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함께 뉴질랜드에 살기로 했다. 결정은 했지만 둘 다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어 그게 가능할지 짐작이 잘 안 됐다. 거처를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우리가 하면 할 수 있을지, 거기서 과연 살 수 있을지 탐색해볼 단계가 필요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나의 워킹 홀리데이였다.
극도의 내향인이
워킹 홀리데이를
나는 방법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던 대학 동기는 농장에서 힘을 많이 쓰는 육체노동을 했고 돈을 많이 벌어왔다. 영국으로 갔던 친구는 언어가 많이 늘었고 외국 친구들을 사귀어서 즐겁게 지내다 왔다. 모두 내 욕구와는 정말 거리가 멀었다. 나는 돈이 없어도 일을 조금만 하고 싶고, 영어에 큰 욕심이 없고, 무엇보다 모임과 파티라면 질색하는 극도의 내향인이다. 인터넷의 ‘성공적인’ 워홀을 만들기 위한 노하우를 찾아보면, 외국 친구와 가까워지는 법이나 외국에 있는 동안 효과적으로 영어 실력을 쌓는 법, 알차게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많이들 제안한다. 이 때문에 경험담을 찾아봐도 나에겐 전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행을 싫어한다고요?
한 동료가 여행을 싫어한다는 내 말에, 믿기 어렵다는 듯 깔깔 웃으며 되물은 적이 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또 한 번 있다. 내 머리를 잘라주던 헤어 디자이너도 여행이 싫다는 내가 정말 특이하다며 웃었다. 사람은 모두 여행을 좋아해야 하는가? 요즘엔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그런 것도 같다. 나도 엄밀히 말하면 여행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길을 헤매거나 사람 많은 관광지에 가서 굳이 사진을 찍는 것보다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한다. 관광이 목적이 아닌 휴양 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도착한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자꾸만 죄책감이 든다. 소중한 휴일에 돈을 내고 마음의 죄책감을 사고 싶지가 않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집 주변을 산책하는 휴가가 더 좋다. 주변 친구들도 가족들도 여행을 많이 좋아하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드물기는 한 것 같다.
워킹 홀리데이도 그런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여행하기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선택지로 보였다. 혹은 임금이 높은 나라에 가서 열심히 일하고 목돈을 만들어 돌아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 모두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워킹 홀리데이를 꿈꾼 적이 없다.
일 년간의 워홀을 마친 지금 그때의 내 생각을 돌아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선 ‘워킹 홀리데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냥 비자였다. 관광 비자로 외국에 가면 취업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현지에서 돈을 조달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취업 허가를 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비자를 이용해 돈을 벌기도 하고, 어학연수 삼아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여행하고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워홀 비자를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모두의 워킹 홀리데이는 각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런 워킹 홀리데이
나는 누군가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워킹 홀리데이를 보냈다. 주로 한국인들과 어울렸고, 영어가 비약적으로 늘지도 않았고, 여행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목돈을 만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의외로 만족스러운 워킹 홀리데이였다. 어학원을 다니지 않아 친구를 사귈 곳이 없었고 정착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처음 와서 직접 계좌를 개설하고 세금 신고할 번호를 만들면서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이 좋았다. 내가 언제 또 외국에 나가서 이런 일을 하나하나 해볼 수 있을까 싶고, 여기서 다 해냈으니까 이제 세계 어디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마저 얻었다.
한국인 고용주 밑에서 일했지만, 그나마 의사소통이 편리해서 낯선 환경에서 일하는 게 덜 힘들었다. 고용주는 한국인이어도 손님들과 영어로 대화할 일은 여전히 많으니까, 처음 왔을 때보다는 말도 조금은 잘하게 된 기분이다. 파티에 초대하거나 새벽까지 클럽에서 술을 마실 친구는 없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가 집에 초대해 브라우니를 구워 주고 고양이를 보여준 적은 있다. 좋은 서점을 알게 되어서 페미니즘 동화책도 샀고, 계속 나가지는 못했지만, 도서관에서 하는 페미니즘 프로그램에도 참석은 해봤다. 한국에서는 시간이 없고 비싸서 못했던 요가도 꾸준히 했고, 해 질 무렵 요가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 아름다워서 행복했다. 우리 동네에서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인데, 운동이 끝나면 늘 해가 지며 뜨거운 노을을 길게 흩뿌리고 있었다. 모두 충분히 자극적이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공백기가 아니니까
한국에서는 가만히 쉴 때마다 불안했다. ‘나가서 뭐라도 해야 스펙을 쌓는데’, ‘계속 시간을 이렇게 보내면 이력서에 쓸 말이 없어질 텐데’하는 생각에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 취직을 할 게 아니어도 수시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쉬고 있는 나를 감시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여기서는 내가 뭘 하든 ‘공백기’가 아니고 ‘워킹 홀리데이’다. 그 점이 오히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게 만들어줬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사소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걸 그냥 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행복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할 일이 꽉 차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은 항상 뒷전이었다. 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딱히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일은,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보이고 이른 시일 안에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일에 밀려 사라졌다.
