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베니스 비엔날레 (2)

알다여성 예술가

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베니스 비엔날레 (2)

쥬나 리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오늘은 지난 편에 이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네 명의 여성 작가를 더 소개하려한다. 먼저 반가운 이름으로 시작해보자.

이수경 (Yee Sookyoung)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_이상한 나라의 아홉마리 용, 2017, Yee Sookyung, Translated Vase_Nine Dragons in Wonderland, 2017

올해 한국관 대표 작가로 이완, 코디 최가 선정된 것과 별개로 아르세날의 본 전시에는 두 명의 한국 작가가 포함되어 있는데 한 명은 미디어 아티스트 김성환, 다른 한 명은 지금부터 소개할 이수경 작가다. 1963년생인 이수경 작가는 90년대부터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전시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두루 참여해왔다. (최근 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젊은 작가 이수경과는 동명이인이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그의 대표 작품인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 중 2017년 신작 한 점이 전시되었다. 전통적인 유형의 도자기를 깬 뒤 그 부서진 잔해를 접합하여 만든 이 커다란 조각은 서구 근대화 이후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해온 작가의 관심사가 반영된 수작이다. 파괴된 전통의 잔해를 정신 없이 그러모아, 훼손된 국가적 정체성을 졸속으로 복원하고자 기형적으로 존재감을 잔뜩 부풀린 한국 사회의 정신적 풍경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키키 스미스 (Kiki Smith) 

키키 스미스, 파수꾼, 2012, 그리고 불에 달굼, 뒷면에 은박, 납 첨가, 놋쇠 프레임 200 x 81 cm Kiki Smith, The Watcher, 2012, Painted and fired, silver leaf on backside, leaded and framed in brass frame, 200 x 81 cm

키키 스미스는 미국의 전설적인 미니멀리즘 조각가 토니 스미스(Tony Smith)의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미국 예술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갖는 작가다. 엄격한 형식적 균형을 추구했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키키 스미스는 드로잉, 도자, 태피스트리, 판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미디엄을 아우르며 여성의 내면적 풍경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의 특별한 감수성과 어딘가 날것의, 완성되지 않은 듯한 솔직한 드로잉들이 주는 친밀감 때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그림자와 무관하게 현재 국제 예술계에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여성, 식물, 동물과 같은 것들이 그가 주로 다루는 소재들인데 이번 비엔날레는 여성을 그린 드로잉들이 주를 이루었다. 얇고 반투명한 네팔지에 그려진 그림들은 크기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부서질 것 같이 여린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거의 실물 크기로 그려진 여성들의 모습은 마치 정말 감정을 가진 실제 사람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감을 확보한다. 예술계의 소문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그의 섬세하고 내밀한 감성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게타 브라테스쿠 (Geta Brătescu)

게타 브라테스쿠, 루마니아 관 <출현> 설치 장면. Geta Brătescu, Romania Pavillion, <Apparition> installation view

올해 91세를 맞은, 루마니아에서 오래도록 왕성히 활동해온 이 여성 작가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추상, 구상할 것 없이 다양한 형식의 드로잉, 페인팅들을 수없이 그렸으며 사진, 콜라주, 조각, 퍼포먼스, 영화 작업도 선뵈고 있다. 거친 선으로 종이를 마구 긁듯 반복적으로 사용해 그려진 군상 드로잉들은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작가가 가진 강력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며, 단순한 도상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시퀀스로 나열한 추상 작업들은 많지 않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무척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2015년 영국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국제 예술계에서의 그의 입지를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브라테스쿠는 원래 문학을 전공하였고, 순수 예술 학위 과정을 다니다 루마니아의 공산당이 부흥하면서 대학에서 쫓겨났다. 그의 부모가 얼마간의 재산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근거로 당에서 ‘출신 성분’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43세에 대학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작가는 1971년도에 학위를 마쳤다. 공산당 치하 루마니아에서 굴곡 많은 역사와 함께하며 순탄치 않은 인생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작업 세계를 꾸준히 실천해온 내면의 힘이 느껴진다.

제세 존스 (Jesse Jones)

제세 존스, 아일랜드 관 <떨어라, 떨어라> 설치 장면 Jesse Johns, Ireland Pavillion, <Tremble Tremble> installation view

아일랜드 관의 대표 작가인 제세 존스는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국제적인 작가다. 그는 연극 예술가 올웬 푸에레(Olwen Fouéré), 사운드 아티스트 수잔 스텡거(Susan Stenger)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연극적인 영상 작업을 자주 발표해 왔다. 그는 ‘법’이 어떻게 세대에 걸쳐 집단적인 기억을 전승시켜 왔는지 관심을 가지고, 법이 어떻게 꾸며지고 수행되는 지에 대해 개입할 수 없는 미적 경험을 창출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떨어라, 떨어라(Tremble Tremble)>은 1970년대 이탈리아의 유급 가사노동 운동에서 “떨어라, 떨어라! 마녀들이 돌아왔다!”라고 외쳤던 것에서 빌어왔다. 어두운 전시장 전체를 통틀어 흐느적거리는 물질감의 스크린들이 배치되어 있고, 마녀로 분한 나이 든 여성의 제스처가 펼쳐지는 가운데, 마치 여성기를 연상시키듯 세로로 기울어진 입술에서 주문을 읊조리듯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스크린 사이 듬성 듬성 배치된 동물 뼈 같은 오브제들은 전시장이 주는 미스터리한 느낌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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