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3구 표류기 6. 신주쿠 구, 히가시신주쿠

알다성차별일본 워킹홀리데이

도쿄 23구 표류기 6. 신주쿠 구, 히가시신주쿠

몰래

신주쿠 구, 히가시신주쿠
新宿区、東新宿


2017년 12월.

2018년 2월, 이케부쿠로에서 통곡하기 이전에도, 내심 마음 속으로 일본에서의 취직을 생각하고는 있었다. 친자매가 하반기 취직 시장에서도 쓴잔을 마셨다는 소식에 초조해졌기 때문이다. 한 명이라도 일을 하고 있어야 좀 집안이 돌아갈텐데, 취준생이 두 명이라니. 어휴.

본격적으로 취활(就活, 한국어로는 ‘취준’)전선에 뛰어들기 전, 일본 회사에 대해 감을 좀 잡기 위해서라도 ‘앉아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싶었다. 문제는, 사무직 알바들은 이제 비자 기한이 반년 남짓밖에 안 남은 워홀러를 뽑을 리가 만무했다는 것이다.

결국에 로손 편의점 대신 구할 수 있었던 알바처 두 곳은 텔레마케터와 ‘다방’의 서빙 담당이었다. (일본어로 喫茶店이라고 한다. 찻집 정도로 번역되지만, 그것보다는 한국으로 치자면 7~80년대 다방에 가깝다. 좀 오래된, 흡연이 가능한, 토스트와 커피 700엔 같은 식사 음료 세트를 많이 파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은퇴한 중노년층들이 시간을 죽이러 오는 가게. 이것이 전형적인 喫茶店의 이미지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다방’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이로써 월, 금에는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화, 수, 목, 토에는 여행사와 다방을 겸업하는 대환장 쓰리잡 스케줄이 완벽하게 갖춰졌다. 돈 좀 벌었을 것 같지만, 저 돈은 전부 고스란히 생활비로 나간게 함정이다. 지옥의 도쿄 물가 같으니….

일러스트 이민

몰래가 일본어를 이렇게 개똥같이 하는데 텔레마케터를 했다고?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인바운드’가 아니라 ‘아웃바운드’였다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간다. 사실은 말이 좋아 아웃바운드지 무작정 만만한 기업들에 전화를 걸어 판촉하는 스팸 전화에 가까웠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외국인 인재 중개 전문 기업 OO인데요, 혹시 외국인 인재 채용에 관심 있으신가 하여 연락드렸…”

‘뚝’

…한마디라도 대화가 오가면 다행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어색한 한국어 악센트로 외국인 인재 중개 기업 어쩌고 하는 전화가 걸려오면 ‘뭐야?’하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월,금 일주일에 두 번, 열 시부터 다섯 시까지 여섯 시간씩 알바를 했다. 나름 근무 환경도 좋고 사람들도 나쁘진 않았다. 단지 같은 대사와 동일한 패턴을 여섯 시간 동안 지겹도록 반복해야 했기에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현타를 좀 맞았을 뿐이며, 보람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만 제외하면.

지옥의 쓰리잡

화, 목에는 다방 서빙 알바를 시작했다. 가족끼리 경영하는 작은 다방이었다. 10시에서 14시까지 피크 시간대에 짧게 치고 빠질 수 있다고 해서 지원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불지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일하는 곳은 4층 건물 중 지하 1층에서 3층까지는 다방, 4층은 이자카야를 운영하고 있었다. 역시 건물주라서 그런지, 식사와 음료 세트를 800엔 안팎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늘 문전성시였다.  덕분에 4시간 동안 줄창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쉴새없이 오르내려야 했다. 사실 이런 것쯤이야 체력을 기른다(?) 생각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면 그만이었다.

