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토 구, 우에노
(台東区、上野)
한 달 반 만에 이국땅에서 집도 절도 소속도 없는 완벽한 백수가 된 몰래!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알바 구하기
어학원에서 오후 반(13시~17시)을 배정받은 이상,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시간대는 오전에서 정오까지 혹은 18시에서 23시까지. 즉 9 to 6 사무실 아르바이트, 또는 심야에 운영하는 술집이나 바는 애초에 후보에도 못 올라간다. 무조건 카페, 아니면 음식점이다. 만일 오전 알바를 뛸 경우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 가게(옷에 배면 다른 학생들에게 민폐이기도 하지만, 일단 내가 싫다). 교통비를 아끼려면 자전거로 통근할 수 있는 곳. 좀 까다로울 것 같긴 하지만! 여긴 진정한 알바천국 일본이니까! 바이토루(baitoru, 일본 알바 구인 사이트) 믿는다. 검색!
결과 : 0건.
0건이요…? 우리 동네가 위치가 구리긴 하지만 이럴 수가 있나? 급한 마음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알바 전단지에 써있는 번호로 모두 전화를 해보았다. 하지만...
- 외국인이세요? 저희는 일본어능력시험 1급 이상밖에 안 뽑아서요. (슈퍼마켓 진열 알바였다)
- 외국인이에요? 아….저희가 심야 23시에서 6시밖에 안 뽑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편의점이었다)
- 외국인이세요? 이자카야 메뉴 이름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죄송해요. 지금도 몰라요...)
등등.
적당한 시간대에, 초심자도 할 만한 일에, 일본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외국인을 뽑아주는 곳…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찾아봐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서요. 저는 이 끔찍한 기숙사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전단지에 쓰여있는 알바처 15군데 중 15군데, 10할이라는 무시무시한 실패율을 기록하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까먹던 중. (그 와중에 가게 앞에서 서서 먹지 말라고 주인한테 쫓겨났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타운워크(Town work)라는 잡지의 표지였다.
기본 시급 1200엔. 24시간 쉬프트(shift, 알바 교대 시간) 자유. 6시부터 8시 새벽 시간 시급 1300엔, 23시부터 6시까지는 심야시간 시급 1500엔.
외국인,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 환영!
뭐지? 이 사람 혹하게 만드는 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야쿠자 인신매매인가? 가게 이름을 보고, 1초 만에 모든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 ‘이치란 라멘’. 아… 블로그와 SNS와는 별로 연이 없는 나도 한 번은 들어봤던 유명한 라멘 체인점의 이름이다.
전화를 하고, 어찌어찌 면접을 보자는 대답을 듣고, 긴장 빡 하고, 나름 정장 같은 차림으로 면접을 보러 가서…
“그래서 내일 모레부터 출근하실 수 있다는 거죠?”
“…네? (자기소개 세 줄 말함)”
“그럼 오전 여섯 시부터 희망 근무 시간이니까, 10분 전까지는 오셔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으시고 모레부터 일 시작하시면 됩니다. 오기 전에 UFJ 통장 만들어서 가져오시고요!”
…면접에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정확히 15분이 흘렀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통장 만들기
일본의 경우, 아직도 알바비를 급여내역서와 함께 봉투에 고이 넣어서 주는 곳이 많다. 개인 영업장 뿐 아니라 로손(LAWSON) 편의점 미나미센쥬(南千住)점에서도 현금으로 받았으니, 딱히 프랜차이즈라고 해서 급여 입금 시스템이 잘 갖춰진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탈세 규모로 전 세계 7위를 차지하는 거야. 일본 국세청 보고 있냐?)
또 한 가지. 일본은 은행 수수료가 높다. 또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왜 받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도 수수료를 받는다. 가령, 타 은행 간 이체 수수료는 물론, 같은 은행의 다른 지점으로 계좌이체를 해도 수수료를 받는다. 즉 미쓰비시 은행(UFJ)의 우에노 점에서 신주쿠 점으로 계좌이체를 해도 수수료를 받는다는 말이다. 참고로 100엔(약 1000원)에 소비세 8%를 더한 108엔이 기본 수수료이다.
예를 들어 나는 미츠이-스미토모 은행(SMBC) 신주쿠점에서 UFJ 닛포리점으로 계좌이체를 하면서 수수료로 432엔(약 4500원)을 낸 적이 있다. 기본 수수료 324엔에 야간ATM이용수수료가 더 붙은 것이다. ATM도 영업시간 18시까지가 기본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넘어가면 택시할증 붙듯 '야간수수료'가 붙는다.
아무튼, 보통 알바의 경우(회사는 각각 다르다)에는 지점까진 아니더라도 특정 은행을 지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 급료 계좌이체하면서 내는 수수료만 합쳐도 거의 한 사람 일주일 알바비는 될 것 같지 않은가.
이치란 라멘은 급여를 UFJ로 준다고 했다. 지점은 상관없었다. 그래서 급여통장을 만들려고 은행을 찾았다.
손님 , 죄송하지만 직장이 없으신 분은 만들기 어렵습니다.
...? 직장에서 만들어오라고 해서 온 건데요....?
죄송하지만, 외국 국적의 분은 재직 상태를 증명하는 서류가 없으면 발급이 어려우세요.
저 내일모레부터 출근이고 알바처에서 통장을 만들고 오라고 했는데? 그럼 어느 쪽이 맞는 건가요. 아니 그리고, 내국인은 괜찮은데 외국인은 직장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런 건가?
