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영문학 박사과정 3년차가 되면 보통 구술 시험을 본다. 학교마다 시기나 방법은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텍스트를 20권 전후로 추려 목록을 몇 개 구성한 뒤 한 학기 내내 공부를 한다. 그 내용으로 학기 말에 2시간 정도 교수 세 명과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이 구술시험을 통과해야 논문 계획서 (prospectus)를 쓰고 논문 쓰기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논문을 쓰기에 앞서 그 동안 들었던 수업과 자신의 연구를 체화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시험이기에, 많은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목록의 내용이나 구술 시험에 들어가는 교수 위원회를 구성할 자유를 준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16세기 문학의 제국 만들기>처럼 한 시기의 문학 내에서 소설이나 희곡 등의 장르를 불문하고 공통의 주제가 있는 목록을 만든 사람도 있고, <섹스, 드레스, 그리고 퀴어 퍼포먼스> 같이 다양한 시기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영문학과 문화연구, 퍼포먼스 연구 등 다양한 학문영역을 포괄하는 목록을 만든 경우도 있다.
우리 학교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수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프로그램 디렉터가 했다. 나는 어떤 교수와는 절대 하기 싫다는 거부권을 단 한번 행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목록을 만드는 방식도 이미 세세하게 정해져 있었다. 중세 영문학, 16세기 영국 문학, 17세기 영국 문학 …(이하 생략)…19세기 미국 문학, 20세기와 21세기 영미권 문학, 현대문학, 문학 이론 등 주로 시대별, 나라별 문학으로 엄중하게(고리타분하게) 구분된 영역 중에 6개를 선택해 목록을 구성해야 했다. 학계의 최근 동향과는 동 떨어진 방식이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5월에 예정되어있던 구술 시험을 치지 않았다. 같은 해 2월 중순에 다른 대학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아 시험을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구술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학교를 그만둔다는 의사를 전할 때는 속이 시원했다(이 뒷 이야기는 나중 화에서 풀 예정이다).
그러나 합격여부를 기다리며 구술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19세기 미국 문학> 등의 목록을 만들며 나는 “미국 문학”이라는 범주 그 자체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 문학"과 "흑인 문학"
박사과정 첫 학기에 나는 이론 수업 하나와 소설 수업 두개를 들었다. 두 소설 수업 모두 미국 문학 작품 위주로 구성되었는데, 한 수업은 <미국 역사소설 The U.S. Historical Novel>이라는 제목 아래 개설되었고, 다른 수업은 <항적 속에서: 흑인성과 존재 In the Wake: On Blackness and Being>라는 제목 아래 열렸다(이 수업의 제목은 교수님의 동명의 책 제목에서 온 것이다).
수강신청을 할 때 부터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백인 선배들이 입을 모아 첫번째 수업을 추천하는 반면에, 두번째 수업은 듣지 말라고 입을 모아 말렸기 때문이다. 먼저 언급한 수업의 담당교수는 백인 남자, 나중에 언급한 수업의 담당교수님은 흑인 여자였으므로 나의 의구심은 짙어질 수 밖에 없었다.
선배들은 흑인 여자 교수님의 수업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독서량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교수님이 피드백을 제 때 주지 않기 때문에 별로라고 했다. 피드백을 제 때 받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대학원에선 사실 흔한 일이고, 사람이 영문과 대학원에 오는 이유가 어려운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나는 두 수업을 모두 신청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흑인 여자 교수님은 북미학계에서 이미 엄청난 유명인이었다. 우리 수업을 진행하던 학기에 교수님의 두번째 책 <항적 속에서>가 발표되었는데, 이 책은 학술서적임에도 불구하고 1쇄가 곧바로 품절되는 이례적인 출간 성적을 거두었고, 이미 존경받고 있던 교수님을 부정할 수 없는 스타 교수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교수님이 보다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른 뒤, 교수님을 뒤에서 욕하던 백인 박사생들이 갑자기 친한 척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참 재미있었다.
