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오늘의 여행지는 노뉴워크의 [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이하 R.F.A.N.)다.
‘시각이미지를 만드는 언젠가 페미니스트 프로젝트’1)인 노뉴워크는 2017년 7월 8일부터 8월 11일까지 진행된 R.F.A.N.을 통해 한국의 미술 생태계에 서식중인 동시대 작가들을 찾아내고 모아냈다. R.F.A.N에서는 여성주의 작가들이 보낸 이미지들을 담아낸 아카이브 전시, 작가들의 포트폴리오 소개의 시간인 이미지 스크리닝을 함께 진행했다. 세부적으로는 여성주의 팀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1주차 1회, 24(살~)34(살) 여성주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2주차 2회, 35(살~)45(살) 여성주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3주차 2회, 통합적인 아티스트 토크를 4주차의 1회로 배치하여 4주 6번을 진행했다. 또한 50여명의 작가들과 10여팀에게 받은 이미지들을 정리하여 스프링노트로 철하고, 영상들은 선별하여 상영하여, 입맛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아카이브 전시를 8월 11일까지 선보였다.
R.F.A.N.의 백미, 이미지 스크리닝&아티스트 토크는 매번 여성주의 토론의 열기로 뜨거웠다. 에어컨이 없는 약 3m*5m 크기의 방에 3-40명이 둘러 앉았다. 쿨팬을 수동 회전시키고,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물로 목을 축였다. 사막을 건너듯 하는 더위였으나, 물리적인 더위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밀도에서도 뜨거운 자리였다.
작가들과 큐레이터들과 비평가들과 관객들이 뒤섞여 이야기 나누던 중, 페미니즘 미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질문이 나왔다. 질문자는 작가로 참석해 있던 내게 대답을 해주십사 부탁했다.
사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자신의 말을 하도록 하고 싶다. 이제는 진부한 비유라고들 하지만, 작가가 부모이고 작품이 자식이라고 했을 때, “내 자식이 이런 자식이다!”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극성 부모 역할은 지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부모가 아무리 뭐라 해도 자식은 자신의 길을 가기 마련이니까. 말로써의 언급을 사양했으나, 다시 한 번 답변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다. 내 경우에는 ‘내가 선택한 적이 없는 것’, 이를테면 ‘여성(성)’에 대한 저항의 방식들이 여성주의 미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은 각자 다르다. ‘여성주의 미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이 개념에 대해 더듬어왔는지에 대해 각 작가/팀의 이미지 및 활동을 통해 확인해 보고, 직접 만나 각자가 파악하는 여성주의 미술의 개념에 대해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었다는 점에 R.F.A.N.은 분명히 의미있는 기획이다. 여성주의 미술이 세상을 구원할 거라고 믿고 있다는 말을 한 작가도 있었다. 또한 여성주의 미술을 규정하려는 시도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가진 이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담론들의 재생산, 즉 여성주의 미술 전시의 구체화, 여성주의 미술 이론의 생산, 여성주의 미술&미술사에 대한 교육과 그 제도화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
기획 구성원들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던 R.F.A.N.에 감히 더 바란다면, 각 팀과 작가들의 분류에 있어서 방향성이 더 보였다면 좋았으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본인이 ‘여성주의 미술 작가인지 잘 모르겠’다며, 망설이면서 작업을 선보이길 신청한 작가들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흔들림까지 안고 가기에는 분류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스크리닝의 팀 발표에서는 2008년부터 활동해 역사가 가장 오래된 ‘빨간뻔데기(이하 빨뻔)’의 작업이 흥미로웠다.