그러면....혹시 지금 직장에 손님의 재직 상태를 증명해주실 분이 재직하고 계신가요?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일단 저희 부엌에는 전화가 없고요. 다들 알바생이라 서로 얼굴도 모르고요. 첫 출근하기 전이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그리고 대출 상품도 아니고 보통 계좌 만드는 절차에 왜 굳이 내 재직상태를 증명해야만 하는 건지 저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한국인은 짜증을 내면서도 결국엔 부탁을 들어주지만, 일본인은 웃으면서 끝까지 부탁을 거절한다고. 일본에 관광 온 사람들은 “아니, 친절하던데?”라고 하겠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웃으면서 끝까지 부탁을 거절하는 곳 3대장이 바로 은행, 관공서, 그리고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마주칠 일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사회 내부의 깊숙한 시스템들. (나중에 알았지만, 은행은 저 중 최약체에 불과하다. 관공서…부동산…!)
그리고 벌써 ‘웃으며 부탁을 거절당한 지’ 20분째.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는다. 통장을 못 만들어가면 돈을 못 받을 거고, 나는 당장 다음 주부터 알바를 시작해야 되고, 너희는 영업시간이 오후 네 시까지이고, 만약 오늘 못 만든다면 나는 언젠가는 어학원 수업을 자체휴강 할 수 밖에 없고, 그러기엔 내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깝단 말이다!
“휴…. 그렇담 고객님, 취업 사실을 증명하려면 가게의 사장님한테 전화를 해야 하는데, 그 분 전화번호를 아세요?”
"라인밖에 모르는데 이걸로도 되나요?"
가게 전화번호로는 역시 연락이 닿지 않아, 매니저한테 전화를 해서 겨우 점장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점장한테 전화를 걸어 (점장은 내 존재조차 모르는 듯 했다. 하긴 애초에 내 얼굴을 본 적조차 없는데 기억하는 게 용하다) 어찌저찌 나의 노동 상황이 확인된 후 통장 개설 절차에 들어가기까지,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리고 통장 개설까지는 약 30분이 더 걸렸다.
분명히 아홉 시에 들어왔었는데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나니 어느 새 열한 시 반. 맙소사. 어쨌든 남의 나라에서 만든 첫 통장을 들고 있으니 슬슬 일본에 와 있다는 설렘…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설렘이었다.
알바 시작
아르바이트 시간은 월화수목금 아침 6시부터 11시까지. 주어진 역할은 따로 없다. 키친 쪽 손이 빌 땐 키친을 하는 것이고, 서빙 쪽 일이 빌 땐 서빙을 한다.
처음 1개월은 이른바 ‘견습 기간’이라고 해서, 이 기간에는 선배 한 명이 신입한테 붙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대체로 일본 아르바이트나 회사에서는 신입을 이렇게 가르치는 듯하다. 다른 알바에서도 이런 식으로 일을 가르쳤다. 견습기간은 3개월 전후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시급을 더 적게 받는다.
실제로 일을 체험하면서 견습하는 것 말고도, 매니저급 직원이 틈날 때마다 두꺼운 매뉴얼 중 중요한 부분을 같이 읽어가며 설명하는 시간을 따로 가진다. 체감상 100페이지는 되어 보였는데, 심지어 ‘유명인이 왔을 때 사인을 받는 법’까지도 써 있었다. 역시 매뉴얼의 나라.
일하는 시간은 거의 초 단위로 정확하게 측정된다. 정말 단 1분도 넘기는 일 없이 칼 같이 퇴근시켜 준다. 하지만 초과 근무가 필요없을만큼 사람을 알차게 쥐어짠다.
이 말인즉, 쉬는 시간도 초 단위로 쉬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매니저가 쉬는 시간을 부여하면, 알람 초시계를 두 개 준비한다. 하나는 부엌에 자석으로 붙여두고, 하나는 자기가 들고 가서 뒤에 있는 휴게실에서 쉬다가 타이머가 울리면 그 즉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무슨 헬스장 서킷 트레이닝도 아니고, 휴게 시간을 타이머로 측정하다니. 가장 신기하고 제일 이상한 부분이었다.
일본어와 일본인
일할 때는 반드시 유니폼과 머릿수건을 착용해야 하며, 머리카락이 밖으로 안 보이도록 해야 한다. 즉, 앞머리가 있으면 실삔으로 고정시켜 넘겨야 하며 수건 안에 모든 머리카락을 집어넣어서 인사할 때 손님에게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근데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 이치란 라멘을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어차피 앞에는 블라인드, 옆에는 칸막이가 쳐진 독서실 구조라 손님들이 알바의 얼굴을 볼 틈도 없다.
뭐, 여기까지는 평범한 음식점 알바였다. 우에노 점이라 정말 미친듯이 바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보통 아침 열 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 열한 시면 줄이 50미터는 늘어섰다. 다들 아침부터 돈코츠 라멘이 넘어가는 건가?
그러니 오픈 시간대에 모든 것을 준비해둬야 했다. 점심에는 서빙만 해도 몸이 남아나지 않길 때문이다. 아침 일곱 시면 공장에서 차슈, 면, 수프, 파, 아무튼 라멘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진공 포장 상태로 배달이 오는데, 이걸 냉장고 안에 전부 진열해놓고 시간대별로 사용하는 양을 나눠놓는다. 그리고 점심 시간대에 나갈 재료들을 아침에 미리미리 조리하고 즉시 내놓을 수 있도록 세팅해 놓아야 한다.
사실 부엌일과 요리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공장에서 온 재료들을 봉지째로 전부 끓는 물에 중탕하거나 혹은 봉지에서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된다. 설거지는 물에 담가놨다가 한데 모아서 세척기에 전부 넣어버리면 그걸로 오케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첫 번째, 일본어. 두 번째, 일본인.
도쿄 표류기 4컷만화
아르바이트에 대한 아시아권 토론회
이케부쿠로에 있는 한 일본인 학원을 다녔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