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3구 표류기 5. 토시마 구, 이케부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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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3구 표류기 5. 토시마 구, 이케부쿠로

몰래

토시마 구, 이케부쿠로
豊島区、池袋

2017년 10월. 아다치구, 미나미센쥬 足立区、南千住

이치란을 화려하게 때려친 후 쉐어하우스를 한 번 바꾸고 잠시 간의 백수생활을 즐기다가(?)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지 한 달 째. 흔히 일본에 온 워홀러들은 높은 생활물가로 인해 카케모치(掛け持ち, 투잡 혹은 겸업)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서 하는 알바를 일주일 내내 하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앉아서 하는 알바를 돌아돌아 구해봤다. 하지만 결국 일본 회사엔 뽑히지 못하고,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한 사무실의 경리 알바와 여행사 사무직 알바를 번갈아서 총 쓰리잡을 뛰었다. 그게 나의 2017년 하반기였다.

이래서 외국인은 안 된다니까! だからこそ外人はダメだよ

심정은 알겠는데, 그걸 외국인 앞에선 말하지 맙시다, 일본인.

첫 아르바이트를 허무하게 때려치고, 친구들과 함께 셰어하우스를 구한 뒤, 나는 곧 두 번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로손 편의점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신주쿠, 긴자, 롯폰기 같은 번화가 편의점에 부쩍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의 비중이 늘고 있다.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해서 유독 그런 점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고, 정말 그렇다. 로손 편의점 미나미센쥬점 점장이 나에게 신신당부했듯이 말이다.

최근에 외국인 점원들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아니 뭐 느는 건 괜찮지만~ 솔직히 근무태도가 썩 좋지 못한 건 사실이에요.

외국인 아르바이트 후보자와 면접을 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의 면접 태도도 썩 좋지 못한 것 같은데요….?

제가 몰래상한테 바라는 건 별로 없어요. 인사 잘하고, 접객 잘하고, やる気(야루키, 하려는 의지 정도로 번역된다) 있는 태도로 성실하게 하면 돼요.

왜 편의점에 외국인이 많겠는가? 일은 뼈빠지게 힘들고 임금은 최저이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도쿄의 최저임금은 932엔. 보통 아르바이트는 이것보단 좀 더 쳐서 950엔 정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편의점은 그딴 거 없다. 다른 카페나 식당에서는 편의점 대비 80% 정도의 노동 강도에 130%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데, 내가 일본인이라도 편의점 아르바이트 안 한다. (게다가 음식점 알바는 대개 賄い(마카나이)라고 해서 밥도 준다.)

내가 일했던 로손 편의점 미나미센쥬 점은 낮 시급이 1100엔이었다. 보통은 야간시급이 이 정도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시급이 높다는 말은? 겁나 힘들단 얘기다. 그걸 시작하기 전에 알았어야 하는데.

편의점 알바
난이도 : 불지옥

일본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특별히 힘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일본 편의점에 가봤다면 한국과 달리 엄청난 물건의 향연을 봤을 것이다. 거의 모든 생필품과 음식이 구비되어 있고, 각각 제품의 종류도 매우 많다. 종류가 많다는 말은 아르바이트가 진열해야 할 물건이 많다는 말이다.

둘째, 편의점 도시락의 존재.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털고 온다’는 그것. 공장에서 만들어오는 것도 있지만, 알바들이 아침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도 있다. 특히 手作り(수제)란 표시가 붙어 있으면 알바들이 만드는 경우가 있다. 나는 아침 8시 출근해서 14시에 퇴근하는 조였는데,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치킨 튀기고 밥 짓고 야키토리와 오뎅을 데우는 거였다. 이 정도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인지 음식점 아르바이트인지 헷갈린다. (여담인데 로손에서 唐揚げ가라아게와 오뎅은 드시지 마시길…. 알바 경험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점포에 따라 수프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한 곳도 있... 크흠…! 로손 회장님, 이 글은 저희 집 나츠메 피규어가 썼습니다!)

셋째,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이야 인터넷으로 공과금을 내고, 택배를 부치고, 콘서트 티켓을 인쇄할 수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편의점에서 한다. 그렇다. 편의점 알바가 저걸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게 그렇게 어렵나?’ 싶을 수 있다. 여러분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산화는 세계적 수준이며, 일본의 전산화 수준은 쓰레기다. 공과금 내는 전산 시스템 따로, 콘서트 티켓 인쇄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 따로, 택배 전산 시스템이 모두 따로 있다. 각각의 사용법을 다 익혀야 한다.

