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같은 것'이 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다여성의 노동성차별

'전업주부 같은 것'이 되고 싶지 않았다

김돌

나는 워킹맘 밑에서 자라면서 누가 뭐라든 엄마가 일하는 것을 긍정해 왔다. 어쩌면 그냥 좋은 것 이상으로 고집을 피운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일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싫었고, 그 밑에서 자란 내게 흠이라도 찾는 것 같은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다. 나는 엄마가 멋지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여자가 일을 꼭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당당해진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면서도 나는 당연히 내가 워킹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일하지 않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업주부 같은 것'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고 대학간 거 아니잖아? 그러려고 내가 이 고생을 하며 직장을 다닌게 아니잖아?

'집에서 노는'여자가 되었다

그렇게 단단하게 굳은 생각에, 균열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치면서 내가 '집에서 노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와 휴직이었지만 나는 마냥 불편했다. 이걸 내가 누려도 되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십여년동안 굳어진 출근과 퇴근, 업무에 대한 압박이 사라지는 것도 생소했다. 낡은 집에서 시작한 뒤늦은 신혼살림도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았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집안일인지라 힘에 부치기만 했다. 남편도 휴직을 하면서 집안일에 손을 보탰지만 남편 또한 해본적 없는 일이기에 둘 다 서툴긴 마찬가지였다.

이건 프로의 영역이었다

집은 한참 낡아 뭐든지 일일이 손이 가는데, 서로가 집안일에 서툴다보니 쉬운게 없었다. 손에는 종종 자잘한 상처가 생겼고, 나는 능숙한 전업주부가 한시간이면 할 일을 서너시간씩 걸려가며 했다. 때로는 그렇게 고생해도 세제를 잘못 쓰거나 중간 과정을 빼먹어 기껏 한 일은 말짱 도루묵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이건 끝이 없었다. 왜 접시는 아침에도 닦았는데 점심에도 닦고 저녁에도 닦아야 하는 것인지! 남편과 나는 서로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왜 일을 안 하냐며 서로만 원망했다. 화장실은 원래 청소 안 해도 냄새가 안 나는 곳이고 컵은 식탁 위에 놓으면 없던 발이 생겨나서 건조기에 엎어져있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결국은 일일 가사도우미를 불러야했다. 꽤 비싼 돈을 주고 불러온 도우미 이모님은 놀라운 속도로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셨다. 하루일당어치를 마친 이모님은 낡은 집을 바라보며 성에 안 차는 듯, 이걸 다 싸그리 고치고 해치워야하는데, 라고 중얼거리셨다. 남편과 나는 일당이 비싸단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워야 했다. 이건, 프로의 영역이구나.

"저도 하우스 허즈번드가 되는게 꿈이에요."

낡은 집이라 여기저기 손 댈 곳이 많았고 집안일은 24시간 돌아가야 했다. 나는 간절히 출근을 하고 싶어졌다. 이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만든 서툰 음식 말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집 한 구석을 다 뒤집어서 밤새 겨우 다 고친 다음날, 남편과 나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집을 나서서 '브런치'라는 걸 먹었다. 그리고 나는 잘 지내냐는 후배의 메세지를 받았다. 사람들은 늘 부럽다는 말을 한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브런치도 먹는 여유...! 저도 하우스 허즈번드가 되는게 꿈이에요." 그 날은 유독 그 말에 화가 많이 났다. 뭐라고 딱 집어서 화를 낼 수가 없어서 더 화가 났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행복해보여요, 부러워요."

님편이 복직 전부터 집에서 조금씩 업무를 다시 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당연하다는듯이 집안일과 육아를 전부 내 일로 생각했고 자기자신은 잘 '돕는다'고 표현했다. 나는 더 긴 육아휴직을 얻었고 나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고 남편은 일을 해야 하니까, 라는 논리로 밤새 우는 아기를 나 혼자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극심한 수면부족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룹 채팅방에서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아기가 예쁘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또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행복해보여요, 부러워요." 큰 의미 없이 던졌을 그 말에 다시 화가 났다.

나는 당신이 부러워요

나 노는거 아니에요. 나도 힘들어요. 나는 당신이 부러워요. 새벽에 아기 때문에 잠을 설칠 일이 없는 게 부러워요. 아침에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게 부러워요. 퇴근 길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게 부러워요. 출근하는게 너무너무 부러워요. 온전히 하루를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게, 정말 부러워요.

하지만 그 중 한 마디도 나는 할 수 없었다. "감사해요"라고 답할 뿐.

복직하려면 한참 남았고, 나는 그 때까지 전업주부여야 한다. 그것이 너무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집에서 노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집에만 있어서 뭘 모르는 '아줌마'가 되는 것이 싫었다. '내'가 사라질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집안일과 육아를 하면서도 차라리 출근하고 싶다고 백번도 넘게 생각했다. 내 적성이 아닐뿐더러 내가 그렇게 매일매일 괴로운데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누군가는 이렇게 위로할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얻는것만큼 보람 차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있어요?"

그래서 그 보람 차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전업주부가 어떤 취급을 받지요?

그것이 내가 거부했던 본질이었다. 그걸 몰랐나? 아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했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우리는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쉬운' 삶을 사는 전업주부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애는 역시 엄마가 키워야 한다면서, 전담해서 키우는 엄마를 집에만 있어서 뭘 모른단 식으로 적극 무시하기 일쑤다.

