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치구, 키타센쥬
(足立区、北千住)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첫 번째, 일본어. 두 번째, 일본인.
첫 번째, 일본어의 경우. 일단 처음 접해보는 경어체들이 너무 많았다. 괜히 일본 취직할 때 ‘비즈니스 일본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회화(JLPT 2급)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솔직히 지금도 비즈니스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못한다.)
하나의 예로 分かリました(와카리마시타, 알겠습니다)의 경우 かしこまりました・承知いたしました・了解いたしました 등등의 경어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걸 귀로 들어본 적만 있지 입으로 말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무슨 말만 하면 발음이 꼬이는 것이다. 그것도 옆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는 일본인 선배들 앞에서!
지금이야 ‘아, 외국인이 실수 좀 할 수 있지 뭘 그러냐!’ 라는 생각으로 뻔뻔하게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나지만, 그때는 일본인 앞에서 일본어 실수하던 게 왜 그렇게 창피하던지. 게다가 이런 '잽스플레인'도 존재한다.
“몰래 상.”
“?”
“감사합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아리가또 고자이마스)할 때 끝 부분을 마-스라고 하면 안 돼요.”
“왜요?”
“성의 없어 보이고, 음…. 아무튼 가게 종업원들이 고객한테 쓰기엔 부적절해요.”
'개뻥'이다. 내가 일본에 2년 가까이 살면서 저렇게 끝을 늘여 말하는 알바생만 몇 명을 봤는데?
“몰래 상.”
“?”
“네 (はい, 하이) 라고 말할 때 하-이 라고 말하면 안돼요.”
두 번째 '개뻥'이다. 우리 회사 CS팀 직원들 저렇게 말하는 걸 내가 몇 번을 봤는데…
그러나 차라리 일본어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였다. 두 번째 문제, 일본인. 이건 정말… 겪어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에노점 오전 오후 영업시간대를 통틀어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었기에, 나는 한국에 대한 별 시답잖고 가당찮은 말들을 들어야 했다.
가령, 젓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그렇다.
“한국인들도 젓가락 써?”
“한국인들은 그렇게 젓가락을 써?” (내가 젓가락질을 특이하게 하는 편이었다)
“학교에서 젓가락질 안 가르쳐줘? 어른들이 뭐라고 안 해?”
너네 다 DJ Doc 노래 한번씩 듣고 와. 젓가락질 못해도 안 굶어 죽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인 동료하고 일본어로 대화하는 걸 보며)
“한국인들은 중국어 못해?”
“?????? 못하죠??”
“근데 한국하고 중국하고 가깝잖아. 옛날엔 한국도 한자 썼으니까 중국말도 배웠을 것 아냐?”
이건 또 무슨 신선한 멍청한 소리지…? 그렇게 치면 너희도 중국어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외에도 자잘한 발언들은 많았다. 하지만, 점차 지나면서 ‘그래, 어디에나 멍청한 사람들은 많고, 섬나라 우물 안 개구리 정치 무뢰배들이라면 그럴 수 있지(북한 아나운서 음성 자동재생)’라는 생각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새로운 문제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인종차별
통계적으로 명확히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 눈대중으로는 이치란 라멘의 손님의 45%는 중국인, 25%는 한국인, 나머지 20%가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었다. 일본인 손님은 10%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다른 지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에노점은 그랬다. 그리하여 알바생들도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졌다. 중국인, 대만인, 인도네시아인 등등.
하지만 동일 노동을 한다고 동일 대우가 보장되지는 않는 법. 10분 지각했던 인도네시아인 알바생이 부엌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申し訳ございません('죄송합니다'의 경어체 표현. 우리나라로 치면 ‘사죄 드립니다’ 정도)을 하면서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던 다음날, 일본인 알바생이 40분 지각을 했음에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갔던 그 상황을 보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슬슬 감지할 무렵이었다.
