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iekte Münster) 는 독일 베스트팔렌 지역의 소도시 뮌스터 전역을 아우르는 공공 조각 중심의 예술 행사이다. 1977년 처음 개최된 이래 10년마다 한번씩 새로운 기획을 선보이고 있으며, 2017년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다. 카스퍼 쾨니그(Kasper König)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설립자로서, 40년이 된 지금까지도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다. 그가 클라우스 부슈만(Klaus Bußmann)와 함께 기획한 첫번째 프로젝트에는 당시 젊고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의 예술가들을 대거 소개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대단한 라인업이었다. 미니멀리즘의 갓파더 도날드 저드(Donald Judd), 한국에는 시청의 소라탑으로 잘 알려져 있는 팝 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미니멀리즘 조각가이자 열렬한 맑시스트였던 칼 안드레(Carl Andre), 공공 조각의 역사를 다시 쓴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대지미술(Land Art)의 생물학적 아버지 리처드 롱(Richard Long), 진지한 개념 예술가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독일의 간판 작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등, 현대 미술사를 귀동냥으로 주워듣기만 해도 알만한 이름들이 포진해있다. 어쩌면 그들을 발굴해 독일에 소개한 성과가 이 작은 도시의 느린 프로젝트를 이토록 유명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후로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탄탄한 작가진을 구축해왔고, 역대 작가들 중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올 해의 ‘에디션’에는 35명의 작가들이 새로이 참여하였고, 뮌스터 전역에는 이전의 프로젝트들에서 선보였던 것들 중 39점의 작품이 여전히 남아 있다. 뮌스터를 돌면서 작품을 찾아보기 제일 좋은 방법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시내 중심가에 프로젝트 측에서 운영하는 바이크 렌탈샵이 있고, 작품이 있는 장소로 안내해주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도 다운 받을 수 있다. 그다지 붐비지 않는 오밀조밀한 동네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도 상쾌한 경험이지만, 아무리 새 작업만 찾아보면서 재빨리 돌아다녀도 하루에 다 보기에는 생각보다 벅차다. 몇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니 체력의 한계가 컸다. 이전 작품들까지 여유 있게 보려면 이틀에서 사흘 정도, 새로운 작품들만 보면 하루와 반나절,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렌탈샵이 오픈하는 10시부터 문을 닫는 9시까지 하루 종일 다니면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여름은 해가 기니까. 미술이 생소한 사람이라면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것도 좋겠다.
오늘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성 작가 두 명을 소개하려고 한다.
미카 로텐버그 (Mika Rottenbrg), <우주 발전기 Cosmic Generator>(2017)
시내 중심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려 마주친 작고 촌스러운 간판이 이 장소가 한 때 아시안 슈퍼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이런 저런 잡다하고 허술한 물건들이 가게 곳곳에 흩어져 있다.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중국산 제품이 많다. 문득, 이 간판도 사실은 작가가 만들어 단 것이고, 어느 게으른 설치미술가의 ‘후기식민주의’ 혹은 ‘아시안 인종 정체성’ 운운하는 태작인가? 싶기도 하다. 조잡하고 값싼 물건들로 작업하는 작가들은 수두룩한데, 이 작가는 무엇이 특별한 지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대강 훑어본 뒤 장소를 떠나려 하는데, 전시장을 지키던 여성이 안에 비디오가 있으니 보고 가라고 한다. 굳이 붙드는데 거절할 수 없어서 반신반의로 캄캄한 방에 들어가 앉는다. 오, 그런데, 세상에. 가게의 설치물은 그저 장식이나 다름 없었다. 비디오가 진짜였다.
이 장소는 문을 닫은 ‘진짜’ 아시안 슈퍼마켓이 맞고, 작가는 이것을 일종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설치 환경으로 여기고 작업했다고 한다. 작가가 직접 처음부터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작가의 ‘선택’만으로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마르셀 뒤샹 이후로 작가들은 폭발적으로 ‘레디메이드’ 사물들을 작업에 이용하기 시작했고 뒤샹이 가장 평범하고 중립적인 사물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달리 레디메이드 사물의 상징적 의미, 사회적 맥락, 조형적인 미감, 내포된 취향 등등 수많은 요소들을 각자의 방식대로 작업에 포함시켰다.
