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미국 유학

<인종차별> 카테고리의 인기 기사

언니, 우리 이민갈까? 2. 내가 선택한 지옥

유의미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 이민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테러였다. 50명이 사망했고 또 50명이 다쳤다. 테러범은 이슬람 사원을 공격했고, 많은 무슬림 교도들이 희생됐다. 같은 날, 내가 지내던 오클랜드에서도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기사를 봤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다음 날 시내에 나가니 평소와 달리 이상할 만큼 백인들밖에 안 보였다. 주차장에서 깨진 유리창을 보고 덜컥 겁이 났고, 길에서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백인 남성이 무서웠다. 그날 외출을 하기 전에 수없이 고민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나오자...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7. 유색인종 대학원생의 학회 살아남기 안내서

숙희

* 영화 <미드소마>에 대한 미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얼마 전,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아리 아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를 보러 갔다. 나는 호러의 장르적 특성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무서운 것은 참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예고편도 줄거리도 찾아보지 않은 채, 영화의 배경이 스웨덴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갔다. 그런데 <미드소마>의 진정한 공포는 스웨덴의 호르가에서 펼쳐지는 집단 광기나 의문스러운 살인이 아니라 대학원생 뼈 때리기에 있었다. 주인공 대니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은 인류학과 대학원생이다. 그는 졸업 논문의 주제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한다. 대니와 크리스티안은 스웨덴의 호르가를 연구하는 친구 조쉬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9. '평범한' 인종차별

한슈

한국에서도 차별과 편견, 그리고 위협은 실재한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온 곳은 문화도 언어도 인종도 다른 이방인이 되었다. 눈에 띄게 다른 인종으로 산다는 건 외로운 일이며, 너무나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던 글래스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길을 지나가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니하오’라는 인사는 떠나올 때까지 익숙해질 수 없었고, 어디서 왔냐는 물음은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의 첫인사와도 같았다. 특히 내가 유학을 갔던 시기는 한창 북한의 핵 문제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라서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는 당연하게 북한, 김정은, 핵무기 이 세 단어가따라붙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남한과 북한...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2. 도플갱어 매직

숙희

그래, 방금 A가 중요한 지적을 했지. 백인여자교수 S가 말했다. 마치 고요한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주 잠시 교실의 시간이 멈추었다. 방금 중요한 지적을 한 것은 A가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사이, 구식 창문형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교실을 채웠다. 누가 얘기 할래? 서로 눈치만 살피는 사이, 호명된 A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숙희가 얘기한 거야....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9. 백인이 아니라서

숙희

한국 대학에서 영문과 학부생이던 시절,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과목 중에 “고급영어글쓰기 1”과 “고급영어글쓰기2”가 있었다. 나는 성적을 후하게 주기로 소문 난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는 우리 과에서 “머리 숱 많은 주드 로”로 알려진 유명인이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첫 수업을 듣던 날 주드 로 2.0을 보고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그가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학계의 위계 질서나 풍토에 무지했던 나는 주드 로 2.0이 너무 똑똑해서 어린 나이에 박사학위도 받고 교수 임용도 (왜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받은 줄로만 알았다. 지금 와서 깨달은 것이지만 주드 로 2.0은 아마 대학원생이었을 것이다. 박사논문을 쓰는 동...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1. 문학이론과 백인 남자의 저주

숙희

“너는 너무 조용해.” 박사과정을 시작한 첫 해에 내가 가장 자주 받은 피드백이다. 내게 이런 피드백을 가장 많이 준 것은, 별로 놀랍지 않게도 문학이론 수업을 담당한 남자 교수 J였다. 이쯤 되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J는 백인이다. 분명히 하자면,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전의 나는 수업시간 동안 말이 많은 학생은 아니었다. 나는 쓸데없이 나서거나 주의를 내게로 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토론에 기여할 법한 건설적인 의견이나 타당한 의문이 없다면 굳이 진행 중인 논의에 끼어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것을 선호할 뿐이지, 하고싶은 말이 있거나 해야 할 발언이 있다면 가만히...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5. 백인 페미니스트의 덫 (상)