일러스트 이민

문제는 늘 그렇듯 다른 곳에 있었다. 알바 시간은 4시간에 불과했으나, 끝나고 나오면 대학교 1학년 때 홍대 클럽에서 밤새고 첫차 탔을 때의 머리카락에서 나던 담배 쩐내를 다시 맡을 수 있었다. 흡연 가능한 다방이었기에 손님들은 거의 너구리굴 수준으로 담배를 피워댔다. 게다가 겨울이라 난방을 한답시고 창문이나 문은 꼭꼭 닫혀 있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내 옷과 머리카락의 빨거나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담배 쩐내와 호흡기 악화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통받는 것은 기관지 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알바를 시작할 때만 해도 느낌은 나쁘지 않았었다. 우선 마스터(좀 빻았지만, 일본에서는 가게의 남자 사장을 ‘마스터’, 여자 사장을 ‘마마’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가 재일교포였고, 그 딸과 아들도 조선학교를 졸업해서 한국과 한국인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무엇보다 알바를 꽤 오래한 한국인 주방 담당 알바 학생이 있었기에 ‘아, 여기라면 좀 비벼볼 만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신체적 고통

첫 번째 고통 요인은 마마였다. 그는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나에게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고 슬슬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주5일로 한 달간 일했다면 모를까, 나는 화, 목만 출근했기에 실질적으로 총 출근 횟수는 여섯 번이 전부였다. 물론 가게 입장에서 보면 다른 알바생이 취업에 성공해 그만두는 바람에 내가 후임으로 들어간 상황이라, 빨리 일을 배워야만 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수인계 없이 바로 두 번째 날부터 일에 투입시켜 놓고 이렇게 말하다니.

“왜 이것도 몰라? 누가 옆에서 하는 거 안 봤어?”

…볼 시간이 없었는데요? 지하1층부터 3층 죽어라 뛰어다니느라 바쁜데요?

오죽하면 그만두는 알바생이 “뭐야… 저 여자 갑자기 왜 저런대요?”라고 나한테 물어올 정도였으니. 역시 직장에서의 쎄함은 만국 공통이다. 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알바 시작 한 달만에 단단히 미운 털이 박혀버렸다. 단순히 일을 빠릿빠릿하게 못해서 그렇다기엔 다른 이의 시선에도 좀 이상해 보였으니 역시 내가 귀여운 탓인가?

그는 주방에서의 소소한 잔소리와 못마땅한 눈총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손님 앞에서까지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충격적인 일. 내가 손님의 주문을 못 알아듣고 다시 한 번 불러달라고 했을 때, 급기야 그녀가 손님 앞에서 내 안쪽 팔을 꼬집었다(무지 아팠다. 그 와중에 손님 앞이라고 비명은 또 참았던 나에게 치얼스).

“아하하, 죄송합니다, 손님들. 얘가 외국인에다가 아직 신입이라서 아무것도 모르니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세요(정말로 許してください 용서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뭘요?)”

그리고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똑바로 하지 못하겠어?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보는 걸 몰라?”

다음날, 나는 팔에 남은 멍을 보면서 남은 월급도 받지 않고 목요일부터 안 나가겠다고 통보해버렸다. 그래, 뭐 이왕 본 피해 한 번 제대로 실컷 맛보세요.

정신적 고통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이 ‘꼬집힘 사건’은 퇴사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 두 번째 고통 요인, 마스터가 그 결정타를 날린 장본인이다.

알바를 시작하고 두 번째 날, 가장 의아한 지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주문 받을 때 남자는 O, 여자는 X로 전표에 표시한 다음 ‘밥 양을 다르게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제육볶음을 시킬 때 성별에 따라 나가는 백반 양이 다르다는 말이다. 유달리 밥에 집착하는 내 안의 한국인은 ‘돌았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원래 여자는 적게들 먹으니까요’라는 무적의 노답 논리에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내 고용주라서 더욱.

‘아, 좀 고리타분한 사람이구나…그래 저 나이에 그럴 수도 있지…(아직도 그의 나이는 모르지만, 외관상으로는 60대 후반-70대 초반으로 보였다)’라고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그의 쇼와 시대적 노답 꼰대발상(昭和시대, 1926년~1989년까지 일본에서 사용된 연호이자 시대 구분)은 거기서 끝날 리가 없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생략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두 가지만 소개하도록 한다.