특이한 것은 첫번째 수업에서 다루는 텍스트들이 대부분 19세기 미국 문학의 범주에 속하고, 두번째 수업에서 다루는 텍스트들이 대체로 20세기 미국 문학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수업에 대해 얘기할 때 백인 교수의 수업을 “19세기 미국 문학” 수업이라고 얘기하는 반면, 흑인 교수님의 수업은 20세기 미국 소설 수업이라 칭하지 않고 “흑인 문학” 수업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대체 (미국) 문학을 무엇이라 생각하길래?
무엇이 문학인가
누가 인간인가
사실 이건 우리 학교만의 문제라기 보단 미국 학계 전반에 걸친 문제이다. 백인, 특히 백인/헤테로섹슈얼/남성 위주의 영문학에 반기를 들며 많은 이민자/소수자 연구자들은 흑인 문학, 아시안 아메리칸 문학, 여성 작가 문학, 퀴어 문학 등의 학계 편입과 인정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자 문학(minority literature)의 제도화는 학자 리사 로우가 지적하듯 “불가피한 역설”을 불러왔다. 소수자 문학이 제도에 편입되면서 백인/남성/헤테로중심적인 전통 학문에 대한 비판이 학계 내에서 가능해진 동시에, 학계가 이러한 소수자 문학을 피상적인 다문화주의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미국 문학, 또는 그냥 문학과 구분되는 흑인 문학이나 아시안 아메리칸 문학이라는 범주가 생겼기 때문에, 이는 문학의 주체인 미국인 혹은 나아가 인간의 기본값이 백인 남성이라는 점을 오히려 공고히 했다.
무엇을 문학으로 간주하는 가의 문제는 결국 무엇을 인간으로 간주하는 가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학자 캔디스 추가 설명하듯이 문학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누가 인간을 재현하는가” 하는 문제가 기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서구 문학 속에서 인간으로 재현되는 것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백인, 남성이었다. 소수자 문학의 제도화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값”에서 벗어나는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등의 차이들을 호명하고, “문학”의 범주에서 외부화 하는 작용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학교의 대다수 백인들은 문학/미국문학을 본질적으로 백인의 것으로 상상한 것이다.
흑인 여자 교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은 백인 남자 교수에 대한 선배들의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평가였다. 그들은 이 남교수의 수업이 얼마나 포용적이고(inclusive), 여러 정체성을 재현(represent)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지 (diverse)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미국 다문화주의의 세 가지 표어로 설명되는 듯한 백인 남자의 수업이라니 시작부터 흥미진진했다. 당연하지만 이건 비꼬는 말이다.
백인 남자의 다문화주의
그리고 한 학기 동안 나는 백인 남자의 다문화주의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리디아 마리아 차일드의 <호보목 Hobomok>과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 The Last of the Mohicans>를 읽으며 미국 문학 속의 미국 원주민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이 소설들의 문학적 가치나 미학적 기법 등등에 대해 얘기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리디아 마리아 차일드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는 당연하지만 둘 다 백인이다. 뿐만 아니라 두 작품 모두 미국 원주민에 대한 “문제적”(이라 쓰고 인종 차별적이라 읽는다) 서술로 비판 받아왔다.
백인 여성과 원주민 남성의 결혼이 등장하는 차일드의 작품은 19세기에 쓰여진 것 “치고는” 진보적이라는 평을 받는데, 결국 인종차별적이란 뜻이다. 작품의 제목인 호보목은 원주민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데 호보목은 영미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의 전형이다. 그는 보통의 “야만적인 원주민”들과는 달리, 백인들이 만족할 정도로 “문명화 된” “예외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한 편 쿠퍼의 작품은 제목부터 또 다른 인종차별적인 스테레오타입에 기댄다. 이는 “사라지는 원주민(vanishing Indian)”이라는 신화로, 미국을 정착 식민지화한 유럽인들이 원주민 집단학살과 영토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백인 사회에 통합되거나 함으로써 사라진다는 담론을 만들고 퍼뜨린 것이다.
