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돌이켜보니,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전시회를 본 적이 없다. 여성 작가 1인의 개인전을 제외하고, 10명 이상이 참여한 현대 미술 작품 전시회 중, 여성 작가의 작품만 다룬 전시회를 본 적이 없다. 한 편 남성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전시회는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나의 짧고 일천한 미술관 방문에서 여성은 주로 모델로만 등장했다. 어쩐지 나는 지금껏 이 사실을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기에 애통해 하지도 못했다.
다른 데는 몰라도 여기서는 여성 작가만이 유일하게 ‘적법한’ 작가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여성의 일(Matters of Women)> 전시(2018년 12월27일~2019년 2월24일)다. 표현할 주제가 여성의 일인데 표현하는 주체가 남성이었다면 퍽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3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여성 작가 12인이 참여했다.
지금 한국에서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일을 다루는 것보다 적절한 일이 있을까?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 대상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해당 전시 주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올라왔다. 심지어 전시 초반에 미술관 내 남자 화장실이 고장 나 출입을 막아 놓은 것을 두고 “일부러 남자 관객들이 불편하라고 그런 것”이라는 ‘음모론(?)’이 유포되기도 했다. 전시가 일으킨 일련의 흥미로운 사회적 반향까지도, 이 전시의 시의성을 증명하는 모양새다.
여성에게 벌어진 일들, 여성이 일으킨 일들
이토록 기막힌 타이밍만이 볼 거리의 전부는 아니다. 일단 전시된 각 작품의 다양한 형식이 돋보였다. 전시관 입구에는 최근 3년여 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고 치열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소위 ‘페미니즘 굿즈’들이 전시되어 있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스티커와 머그컵,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배지와 안경닦이 등이다. 이들은 작품은 아니지만 전시될 만하다. 그 자체로 여성에게 벌어진 일들, 여성이 일으킨 일들을 드러내는 가장 최신의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굿즈 뿐 만 아니라 여성의 일을 다룬 웹툰도 전시되어 있다. 젊은 여성의 일상과 연애에 관한 <썅년의 미학>, 기혼 여성의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낸 <며느라기>와 <엄마도 땡땡이가 필요해>, 데이트 폭력을 정면으로 말하는 <다 이아리> 등이다. 웹툰의 일부를 프린트해 벽에 전시했고 출판본이 있는 경우 관객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배치해 두었다.
이외에도 전시관 벽 곳곳에서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이런다고 세상이 바뀐다' 같은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문장은 이것이었다. ‘기회는 남성에게만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남성에게만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남성에게만 정의로울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평등, 공정, 정의라는 가치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아직도 사회는 ‘남성’을 인간의 기본형으로 가정하고 돌아가고 있지 않는지 통렬하게 고발하는 문장으로 느껴졌다.
여성 작가 11명의 작품은 비교적 전통적인 회화부터 사진, 일러스트, 영상, 출판물, 설치,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설치형 작품 등 다채롭다. 각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주제가 분명하고, 그 전달을 극대화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노승복 작가의 <1366 Project>는 붉고, 노랗고, 검고, 분홍빛, 주황빛 또는 보랏빛이 얽히고 설킨, 색채로 가득 찬 프린트다. 그 옆에는 이 중 한 픽셀을 확대한 프린트가 같은 크기로 놓여있다. 처음 이 작품을 보고 내가 연상한 것은 홀리데이 한정판 화장품의 화려한 피그먼트였다. 주로 ‘여성적’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색상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멍 사진을 확대한 것이다. 1366은 가정폭력 긴급신고 전화번호다. 여성이 겪는 가장 중대한 문제를 매우 직접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충분히 추상화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인 여성의 문제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한 여성 연예인이 겪은 데이트 폭력을 ‘밀착 취재’해 사건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디테일이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주고받은 카톡이나, 영상이나, 피해자 여성의 모습을 선정적으로 확대하던 한 인터넷 매체가 연상되기도 했다. 상처에 가장 가까이 달라붙어 화장품처럼 화려한 색깔만 뽑아내는 모습.