첫번째, 식당에서 일본 알바생들은 단 한 순간도 앉을 수 없기 때문에, (손님이 없을 때도 앉아있으면 안 된다) 나는 알바하는 4시간 동안 주방 쪽에서 출입문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 기본 자세였다. 그 과정에서 주방과 홀 사이에 있는 카운터에 잠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스터가 정색을 하더니 외쳤다.

“여자애가 턱 괴는 거 아니야!”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왜, 사람이 너무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으면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가? 그때의 내 상황이 그랬다. 내가 비록 대구라는 대한민국에서 빻은 곳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그때도 턱을 괴면 안되는 이유란 ‘턱이 못생겨진다’ ‘얼굴형이 이상해진다’라는 간접적인 여혐이 이유였지, 대놓고 ‘여자라서’라는 이유가 ‘턱을 괴면 안 된다’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맺어졌던 적은 없었다.

거기다 그는 멈추지 않고 한술 더 떴다.

일러스트 이민
“카운터에 기대려면 그러지 말고, 이래야지! (그림 참조) 여자애가 보기 안 좋게 그게 뭐야!”

…그 말을 들은 뒤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충격에 의한 기억상실인 것 같다. 나는 저렇게 친절하게 포즈까지 취해주며 “여자애는 이런 포즈를 취해야 해!”라고 말하는 노년 남성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여혐꼰대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뇌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갑자기 편두통이….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10시에 출근하여 막 기본 세팅을 끝내놓은 상태였고, 주방의 남자 알바생은 피크 시간대를 대비하여 미리 홀에서 밥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홀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와 카운터 쪽에 서 있던 나는 서로 소소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마스터가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몰래상. 지금 뭐하는 거야?”

‘윽, 뭐지, 홀에서 대놓고 잡담했다고 화난 건가. 근데 어차피 손님 아무도 없는데….’ 오산이었다.

“여자애가 지금 건방지게(生意気に) 팔짱 끼고 얘기하고 있는 거야?”

…팔든? 익스큐즈미? 왓? (너무 당황하여 일본어를 까먹은 상태)

그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여자가 지금 남자 앞에서 팔짱 끼고 서서 얘기하는 것을 그는 ‘건방지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 세상에, 지금 21세기 2017년 맞습니까? 이 가게가 아무리 쇼와 시대에 지어졌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헤이세이(1989-2019년까지 사용된 일본의 연호이자 시대 구분)에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예?

내가 너무 당황하여 어버버하고 있자, 그는 결정타를 날렸다.

“저번도 그렇고, 몰래 상은 너무 여자로서의 자각이 없는 것 아니야?”

내 멘탈에 크리티컬 히트. 우와, 이 이상은 무리데스…! 치사량을 넘어선 여혐력 앞에서 내 두뇌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이 날도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망각이란 편리한 것이다…)

2017년 12월
치요다구 아키하바라

다방에서 도망가기로 결심한 이후, 환승 이직을 위해 그날도 열심히 알바 구인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앉아서 하는 알바를 구할 테다. 그렇게 결심하면서 불 같은 인터넷 서핑을 하던 찰나, 트위터에서 내 시선을 잡아끄는 광고가 있었다.

토라노아나 개인출판부 해외영업 여성향동인팀 한국어 담당 사무알바 모집. (토라노아나虎ノ穴는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굿즈를 전문으로 파는 프랜차이즈 중 하나다. 주로 만화책, 굿즈, 2차 창작 동인물 등을 판매한다.)

시선을 잡아끄는 정도가 아니라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나는 어쨌거나 애니로 일본어를 배운 천상 2D 덕후였기 때문이다. ‘해외 영업과 통번역’이 업무 내용에 들어가 있어서 조금 느낌이 쎄하기는 했지만 (심지어 일-한도 아니고 한-일 번역이었다) ‘판매 굿즈 30% 사원할인’ 구절에 이미 내 전두엽은 이성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서류를 내고 면접 당일.

아키하바라 역에서 내릴 때부터 이미 약간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안의 흑염룡… 아니 덕후가 그야말로 날뛰고 있었다.