여기서도 매일 출근은 하지만, 그 직장에서 목숨 걸고 경력을 쌓을 필요도 없고 퇴근하고 자기계발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 불안하지가 않았다. 일년의 자유시간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멍하니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영어로 된 록산 게이의 책을 빌려서 몇 장 들춰 볼 수도 있었다. 마감이 없어도 글을 쓰고, 그림으로 돈 벌 게 아니지만 그림도 그리고, 아무도 안 시켰는데도 영어 문법책을 들여다봤다. 요리 실력도 많이 늘었다. 가끔은 친구랑 맥주도 한 잔 했지만, 혼자 샌드위치를 들고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나랑 유독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할 수 있는 활동이 별로 없어서 다른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그렇게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참 좋았다.
여기서도 가끔은 불안해하며 이민법을 계속 들여다보거나, 잠을 못 이루고 정보수집을 하던 버릇이 다시 나올 때도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지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현지인들의 모임을 찾아보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워홀이 끝날 즈음에는 그런 불안을 잠시 잠재우는 법도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한결 더 잘 알게 되었다.
수잔 케인의 TED 강의에서 고독한 환경이 창의적 사고에 도움을 준다는 걸 본 적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소통할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다. 딱히 뭔가를 많이 하지 않은 워킹 홀리데이였지만,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탓에 내면에서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 앞으로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조금 더 명확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도, 워킹 홀리데이를 잘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은 나와 비슷한 내향인에게도 워킹 홀리데이를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내향인의
새로운 깨달음
무엇보다 새로운 깨달음이 있다면, 나는 여행을 조금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건 여행이 아니라 조바심이었다. 한국에서 짧게 휴가를 받아 여행을 떠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보고 싶어서 항상 조바심이 났다. 일정이 어긋나면 만회할 수 없을까 봐 불안했고, 일정이 없으면 없는 대로 뭔가 잘못된 걸까 걱정이 됐다. 뉴질랜드에서 워홀을 하는 동안, 여기에 일 년쯤 오래 있을 거로 생각하니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볼 수가 있었다. 퇴근하고 근교로 놀러 가기도 했고, 일주일 휴가를 받아서 다른 도시로 여행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정말 싫어하는 게스트 하우스에도 묵었고, 거기서 친구도 사귀었다. 조심스럽고 서로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을 만나 여행 일정을 잠깐 함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체력과 에너지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일터를 만나서 근무할 때 별로 과로하지 않았고, 헬스나 요가가 저렴해서 자주 운동을 했고, 귀찮은 이성애 중심주의나 사회생활의 고통이 한국보다 덜해서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없었다. 뉴질랜드에는 내 주변에 한국 남자도, 꼰대도, 성 역할과 호모 소셜을 강요하는 여자 친구들도 별로 없다. 일터에서는 동료도 손님들도 나를 존중해주고, 경조사나 가족 모임처럼 가야 할 곳이 많지도 않고, 숨 막히는 서울의 만원 버스도 없어서 평소에 계속 사람에 대한 적의를 품고 지낼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는 여행만 그랬던 게 아니다. 일상에서도 비슷하게 동선이 어그러지면 짜증이 났고, 일정이 미뤄져도 화가 났다. 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그랬고 취미 생활마저 그랬다. 갈 곳이 너무 많고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언제나 소진 상태였다. 계속 계획을 짰고 일정을 조율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일에도 신경질이 났다. 그럴 때일수록 가사노동이 잘 분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발했고, 가시 돋친 말을 서로에게 쏟아냈다. 나는 업무에서도 인생에서도 장기적, 단기적 계획을 강박적으로 세웠고, 그 복잡하게 짜 넣은 시간표 때문에 차가 막힐 때마다 화가 났다. 그 비정상적인 무리한 상황이 언제나 일상이었다.
어떻게
'워킹'에
'홀리데이'가?
이전까지 ‘워킹 홀리데이’라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워크’를 하는데 ‘홀리데이’가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면 그 기간은 일하는 기간이지 쉬면서 일할 수는 없으니까, 도살장에 끌려가듯 꾸역꾸역 출근해내는 날들이 이어진다면 그게 홀리데이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워킹 홀리데이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매일매일 한계를 갱신하며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이 어느 정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OECD 국가 중 노동 시간이 몇 위고, 한국의 노동 강도가 어쩌고 해도 와 닿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피부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여기서도 주 사십 시간, 오십 시간 노동해야 할 때도 있다. 돈이 필요하거나 그걸 선택해야 하는 사정에 따라 그렇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이 힘들고 삶이 힘든 건 오직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아무도 나를 모욕하지 않고 질책하지 않는 일터도 있다는 걸 알아 버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롭게 굴지 않는 사회에 눈을 떴다. 그걸 경험하고 나니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