그럼, 본격적으로 미카 로텐버그의 비디오 속으로 들어가보자. 한 멕시코 여성이 냄비가 든 푸드카를 밀면서 멕시코 국경을 걷고 있다. 시장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냄비 속을 보여주기도 한다. 냄비 속에선 좁고 긴 터널이 이어지고 핫도그 코스튬을 입은 남자 둘과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신사가 낑낑거리며 터널 속을 기어간다. 색전구를 한없이 망치로 깨는 여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러닝 타임의 대부분은 중국 이우(Yiwu) 시의 일용품 상점을 하나씩 비추며 지나가는 시퀀스로 채워져 있다. 형형색색의 치졸한 상품들이 한가득 채워진 점포들이 끊임 없이 줄지어 나오는 이 부분은 이 비디오의 백미다. 차갑고 선명한 조명이 쨍하게 비추는 가게들의 고요는 이것을 일상적인 풍경에서 초현실적인 스펙터클로 보이게 한다. 오, 맙소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 문장이 아이 러브 유가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말이 실감이 날만큼, 실로 온갖 상품들로 넘쳐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풍경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멕시코 차이나타운에 비밀 터널이 있다는 루머에 착안했다고 하는데, 비디오 속에서 장소들과 나라들간의 거리감은 실제로 매우 좁혀져 있다. 아무런 설교도 설명도 늘어놓지 않으면서도(사실 대사가 전혀 없다), ‘세계화'의 현상을 이렇게 재치있게 담아낸 작업이 또 있을까? 비디오를 다 보고 나온 순간, 전시장 안의 설치물들이 달리 보인다.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와씨발우리죽는다 HellYeahWeFuckDie>(2016)
일단 제목부터 당황스러울지 모르겠다. 이 저속한 단어들의 조합은 빌보드 매거진에서 미국의 노래 가사 중 가장 많이 사용된 다섯 단어를 추려낸 것에서 따왔다고 한다. 단어들은 콘크리트에 네온 조명이 들어간 조형물로 만들어져 의자처럼 사용할 수 있다. 관객들은 이 조형물에 앉아 세 개의 모니터로 자꾸 넘어지려다 균형을 잡는 로봇들의 반복적인 영상을 보게 된다. 어기적거리는 로봇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딘가 가엽기도 하다. 로봇의 성능을 시험하려 발로 세게 걷어차는 연구진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묘하게 더욱 더 ‘비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화면 속 아직은 어설픈 로봇들의 모습과 ‘우리는 죽는다’는 커다란 메시지가 교차하면서 반어적인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뒷편으로 가면 의자 조형물들이 몇 개 더 있고, 앞선 화면들과는 다른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터키 남서부의 쿠르드인 도시에서 펼쳐지는데, 내전 때 터키군에 의해서 대부분 파괴된 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1205년 ‘오토마타’라고 알려진 로봇의 초기 개념을 창안한 과학자이자 공학자 알-자자리(Al-Jazari)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영상속 화자는 알-자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때때로 아이폰의 ‘시리I(Siri)’에게 질문을 던지며 도시의 파괴된 곳곳을 비춘다. 부서진 유적지에 한 사내가 태양빛을 받으며 로봇의 움직임을 본뜬 춤을 추는 모습이 간간이 삽입된다.
작가가 전하는 인간성과 기술의 테마는 작품의 여러 요소 속에서 서로 불편하게 맞부딪치고 기이한 모습으로 엮여 출구가 없는 사고의 미로를 만들어 낸다. 로봇들의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에 비하면 견고하고 쾌활한 “HellYeahWeFuckDie”라는 문구는 무언가 자조적인 승리의 외침 같기도 하다. 로봇을 망설임 없이 걷어차는 연구진의 발놀림과는 대조적으로, 군사기술로 파괴된 쿠르드 지역의 편린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기술의 끔찍한 위력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거기서 다시 화자는 ‘시리’에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재차 묻고, 바로 그곳에 800여년전 로봇을 꿈꿨던 한 과학자가 있었으며, 그 유물과 폐허 속에서 인간은, 인간을 흉내내는 로봇을 닮은 춤을 춘다. 작가가 짜놓은 이러한 숨막히는 알레고리 속에서 우리는 무슨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Hell yeah, we fuck 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