정확히 일한 지 한 달하고도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패기도 잠시, 알바시간을 월화수목금 새벽 다섯 시 반에 알뜰하게도 넣어 놓은 2주 전의 나의 명치를 때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언제 그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잠시 졸았고, 타이머가 울리는 걸 듣지 못했고, 머리를 정리하고 부엌에 들어갔을 때는 2분 정도 시간이 늦어 있었다. 아 젠장, 나도 스미마셍 대잔치를 해야만 하는가.
“몰래 상. 11시에 끝나고 잠시 남으세요.”
“네.”
그리고 직원 전체 휴게실에 매니저와 독대한 내 앞에 들이밀어진 것은 위에 ‘시말서始末書’라고 쓰여있는 A4용지 한 장이었다.
“쓰세요.”
“…뭘요?”
“본인 오늘 2분 늦었잖아요. 이 한자 알아요? 시말서요. 한국엔 시말서라는 말이 없나?”
지금 제가 시말서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나는 그 전까지 시말서를 써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무슨 내용을 써야 하죠?”
“본사에 근태 자료로 제출해야 하니까, 오늘 늦은 이유와 결과와 사과의 말을 쓰면 돼요.”
그러니까 머리 묶느라 2분 늦었다는 경위를….
“여기서요? 지금요? 이 종이에 손으로 쓰라고요?”
“네. 일본어 못 써요?”
그러니까 그걸 묻는 게 아니라니까요! …라는 말을 삼키며, 초등학생 때의 반성문의 기억을 억지로 떠올려가며 꾸역꾸역 완성했을 때였다. 한 열 줄 정도 썼었나?
“몰래 상. 다 쓴 거에요?”
“네.”
“이거 다 채워야죠.”
뭐라고요?
“어… 저 아까 말씀하신 이유랑 경위랑 사과문 다 썼는데요.”
“그래도 써요. 할 말이 없으면 고치든가 만들어서 쓰면 되잖아요.”
아니 쓰는 건 둘째치고…. 이렇게 다들 옆에서 팝콘 먹으며 지켜보고 있으면 쓸 말도 생각이 안 나는데요. 좀 혼자 있게 해주시면 안 돼요? 그리고 컴퓨터도 아니고 자필로 A4용지를 그것도 일본어로 채우라니. 저 아직 일본에 떨어진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아무튼 꾸역꾸역 아무 말 대잔치를 해가며 ‘제가 너무 피곤해서 휴게실에서 잠시 졸았는데 머리카락을 다시 정돈하느라 2분 정도 늦었으며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어떻게든 a4용지를 겨우 채워서 써냈는데…. 머리카락(髪)의 한자를 틀린 것이었다.
“다시 쓰세요.”
“네?”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요. 한자 틀렸잖아요.”
“(할 말을 잃음) 화이트로 수정하면 안 돼요?“
“한국에선 회사 제출하는 서류에 화이트 써요?”
“처음부터 자필로 서류를 쓰지 않는데요. (게다가 알바가 시말서를 쓰는 일도 없단다)”
“…여긴 일본이에요.”
망했으면.
A4용지를 한 다섯 장쯤 갈았을까? 11시에 시작했던 길고 긴 매니저와의 독대는 어느새 12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처음 보는 오후 타임 직원들이 내 주위로 삼삼오오 몰려들어 내가 시말서를 쓰는 걸 구경하기 시작했다.
뒷목으로 느껴지는 시선들을 점차 의식하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당황했는지 아는 한자도 계속 틀리기 시작했다. 거친 시말서와 불안한 글씨와 그걸 지켜보는 매니저… 이건 아마도 전쟁 같은 알바….
“그런데 이 분은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에요?”
“아, 이 친구(この子, ‘얘’라는 뜻이 강함)가 한자를 잘 못 써서요. 역시 한국분은 한자에 좀 약하네요~”
원래도 수족냉증이 있는 편이긴 한데, 그 순간 손가락 끝에서 피가 사-악 하고 빠져나가면서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한없이 구리다. 아, 뭔가 이상한데. 내가 잘못한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구경거리와 비웃음거리가 되어야만 하나? 다른 놈은 1시간 지각해도 넘어가놓고 나는 2분 지각했는데? 그 사람하고 나의 차이는 뭐지?
