라의 상황을 잘 모른다. 사건의 소식을 빠르게 접하는 것도, 대처 방법을 찾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는 평생을 살았고, 고등교육을 받았고, 고급 한국어를 구사했다. 정보력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웠고, 어떤 상황에도 SNS를 통해 시시각각 흐름을 파악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뉴질랜드 뉴스를 종일 틀어놓고도 내가 들은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곳에 살기로 결정했다. 익숙한 것들을 포기하고 훨씬 더 불리한 조건에서 뭐 하나 할 때마다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내가 바보가 아닌데, 굳이 그런 판단을 했다.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큼 본국이 나한테 힘들었다면 그게 진정 내 나라가 맞는 걸까? 그걸 나를 위한 나라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테러가 발생하고 마음 둘 곳 없는 외국에서 두렵고 외로웠던 순간, 총리의 대처가 믿음직스러워 마음이 놓였다. 사회에서 언론에서 이민자를 추방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우리 모두 함께 이겨나가자고 하니까 거짓말처럼 참 힘이 되고 든든했다. 안전하다는 감각은 사실 별 게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 없지만, 슬픔을 나누고 연대할 수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막을 수 없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혼자가 아닐 거라고 안도할 수는 있다. 적어도 내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당장 날마다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사실은 그냥 믿음이다. 무슬림이어도 성소수자여도 외국인이어도 그렇게 믿고 하루하루 살 수 있는 것이 사치일 수는 없다.

나는 결국 이도 저도 될 수 없고 이렇게 살게 될 거다. 여기서 오래 살고 영주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는 데에 성공한다 해도, 영혼은 반쯤 한국인인 채로 영원한 이방인이 될 거다. 여기서도 세월호가 생각나고 여기서도 한국의 여성혐오가 생각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니까 말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차별을 받고 사는 것보다,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 외롭게 사는 게 더 나은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리를 위한 국가는 없는 걸 알지만, 우리도 어딘가에서는 살아야 한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지만, 고심 끝에 선택한 새 지옥이 조금 더 나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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