그 와중에 주소를 등록해 자동으로 인쇄하는 기능은 없기 때문에 모든 주소를 전표에 손으로 써야 한다. 한국처럼 바코드를 찍으면 주소가 인쇄되는 그런 편리함은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무게를 재서 가격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디지털 저울도 없다. 줄자 들고 나와서 가로 세로 높이를 손으로 잰 후에 총합 몇 cm 이상이면 얼마인지 직접 계산한다. 대환장 파티다.

넷째. 일본은 한국과 달리 택배를 집 앞에 두고 갈 수 없다. ‘면대면 직접 수령’이 원칙이다. 하지만 사축의 나라에서 어떻게 매번 제 시간에 퇴근하여 택배원 아저씨의 존안을 뵙겠는가? 아저씨도 퇴근은 해야지. 그리하여 편의점 중 몇 곳을 지정해서 택배 회사가 택배를 두고 가면 손님들이 와서 찾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일본의 전산화 수준은 쓰레기다. 누가, 몇 시에, 전표 번호 몇 번의 어떤 택배를 찾아갔는지 편의점 직원이 하나하나 손으로 기록해 놓아야 한다. 포스기는 이쯤 되면 폼으로 있는 것 같다.

다섯째, 이 모든 걸 해내는 와중에 친절해야 한다. 손님이 들어오면 ‘무조건’ ‘크게’ 인사하고, 손님이 나갈 때도 반드시 ‘90도로’ 인사해야 한다. 그리고 손님이 물건을 보고 있을 때 오늘의 상품은 무엇인지 카운터에서 드문드문 홍보도 해줘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GS25에 들어가면 카운터 알바가 “오늘은 바나나 우유가 1+1이에요~ 쉽지 않은 기회이니 한번 드셔보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허공에 대고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상상해보라. 좀 웃기지 않나요? 하지만 제가 저걸 진짜 했다니까요?

업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

일이 없으면 찾아서 해야 하고, 근무 중 딴짓은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어떤 힘든 일을 하더라도 방긋방긋 웃으며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소위 ‘야루키’ 문화다. 업무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여기에 적응하려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애쓰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용을 써봤자 점장 눈에는 내가 ‘야루키라고는 없는 외국인이라서’, ‘일본인에 비해 손님에게 불친절’한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직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즉각적으로 인사가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문제였는데, 그것을 단순히 ‘의지의 부족’이라고 자기 멋대로 단정짓기도 했다.

몰래상이 외국인인 건 알겠는데, 일본인 선배를 흉내낸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해볼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네요.

누가 보면 내가 손님이 나갈 때까지 말 한 마디도 안 한 줄 알겠다.

대체 손님들에게 홍보를 왜 안 하는 거에요? 저는 몰래 상의 일하는 자세에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어요.

뭘 행사하는지도 모르는데 홍보를 어떻게 해요?

그러면 좀 빨리 와서 가게에 포스터 뭐가 붙어있는지 보거나 선배에게 물어보든가 해야죠.

알바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시는 거 아니신지…? 그럼 점장인 당신이 좀 써서 휴게실 공지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안 되는지…? 왜 그걸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지…?

다른 가게에 가면 외국인 알바들은 손님한테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자기 할 일만 하던데, 몰래상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최저시급 받으면서 자기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알바를 시작한지 약 한 달 반. 그는 드디어… 터졌다. 내가 담배를 정리하느라 손님이 들어왔을 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말로 그 손님은 한 명이 인사했는지 세 명이 인사했는지 신경도 안 쓸 텐데… 아, 여긴 일본이었지. 그럼 신경 쓸 것이다.

이래서 외국인은 안 된다니까! だからこそ外人はダメだよ

네. 이래서 외국인은 ‘일본에서는’ 안 되겠네요. 월급날까지만 하려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렇게 조기에 잘라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다행히 그 사이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시작해 ‘투잡’을 뛰고 있어서 별 미련도 없었다. 월급을 현금봉투로 줘서 다시 받으러 와야 한다는 번거로움만 제외하면, 정말 다행이라는 안도감밖에 들지 않았다.