결국, 집에 가서 다시 써 오라는 매니저의 지시를 받았다. 그 날, 처음으로 학원을 빼먹고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일본은 이런 것으로도 시말서를 쓰나? 보통 회사 돈을 횡령하거나 회사의 명예를 중대하게 실추시켰을 때 쓰는 것이 시말서 아니었나? 나는 그 정도로 이 가게에 심대한 피해를 끼쳤나? 내가 평소에 근무태도가 불량했나? 일본어를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너는 그럼 한국에 가서 한 달만 살면 손님들하고 프리토킹이 가능하냐? 내가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렸나?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やる気(야루키, 일을 하려는 노력 또는 열정)가 다소 부족하긴 하지. 니들처럼 ‘끊임없이 찾아서 일하려는 노오력’도 부족하고. 근데 난 정직원도 뭣도 아닌 고작 일한 지 한 달 된 아르바이트인데요? 열정을 사려면 돈을 주셔야지?
한 달 전 40분 늦은 그 자식은 왜 시말서를 안 쓰고 나는 왜 써야 했나? 쓰려면 똑같이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일을 참고 계속 다녀야 할까? 다니면 또 사소한 일에도 시말서를 쓰라고 하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결론은 “내가 여기 아니면 알바할 곳 없냐?”였다.
그 다음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시말서를 내고, ‘왜 인감을 찍어오지 않았냐’라는 매니저의 잔소리에 ‘그만 둘 거거든요’라고 답하고, 딱 두 번 얼굴을 봤던 점장한테 ‘니네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이런 인종차별의 소지가 있는 짓은 지양하여야 하지 않겠니?’라는 라인을 남기고, 차단을 먹이고, 모든 비품을 반납하고 나오기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하룻밤을 새워 고민한 끝에 제 분을 못 이긴 채로 씨익거리며 간 것치고는, 결국 그쪽도 내가 딱히 필요없다는 씁쓸하고도 당연한 귀결이 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곳은 ‘관광객 장사’로 오랜 기간 동안 성업하겠지.
돌이켜보면 이것도 인종차별인지, 아닐지, 혹은 내가 너무 나약했던 것인지, 그때는 눈앞의 일만 타개하기 위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했던 것인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굳이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나처럼 지극히 상식적이고 착하게 살아온 일반 소시민이 두 번 세 번 거듭 생각해봐도 그렇게까지 잘못한 게 없는데? 그렇게까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나는 이 일본 사회에서 최약체 중 하나인데?
앞서 말했듯 내가 썩 좋은 모범 사례는 못 되지만, 적어도 예비 워홀러들에게 이것 하나만은 충고해주고 싶다. 일본은 넓고! 워홀 기간은 짧고! 알바할 곳은 많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특히! 혐한이나 인종차별이다 싶으면! 바!로! 때려치세요!
아무튼 짧디짧은 나의 첫 알바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한 달 반 만에 나는 집도 절도 없는 백수가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아다치구 키타센쥬 쪽에 겨우겨우 쉐어하우스를 구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시기에 놀러온 친구들과 함께 후지큐 하이랜드로 떠난 나들이가 내 삶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롤러코스터보다 더 괴상한 인생코스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모르고 말이다.
도쿄 표류기 4컷만화
열쇠 vs 도어락
일본에서는 방에 입주할 때 청소비, 화재보험비, 그리고 “열쇠교환비”를 냅니다. 즉 전에 쓰던 사람이 쓰던 열쇠 대신 다른 열쇠로 바꾸는 비용을 '입주자'가 내야 하는 거지 같은 구조입니다. 어느 날, 소우 상과 바로 이 열쇠교환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