퇴근 없는 업무의 연속

하지만 전업주부야말로 퇴근 없는 업무의 연속이며, 숙련노동자다. 특히 육아 노동은 가사노동과 별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또한 많다. 24시간 돌봄노동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아웃소싱(가사도우미, 육아도우미 등)할 경우 드는 비용을 고려해보면 적은 가치가 아니다. 어디서 읽은 것인데, 매 끼니 외식할 경우 100만원이 드는데 이것을 40만원어치 장을 봐서 해결한다면, 60만원어치 가사노동을 사용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이면 다들 알테지만 괜찮은 육아 도우미 이모님을 모셔오는 비용으로 월급을 고스란히 내야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돈을 주고 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토크쇼에 나와서는 어서 며느리를 데려와서 엄마 그만 고생시키고 싶다는 남자 연예인들더러 효자라고 치켜세울지언정.

저녁이 있는 삶이란 캐치 프레이즈가 한 때 호평을 받았다. 그 저녁은 누구의 저녁일까. 누군가의 저녁과 또 다른 누군가의 저녁이 같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돌이 갓 지난 아기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여 저녁을 꼭 집에서 먹는단다. 그 저녁은 남편만의 저녁이다. 그 친구에게는 저녁도 없고, 아침도 없고 점심도 없다. 전업주부에게도 저녁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전업주부가 되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 전업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되고 싶지 않다해서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이 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창 일하는 30대에 아이를 낳고 사라지는 여자 선배들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아이를 낳고 한참을 버텨내고도 40대가 넘으면 여자 상사들은 하루하루 사라지곤 했다. 다들 어디로 가는걸까.

'독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여자 상사를 기억하다. 야근할 때마다 자리에서 아이와 통화를 해서 통화내용도 기억난다. 결국 사라졌다. 조직이란 말야, 를 외치던 여자 상사도 기억한다. 그녀도 몇 년 후 사라졌다. 그녀들은 항상 괴로워했다. 아마 나도 괴로운 순간이 올 것이다. 내 의지가 아닌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이고, 그 때 내 선택이 나의 자존을 깎을 것에 괴로울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도 중요하지만 저녁이 없어도 혼자 이겨내지 않는 삶도 역시 중요하다

저녁이 있는 삶이 여성의 경력단절과 육아 문제를 해결할거라는 사람들이 많다. 저녁이 없는 삶에서 아빠는 늘 일에 찌들어 힘들고, 육아와 가사에는 참여할 수가 없단다. 그러면 엄마는? 워킹맘은 저녁이 있어도 육아와 가사에 그 시간을 써야 한다. 저녁이 없는 워킹맘도 어떻게든 죄책감에 시달리며 육아와 가사를 해결해야 한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저녁이 없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저녁이 있는 삶도 중요하지만 저녁이 없어도 혼자 이겨내지 않는 삶도 역시 중요하다. 저녁이 있던 없던 모든 가능한 시간을 같이 쪼개 쓰는 파트너십도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저녁이 없는 삶을 혼자 이겨내는 워킹맘을 칭송하며 전업주부에게는 왜 저렇게 못 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워킹맘더러는 뭐든 제대로 된 게 없다고 야단을 친다.

사회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전업주부를 혐오하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워킹맘을 혼내고 가르친다. 나는 직장에 나가서 봉급을 받고 돈을 버는 것을 선택하는 것만큼, 전업으로서 가사/육아 노동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며, 가사/육아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이 아이와 엄마에게 정신적 고통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업을 선택하면 "집에서 노는" 여자가 되고, 워킹맘을 선택하면 "비정한" 엄마가 되지 않나. 애초에 그런 잣대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선택이 엄마에게만 주어질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아빠가 선택하는 전업주부 또한 언젠가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엄마 탓

우리는 많은 경우에 엄마 탓을 한다. 도저히 될 수 없는 이상적인 희생상을 상정하고 원망한다. 그게 쉽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침에 날 제 때 깨워줘야하되 너무 일찍 깨워서도 안 되고 너무 늦게 깨워서도 안 되며, 밥을 차려주되 너무 간소해도 안되고 너무 부담스러워도 안 된다. 엄마는 날 챙기고 위로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되 나의 삶에 너무 간섭해도 안 되고, 내가 내는 신경질을 받아주되 나에게 신경질을 내서도 안 된다. 엄마는 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학원을 보내고 시험점수를 확인해야 하지만, 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나를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화를 내도 안 된다. 내가 살찌는 것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 때문이며 내가 살이 빠지는 것도 엄마가 밥을 제대로 안 차려줘서 그런 것이고 키가 안 크는 것도 엄마가 제대로 못 챙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엄마들은 자식을 놓지 못한다. 평생 자아를 희생해오다보니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엄마와의 거리두기가 되지 않아 성인으로서 홀로 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역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같은 말은 엄마들이 제일 많이 한다. 이것을 부정하면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엄마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를 엄마가 전업으로 키울 필요가 없는데 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전업을 선택하며 키웠는지 자괴감을 느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는 엄마들도 많다. 엄마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너무 커서 나쁜엄마가 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엄마들에 대한 비난 또한 엄마들이 제일 심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희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도 참고 저것도 참았는데 왜 저 엄마는 안 참는지, 묵묵히 희생한 자신이 바보가 되는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희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른이들이 모두 희생하기를 기대한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다. 워킹맘은 워킹맘일뿐 일과 가정을 비교하면서 좋고 나쁨을 평가받을 이유가 없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어머니라며 억지로 추켜세우거나 집에서 논다며 무시할 필요가 없다. 워킹맘마다, 전업주부마다 사정도 다 다르다. 사람마다 다른 삶의 방식을 굳이 평가하려고 들지 말자.

전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자괴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이를 대하는 엄마가 죄책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필요가 없도록, 자신의 욕망을 억지로 참다가 타인에게 화를 터트리지 않도록, 희생이 강요되지 않도록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우리는 더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 있고, 죄책감보다는 자존감을 더 중요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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