숙희

지금은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학교에 대한 욕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이런 내게도 학교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던 시기가 있었다. 보스턴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나는 상상에 부풀어 있었다. 눈 내리는 뉴잉글랜드의 겨울, 머그에 든 커피를 마시며 벽난로 옆에서 논문 쓰기(벽난로는 커녕 거실도 없는 집에서 살았다), 지도교수님과 학회에서 패널 발표 하기(지도교수님이 학교를 떠났다), 동기들과 캠퍼스 잔디 밭에서 책 읽기(혼자 읽었다) 등. 대학원생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마는, 그래도 나름대로 장밋빛 인생을 꿈꿨다. 어쨌거나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 중 하나에 붙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내가 찾던 완벽한 학교였다. 사립학교라...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4. "네이티브" 스피커

숙희

Native. [형용사] (사람이) 태어난 곳의; 토박이의 (오래 산). 대학원 유학이 결정되어 주위에 소식을 알렸을 때,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얘기다.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이 있으니 너는 걱정 없겠다고. 비자 문제 때문에 체류 기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미국을 오갈 때 마다 악명높은 출입국심사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 캠퍼스 밖에서도 일을 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적어도 법적으로는 내가 이 나라에 대한 어떤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은 분명 크나큰 행운이고 특권이다. 너는 네이티브(native speaker)라 걱정 없겠다. Native speaker. [명사] 모국어 사용자; (특정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 네이티브면 걱정 없을까 너는 네이티브(native)라 걱정 없겠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다. 내가 네이티브 스피커, 즉 원어민이라 악센트나 문법적 오류 없이 영어를 하니 문제 없으리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엔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른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영문과 대학원생은 전공 특성상 영문 텍스트의 질적 연구를 할 뿐만 아니라, 연구 논문이나 저서의 문학적 질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는 규칙은 아니지만, 유려하고 세련된 글을 선호하는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있기 때문이다. 뻔한 얘기지만, 영어가 모국어이면 유리한 학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영문...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8. 무엇이 문학인가, 무엇이 인간인가

숙희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과정 3년차가 되면 보통 구술 시험을 본다. 학교마다 시기나 방법은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텍스트를 20권 전후로 추려 목록을 몇 개 구성한 뒤 한 학기 내내 공부를 한다. 그 내용으로 학기 말에 2시간 정도 교수 세 명과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이 구술시험을 통과해야 논문 계획서 (prospectus)를 쓰고 논문 쓰기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논문을 쓰기에 앞서 그 동안 들었던 수업과 자신의 연구를 체화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시험이기에, 많은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목록의 내용이나 구술 시험에 들어가는 교수 위원회를 구성할 자유를 준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16세기 문학의 제국...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11. '사이다'는 없다

숙희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마음 뿐만 아니라 몸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버텨야 하는 힘겨움이 몸에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무게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나는 어느새 학교와 보스턴의 무게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 힘겨움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계속 이 학교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의 전환, 보스턴을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의 무게가 덜어졌다. 몸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억압에 무뎌지는 것, 그래서 자유를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6. 백인 페미니스트의 덫 (하)

숙희

“네가 정식으로 L의 수업을 듣는 건 불가능해.” E는 딱 잘라 말했다. 내가 그 학기 개설된 L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유일한 방법은 학점을 인정받는 것을 포기하고 청강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세미나 두 개를 들을 예정이었고, 학부 수업 조교 일에 더해 매주 최대 10-12시간씩 학교의 라이팅 센터에서 튜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점 인정조차 받지 못할 수업량을 늘린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대신, 나는 그 다음 학기에 L과 독립 연구(independent study)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A와 함께. 독립 연구는 말 그대로 교수와 대학원생이 과에서 제공되는 커리큘럼과는 별개의,...

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10. 위기탈출 넘버원

숙희

미국에서 살기 시작한 뒤 끊임없이 겪었던 크고 작은 인종차별에 불구하고 시간이 멈추는 일은 없어, 눈 떠 보니 2년이 지나 있었다. 네 학기가 지나는 동안 나는 수업 11개를 들었으며, 학회 세 개에서 발표를 했다. 대학원 밖의 삶도 단단하고 풍성해졌다. 이사를 한 번 했고, 연애를 두 번 끝냈으며,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사이사이에 보스턴이 힘들다는 핑계로 한국에 자주 갔고, 십 년 넘게 알아온 가까운 친구들이 두 명이나 놀러 왔다. 음식은 여전히 맛이 없고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이 옅어지는 일도 없어, 그럭저럭 보스턴에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2018년 9월, 가을학기가 시작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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