미국 원주민이, 원주민의 시점에서 쓴 문학 작품이 엄밀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교수는 굳이 백인 작가들의 작품을 골랐다. 짓칼라 샤(Zitkála-Šá) 같은 원주민 작가들은 당연한 얘기지만 인종차별적인 문학 장치에 기대지 않고 서사를 펼친다. 노예제가 19세기 미국 소설에 미친 영향을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는 흑인 작가의 작품도 읽긴 했지만, 백인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다루며 보낸 시간이 훨씬 길었다.
반면에 <항적 속에서> 수업에서 우리는 해리엇 제이콥스의 <린다 브렌트 이야기: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을 읽으며 시작했다. <린다 브렌트 이야기>는 노예였던 흑인 여성이 쓴 최초의 자서전인데, 제이콥스는 본인의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 아래 글을 출판한다. 흥미로운 것은 제이콥스가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을 때 당대에 <톰 아저씨의 오두막>으로 이미 유명한 노예제 폐지 운동가였던 해리엇 비처 스토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백인 '거장'의 뒷모습
제이콥스는 원래 스토의 도움을 받아 구술한 자신의 이야기를 출판하고자 했지만, 스토는 제이콥스의 이야기를 독립적인 책으로 내는 대신에, <톰 아저씨의 오두막 해설서 A Key to Uncle Tom’s Cabin>에 제이콥스의 일생의 서사를 하나의 일화로 수록하고 싶다고 제안한다. 당시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흑인들이 백인의 손에 경험하는 폭력이 지나치게 잔인하니 날조되고 과장된 것이라는 여론이 있었고, 스토는 자신의 책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했던 자료 조사를 담은 <해설서>를 출판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해설서>에서 스토는 자신이 보고 기록한 흑인들의 실제 경험을 소설에 가져다 썼음을 명백히 한다. 스토는 제이콥스의 경험을 자신의 소설의 진위를 입증하는 데에 가져다 쓰려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토는 제이콥스의 이야기의 진실성을 확인하겠다며 제이콥스의 동의 없이 그녀의 고용주이자 지지자였던 매리 윌리스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과정에서 스토는 제이콥스가 숨겼던 그녀의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해 윌리스에게 알리기도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이콥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출판하기로 마음 먹으며 마찬가지로 노예제 폐지 운동가였던 리디아 마리아 차일드의 도움을 받게 된다. 둘은 신뢰 깊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차일드는 제이콥스의 편집자로써 그녀에게 서사의 결론에 대한 여러 조언을 하고, 궁극적으로 제이콥스는 차일드가 제시한 결말로 서사를 끝낸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미국문학과 흑인문학 등의 소수자 문학은 결국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고, 스토와 제이콥스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 작가들은 유색인종의 차별의 경험과 저항의 서사를 가져가 자신의 서사에 진실성을 부여하곤 한다. <순수 미국문학>은 유색인종에 대한 폭력과 박탈, 주변화와 상품화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나 깨어 있다는 백인 남교수는 작품이나 작가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했다.
“너는 지나치게 도덕적인 어조로 스토를 훈계하고 있어.”
그가 내 기말페이퍼에 쓴 코멘트다. 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등장하는 흑인 소녀 톱시에 대해 페이퍼를 썼다. 톱시는 작중에 말썽꾸러기로 등장하는데, 끊임없이 백인들을 비웃는 등 반항적이고 전복적인 인물로 읽을 수 있다. 그런 톱시의 “주인”인 오필리아는 톱시를 통제할 방법을 찾지 못해 톱시를 마치 청소도구 마냥 옷장 속에 가둬버리는 상상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스토의 서술 방식이 오필리아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이다. 톱시는 20장에 등장한 뒤로 다시는 직접적으로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스토가 자신이 훔친 흑인들의 서사를 통제하지 못해 폐기하는 순간들에 대해 썼다. 스토 본인 조차 <해설서>에서 흑인들의 경험을 가져다 썼다고 했으니 나는 사실을 언급했을 뿐인데, 내가 훈계를 한다니.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같은 궤변이다. 내가 몰랐던 것은, 해리엇 비처 스토 같은 몇몇 작가들은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모셔진다는 것이다. 작품의 윤리에 대한 고민없이 거장을 그저 받들어 모셔야 하는 것이 <미국 문학>이라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