빨뻔은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투쟁하는 제주도 강정 마을의 후원 기금 마련을 위한 말똥게/돌고래 키트를 만들었고, 콜트콜텍 기타 공장의 부당 정리해고에 반대 투쟁을 벌이는 현장에서도 작업을 진행했다. 2012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후 남아있는 공장 터의 ‘삼층, 가장 어두운 곳에 작품들을 설치하고 작품 조명을 손전등과 약간의 자연광에 의존’2)하기로 했다는 빨뻔의 작품들에서는 생생하게 내려앉은 어둠이 느껴졌다. 전시 관람을 위한 지도에는 ‘엎드려서 보세요’, ‘앉으세요: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뛰세요: 창밖이 궁금합니다.’ 등의 문구가 표기되어 있다. 빨뻔은 멈춰진 달력에 조명을 비추고, 잘라낸 전선을 열과 행을 맞춰 늘어놓고, 창문 앞에 트램폴린을 끌어다 놓아 원하는 사람이 가까스로 창문 밖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정리해고로 사람들이 떠난 빈 자리에 두껍게 내려앉은 침묵과 먼지를 대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테지만, 빨뻔의 시도 덕분에 가동을 멈춘 공장이 조금이나마 무거운 몸을 가볍게 털어내는 느낌이었다.
2434 그룹에서는 새로운 시도들과 탐구 방식이 빼어나게 두드러졌다. 이정식 작가의 HIV/AIDS 치료제를 물에 녹여 캔버스에 칠하거나, 약을 복용한 시간을 빼곡하게 적어나가는 작업은 이물질로서의 약과 신체가 반응하는 과정을 꿋꿋하게 기록해나간 작업이었다. ‘요코하마에서의 춤’은 트랜스젠더 성노동자가 피해자로서 교살당한 사건에 대해 한국어와 일본어를 교차시켜가며 자신의 이야기처럼 서술하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어두운 공간에 뒤에서 내려 쬐는 조명만을 사용해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후광 효과가 생긴 채 자기고백적인 내용이 던져졌다.3) 2014년 진행된 워크숍 [한 이불 덮고 만져줄게] 는 이정식 작가가 제작과 원안을 제공하고 이외 많은 작가들이 함께 참가한 협업이었다. 말 그대로 하얀 천 아래 사람들의 몸을 넣고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이었다.
3545 그룹은 작업한 연도가 쌓여온 때문인지 작업량과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뛰어났다. 윤정미 작가는 ‘핑크와 블루 프로젝트 Pink&Blue project’의 이미지들을 선보였는데, 여러 아이들의 방에 자신의 물건을 세팅한 후 사진으로 담아낸 프로젝트다.
흥미롭게도, 이 작업에 “이 시각적 결과물은 단지 성별차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라는 요지의 질문이 들어왔다. 윤정미 작가는 그에 동의하며, 물건을 세팅하고 사진을 찍는 시간 동안 자신의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려다 보니 사진의 모델들이 중산층이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섭외를 해보기는 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개인의 취향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개인 취향의 물건들을 갖추게 할 재력과 마음의 여유는 아무래도 사회적인 위치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나이대에 좋아하는 색깔이 성별에 따라 집중되는 것은 역시 흥미로운 현상이다. 또한 극명하게 드러나는 색깔의 차이도 눈에 띄었지만, 포켓몬이며 키티, 디즈니의 캐릭터들 등 익숙한 도상들이 눈에 밟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각 사진의 주인공들, 그 소유의 사물들 간 차이점과 공통점을 가로세로로 짜 보며 사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 60여명/팀의 이미지들이 노트와 스크린 안에 가만히 들어차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R.F.A.N.은 흥미로웠으며, 작업들을 담아내는 기획팀의 태도는 성실했다. 투명한 술에 라임즙, 소금이 제공되는 칵테일 마가리타와 닮은 이 프로젝트의 2회차를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막과도 같은 현실의 가부장제를 건너려면 목을 적실 여성주의가 꼭 필요하니까.
1) 2017년 8월, 노뉴워크 소개글
2) <콜트콜텍전 클로즈 close by 빨간뻔데기>, 2012년 10월
3) 작가에 따르면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성노동을 위해 건너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