20년, 30년, 또는 100년 동안의 일
이번 전시에는 시간의 흐름이 담긴 작품이 유난히 많았다. 조혜정, 조윤경 작가의 <젠더와 제스츄어, 공간에 관한 실험>은 15분 57초짜리 영상이다.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하는 행동이 사진 또는 영상으로 제시되고, 비디오 속 여성 작가의 목소리가 남성들에게 이를 따라하라고 지시한다. 지하철에 앉기, 마스카라 바르기, 매니큐어 바르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기 등 여성이 잘 하도록 단련될 수밖에 없던 행동들이 남성이 따라하는 순간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행동이 된다. 가장 인상 깊은 제스츄어는 사진을 찍을 때 팔꿈치를 앞으로 내밀고 한 손 또는 두 손을 목덜미 근처의 머리카락에 갖다 대는 포즈였다. 아직도 졸업사진을 찍을 때 사진사들이 유독 여성들에게만 요구하는 포즈다. 남성들에게는 주로 팔짱을 끼라고 한다. 이 영상이 2001년 작품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씁쓸하다.
정정엽 작가의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는 여성운동의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역사를 기록했다. 당시 정정엽 작가를 주축으로 한 여성예술가 8명은 ‘유교적 가부장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종묘를 여성미술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취지로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요리, 분홍색 한복 치마자락, 출산의 경험을 활용한 작품들을 전시해 부계혈통으로 이어지는 왕가의 묘소가 가지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를 희석하고 해체하고자 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전주 이씨 종가에서 이 축제에 반발해 출품작을 훼손하고 참가자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이 사건은 3년 간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전시관에는 당시 출품작이었던 대형 한복치마와 사건기록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는 변론기록 일부와 재판 과정도 남아있는데,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1심에서 갑자기 담당 판사가 바뀌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판사가 전주 이씨였기 때문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이성적이길 기대하는 국가제도에서 유교적 가부장주의를 다시 만나는 반갑지 않은 코미디.
정혜윤 작가의 <구.디. 2번 출구>는 1980년대 구로공단과 2018년 구로디지털단지를, 그 안에서 기계처럼 단순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를 연결한다. 전시된 재봉틀의 페달을 밟으면 웹을 활용한 영상이 작동한다. 80년대 여성 재봉공들과 2000년대 여성 단순프로그래밍, 하청디자인 종사자의 현실은 놀랍도록 닮았다. 젠더화 된 노동 속에 갇힌 여성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연결되며 의미라는 힘을 가진다.
리금홍 작가의 <규방가사-각명기>는 거의 100년을 뛰어 넘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여성 노인들의 이름을 통해서다. 작가는 2012년 서울 창동의 한 노인정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이름을 당신들이 직접 쓰게 하여 이를 낙관석에 새겨 도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각자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해 책과 영상으로 엮었다. 일제시대라서 일본식 이름, 남자형제를 바라고 지은 이름, 제대로 이름을 안 지어줘서 말년에 자식들이 바꾸라고 해서 비로소 갖게 된 이름. 나도 학교에 보내줬다면 대단했을 텐데, 라고 말하는 90대 할머니들의 억울함은 생생하다. 여자가 자신만을 위한 이름을 갖고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 받기까지 걸린 세월이 실감 난다.
여성에게 벌어진 일들, 여성이 일으킨 일들. 어떤 것은 변했지만, 어떤 것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유효한 문제제기라면 그것은 뻔하지 않다. 그래서 여성은 계속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설치고, 말하고, 행동하고, 표현하고, 기록하고, 전시한다.
<여성의 일(Matters of Women)> 전시는 2019년 2월24일까지 진행된다. 1월2일부터 매주 수요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오디토리엄에서 전시 연계 영화를 상영한다. 땐뽀걸즈, 델마와 루이스, 두 개의 선, 오 루시!, 바그다드 카페, 논짱 도시락, 시, 매기스 플랜, 소공녀, 아이 캔 스피크, 히든 피겨스, 빌리 진 킹, 개 같은 날의 오후, 할머니의 먼 집, 후난에서 온 여인, 향혼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