몰래 상, 집에 가서 자신의 태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다시 할 마음 있으면 다시 와서 얘기해주시면 좋겠네요.

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할까요?

2018년 1월, 신주쿠구 타카다노바바
新宿区、高田馬場

그리고 믿었던 투잡에서마저 ‘잘렸다’. 정확히는 그만두었지만, 이 경우에는 타의에 의한 사직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조그마한 여행사였는데 일도 할 만했고, 시급도 나쁘지 않았고, 전부 여자밖에 없었고(이 점이 제일 좋았다) 한국인이라서 믿을 수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들어올 때, 회사에서 낸 모집 공고에는 ‘아르바이트 및 정직원’을 모집한다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2017년 11월에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도 잘 하면 ‘정직원’이 되지 않을까, 혹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워홀 비자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당장 8개월밖에 남지 않았던 때였다. 슬슬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사장은 틈날 때마다 넌지시 ‘밑밥’을 뿌려댔다.

몰래야, 너 워홀 끝나고 뭐할 거니?
우리 회사에서 계속 일할 거야?
네가 일을 잘 해서 나는 정직원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툭툭 던지는 말을 듣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세뇌’되기 시작한다. 내 생각은 ‘정직원 시켜주면 나야 손해 볼 건 없는데?’에서 ‘아, 정직원이 되어서 아르바이트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정착하고 싶다…’ 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동시에 취업박람회나 회사를 돌아다니며 슬슬 면접을 보러 다녔다. 결과는 한마디로 처참했다. 버벅거리는 일본어, 일본인들과 함께 면접을 보며 드는 자괴감, 워홀러는 처음부터 면접 부스에 들이지도 않는 기업들. 심지어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업박람회를 가도 ‘이 회사를 갈 바에는 한국에서 새로 기술을 배우는 게 백 배 낫겠다’ 싶은 곳들밖에 없었다. 너무 먼 곳이거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지역이거나,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자격을 요구하거나. 예를 들면 센다이의 트럭 운전사를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업박람회에서 뽑는 건 허들이 너무 높지 않은가? 일본에서 트럭을 몰 수 있는 운전면허는 당연히 필수이고, 거기에 더해 고속도로 운전과 지리에 매우 익숙해야 하지 않을까? 왜 굳이 외국인 중에 뽑으려고 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와중에 옆에서 살랑살랑 부채질을 하니 당연히 혹할 수밖에. 신년연휴가 끝나고 나는 신년을 맞이하여 새로이 시작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장에게 정직원 전환 의사를 통보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뜻밖이었다.

근데 일본 정부가 워홀 비자에서 취업 비자 전환은 잘 안 시켜주는 거 알지?

이 글을 읽고 있으실지도 모르는 일본 워홀러분들, 잘 들으세요. 단언컨대 저건 개소리입니다. 제가 이 회사를 때려친 후 워홀에서 취업비자로 아무 문제 없이 전환해서 1년 만기 꽉 채워서 살고 있으니까요. 일단은 뭐라고 하는지 계속 들어보기로 하자.

솔직히 취업 비자만 취득하면 그 기간 동안은 일본에 체류하는 게 문제가 없으니까 워홀러 애들이 회사에서 취업 비자만 받고 잠수 타는 경우가 많아. 그럴 경우 일본 입국관리국 차원에서 그 회사에 대한 감점이 들어가거든? 비자도 잘 안 나오고. 만약에 네가 비자만 받고 잠수 타 버리면 여기서 일하는 다른 애들이 나중에 취업 비자를 신청할 때 손해를 보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선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기가 좀 힘들어.

그렇게 사람 못 믿을 거면 애초에 정직원 운운하면서 밑밥은 왜 까셨어요…? 본인 행동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걸 자각을 못하나?

“(다른 알바생) C야? 너 근처에서 워홀에서 취업 비자 전환한 애들 본 적 있어?”
“제 주변에서는 없었어요.”
“봐. 얘가 바보라서 일본에서 돈 들여가면서 4년제 대학 나온 줄 알아? 얘도 처음에 워홀로 왔다가 유학으로 온 케이스거든. 얘 이번에 졸업하니까 비자 나오는 거 아무 문제 없이 잘 됐잖아.”

