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3구 표류기 프롤로그. 도쿄, 외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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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3구 표류기 프롤로그. 도쿄, 외노자

몰래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국뽕' 질문 3종 세트, 일본 편

유학생이든,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든, 아마 일본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일본에 왜 왔어요?”

이 질문은 항상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왜 왔냐니? 소기의 목적은 '덕질'이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블랙 회사와 사축(社畜, 회사의 가축이라는 의미) 생활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일본이 좋아요'라고 말하기엔 이제껏 만난 일본인들 중 8할은 나를 빡치게 만든 것 같다. 특히 아베 총리…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신 안 보고 싶은데 왜 3기 임기를 하고 있는 거죠? 결국 이런 질문에는 항상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기 마련이다.

“아, 음, 그러니까 해외 경험을 쌓고 싶었는데요. 마침 사촌이 (안 만난지 반년은 넘었다) 도쿄에 살고 있고 공기도 좋고 살기도 편한 곳이라서요. 하하하하하(어색)”
“아 그래요? 일본 어때요? 살기 좋나요? 어떤 점이 좋아요?”

역시 가장 흔한 패턴이다. 젠장. 제발 국뽕 질문 하지 말라고 (속으로) 골백 번 말했다. '두유 노 김치' 질문을 받는 외국인들의 심정이 이럴까. 

“공기가 좋고 환경이 좋네요. 아하하하하(그만 물어봐)”
만화 이민

반절은 여기서 “아~ 나루호도~(과연)” 하면서 끝나야 할텐데. 꼭 한 번 더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소오데스까(そうですか, 그런가요)~ 그럼 일본 음식은 어때요?”

짠데요. 당신들은 맛에 중간이 없어요, 라고 대답하면 내 사회생활이 파탄난다. 참자. 나는 지금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 청해 영역에 등장하는 B 역할이다.응시자들이 예상할 만한 모범답안을 말해야만 한다.

“입에 잘 맞는 편이에요. 뭐 스시라든가, 라멘이라든가(때에 따라서 튀김이나 카레로 바꾸어 대답하는 레퍼토리이다)...”

여기서 한 가지 팁. '제가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일본 음식이 입에 잘 맞더라고요~'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 (내가 그랬다.) 그랬다가는 곧바로,

“맞아요~ 한국 음식은 확실히 맵죠? 저는 못 먹겠더라고요. 너무 매워서. 한국인들 굉장해요~”

운운하는 폭풍 돌려까기를 듣게 될 것이다. 아마 일본 거주 외국인 중에서 이런 국뽕 질문 3종 세트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장담한다. 없다고 두 번 말한다.

만화 이민
  1. 일본 어때요?
  2. 일본 음식 어때요?
  3. 일본 좋아요? 日本が好き?

무슨 시리얼 입력번호라도 일본인들 뇌 속에 입력되어 있는 것 같다.

현재 나는 거의 한 달에 세 번은 이 패턴을 반복하며 사는 넋부랑자 외국인 노동자다. 벌써 도쿄 생활 어언 2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나는 일본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외국인이라면 거절부터 하고 보는 집주인들과 부동산 회사, 각종 서비스 수수료와 속 터지는 아날로그 행정 처리, 한국과 별반 차이 없는 임금과 아주 많은 차이가 있는 세율. 세전과 세후가 30% 차이 나는 기분, 절대 말로 전달할 수 없다. 평일 5일 중 4일 연속으로 터지는 철도 사상사고와 그로 인한 전철 운행 지연. 서울 9호선 저리 가라 할 수 있는 만원 통근 전철(JR은 이쯤 되면 JiRal의 약자임이 틀림없다) 등등.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냐고?

그러게요

20대 중반, 날백수로 살 수 없었으니 해외 경험이라도 쌓고 싶어서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하러 왔다. 돌아갈 상황이 여의치 않아 취직을 했다. 취직을 하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사이에 다시 주변 상황이 좋아져서 지금은 다시 한국 컴백 계획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다. 이 모든 게 딱 1년 반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이 연재 전체의 3줄 요약 버전이다.

워킹 홀리데이를 할 수 있는 하고 많은 도시 중에서 도쿄를 고른 이유는? 첫째, (반년 째 얼굴도 못 본)사촌이 프로그래머로 나름 잘 정착해서 살고 있었기에 모부님의 반대가 없었다. 둘째, 다년간의 덕질을 통해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다. 사실 ‘할 수 있다’는 표현은 조금 과장이다. 여기에 회화 실력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내 회화 실력을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셋째, 한창 그 즈음 미디어들이 일본 취업 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 시리즈는 그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날백수가,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분석의 결여로, ‘호황’이라는 두 글자만 믿고 맨땅에 헤딩하러 와서, 도쿄도 행정구역 23구에서 도합 20번의 뚝배기를 깨뜨리고 외노자로 진화하기까지의 암담한 기록이다(나머지 3개 구에 그다지 좋은 기억이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못 가봤을 뿐이다). 이 시리즈에는 분량 상 10구에서 있었던 일을 적어보기로 한다. 만난 사람 중 8할은 재수없었고, 2할은 음침했고, 좋은 사람은 5% 정도였다고 할까요? 도합 105%의 일본인을 만나 본 몰래 상.

제목부터 ‘표류기’이듯, 나는 결코 성공적인 일본 정착 사례가 아니다. 다국적 기업이나 외국계에 취직해서 잘 나가는 외노자분들이 일본에는 수없이 많다(그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반면 나는 잘 못 나가고, 어딘가 걸려 넘어지고, 맨 땅에 대차게 헤딩해서 뚝배기를 깨는 경험을 줄줄이 했다. 외국인 여성 노동자로서 별별 일을 다 겪었고, 그 중에 '실패'만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가 말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너보다는 내가 좀 낫다는 위로를 얻을 수도 있고,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구나 하는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외노자분들과 일본이 아닌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든 외노자분들, 그리고 조국에서 몸바쳐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그런 기분을 느끼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고, 사람 사는 데가 어디든 똑같다지만, 이 글이 여러분들께 약간이라도 신선한 간접 경험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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