그러니까 개인출판부 해외영업 여성향동인팀이라는 건, 쉽게 말해 일본의 2차 창작 BL 동인지(여성향이라고 해서 무조건 BL 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를 한국으로 팔거나 혹은 한국의 BL 동인지들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업무라는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픽시브(애니메이션 팬들이 자신의 자체 창작물이나 팬아트, 팬픽 등을 업로드하는 일본의 웹사이트)로 일본어를 배운 나에게 아주 최적의 알바 아니던가..! 이것이 말로만 듣던 덕업일치…!

그렇게 부푼 마음을 안고 토라노아나 아키하바라 본점에 들어섰다. 그러나 면접은 내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차분하게 진행되었고, 이내 흥분은 긴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것과 실제 이 회사가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어긋나고 있었다.

일러스트 이민
“좋아하는 만화가 뭐고 그 이유는 뭐에요?”
“아 최근엔…킹오브프리즘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보고 나서 기분 좋아지고 온 세상이 프리즘 무지갯빛으로 빛나게 된다는 그 캐치프레이즈가 처음엔 의아할 수도 있지만 (블라블라)”
“아…”

뭐야, 이게 아닌가? 내가 너무 나 혼자의 덕심에 취해서 떠들었나? 근데 원래 이런 자리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해외동인부서면 그야말로 킹오브오타쿠들만 모여있는 부서 아녀?

“저희가 동인지를 주로 취급하는 부서인데, 혹시 그러한 성인물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은 없으신가요?”
“제가 그걸로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런 거 보는 거 좋아합니다!”
“네…”

저기요, 그렇게 갑분싸된 것 같은 어색한 웃음 짓지 마시라고요…. 나만 우스워지잖아….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록 흥분해서 너무 솔직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앞의 질문들은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면접 후반부의 질문들은, 내가 생각한 업무 내용과 회사의 인재상과의 격차를 더욱 확실하게 부각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잘 그리세요? 혹시 클립스튜디오 같은 그림 그리기 툴을 다루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가 한일 번역을 해야 하는데 혹시 일본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으신가요? 물론 전문 번역가를 쓰겠지만, 1차적 번역은 아마 몰래 상이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거든요.”
“각종 동인 행사를 주최한 경험이라거나 혹은 자신의 창작물을 판매하는 판매자로 참가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죄송한데 저는 생산적인 덕질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십년 넘는 동안 남들이 해주는 것만 떠먹고 살았다고요…! 애니메이트를 일본 와서 첨 가봤는데…! 사무작업이나 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이 인간들 알바한테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아...! 그림 편집, 행사 담당, 거기에 통번역까지 시급 1000엔을 주고 고용하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투명하게 드러내지 마시라고요!

아무튼 ‘뭐야, 얘는 이것도 안해봤으면서 왜 여기 온 거야?’라고 생각하는 듯한 면접관의 눈총을 받으면서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 다가왔다.

“그래서 몰래 상, 취향이 어떻게 되세요?”

...고백하는 건가?

“아, 제가 말을 헷갈리게 했네요. BL 취향이 어떻게 되시냐고요.”

잠깐만요.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세요! 이렇게 갑자기 뼈를 때리시면 어떡해요!

“아…그게 말이죠…..”

아마도, 면접관은 좋아하는 작가라던가, 작품이라던가를 의도하고 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나의 ‘덕심’과 내가 얼마나 ‘찐덕후’인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러한 면접관의 심산을 헤아릴 틈도 없이 해맑게 웃으며 외쳤다.

“아, 경어공 선배수(우리나라로 치면 연하공 선배수)가 취향입니다!”

…깜빡이를 안 켠 정도가 아니라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과 같은 대답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면접장을 나와, 그 길로 바로 이케부쿠로로 직행해서 일본어 학원에 등록했다. 이전의 취업 박람회 경험과 이 날의 사무직 면접 경험을 통해, 이대로라면 취업은커녕 이 땅에서 굶어 죽게 될 수도 있다고 머릿속에서 적색 경보를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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