그거야 일본에서 4년제 대학 다니며 등록금 꼬박꼬박 바치고 세금까지 바쳤으니까. 내가 일본 정부라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우리가 조건이 있는데...”
“?”
“네가 일단 유학 비자를 따고, 이 근처에 있는 일본어 학교를 다니면서, 거기서 오전 반 다니고 오후에 우리 회사를 다니는 거야. 그렇게 유학 2년하고 우리 회사에 정직원으로 오면 되잖아.”

아무리 당시에 일본 취업 문턱이 턱없이 높아 보이고, 자괴감과 눈물에 잠겨 살던 때라고 해도, 저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한 마디는 이거였다. “이게 대체 무슨 논리야?” 게다가 내가 일본 도착하자마자 유학원 때문에 그 고생을 하다가 왔는데, 나보고 또 유학을 하다가 오라고?

“아… 저희 집이 그렇게 상황이 좋지가 않아서요. 유학원 비용을 대기가 좀 어려운데… 아무리 제가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비용을 다 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C는 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알바해서 자기가 다 벌어서 다녔어.”

그건 쟤고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2년 동안 대학 등록금 수준의 돈을 퍼부어서 유학한 다음에 이런 회사에 들어올 거면, 한국으로 돌아가 다른 대학에 재입학해서 기술 배우는 게 더 수지타산이 맞겠죠.

“휴…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는 건 알았어.”

오, 이제 좀 먹히나?

“유학원 비용 빌려주고 차용증 써줄게.”

…도망치자.


2018년 2월, 이케부쿠로

회사를 그만둔 뒤 몇 주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일본 생활도 벌써 반 년이 될 무렵이었다. 한국에서 뉴스가 날아왔다. 대학 선배의 부고. 교통사고였다.

나는 그 때 이케부쿠로 북쪽 출구와 동쪽 출구를 연결하는 조그만 지하 통로를 하염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이런 일본어 실력으로는 도저히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주 3일 저녁반 일본어 학원에 등록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당장 다음달 월세도 걱정되는 재정 상황이었지만, 식비를 줄여서 오니기리와 컵라면만 먹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부고를 받은 것이다.

휴대폰 화면이 점멸했다.

“몰래야, 그래서 올 수 있어? 일본에서 오기 어려울 텐데 괜찮아?”

한국이 이토록 아득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갈 수 있을까? 지금 이 상태로? 비행기값은? 부조금은? 다음달 월세도 못 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가면 아는 얼굴 천지일텐데. 지금 여기 와서 아무 것도 못 이룬 내가 가서, 그 사람들과 친한 척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너무 쪽팔리지 않나? 너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물으면? 그 짧은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몇 군데나 갈아버리고 지금 통장 잔고가 위태롭습니다, 라고 말하려고?

이런 생각이 처음으로 스쳐지나갔다.

근데 애초에 걔네는 너한테 그 정도의 관심도 없을걸?

이 생각이 두 번째로 떠올랐다.

죽은 사람 두고 생각하는 꼬라지 봐라. 너는 끝까지 너밖에 모르지?

이 말은 맨 나중에야 떠올랐다. 그제서야 현실감이 돌아왔다. 눈물이 확 났다. 그 눈물마저 슬픔 반, 나에 대한 부끄러움 반이었을 것이다. 타향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밑바닥은 정말 최악이었다.

20대가 될 때까지 적어도 돈 때문에 당장 내일을 걱정할 일은 겪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아마 가족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누군가는 도와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적어도 한국을 떠나올 정도였으면 무엇인가는 이루어서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월세가 없어서 당장 내일 길거리에 나앉으면 뭐 어때, 넷카페에서 밤 새면 되지, 라고 애써 꿋꿋하게 자신을 다독여왔다. 하지만 그런 내 자존심은 당장 부조금 낼 형편도 안 되는 주제에 ‘바빠서 못 갈 것 같다’고 거짓말로 대답하는 순간 무너졌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한참 동안 그 지하 통로를 울면서 서성였다. 그렇게 울면서 생각했다.

취업하자.

여기서 살아남아보면, 인생에 뭐라도 하나 보이겠지.

도쿄 표류기 4컷만화

극한직업 일본 페미니스트

츠루 상(40대, 기자, 여성)과 아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만화 이민

진정한 극한 직업 일본 페미니스트…. 동북아에 미래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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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3구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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