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카셀 도쿠멘타 (1)

알다여성 예술가

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카셀 도쿠멘타 (1)

쥬나 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오늘 소개할 카셀 도쿠멘타는 160명이 넘는 작가들이 여러 장소에 포진해 있다. 도쿠멘타는 독일 중부의 중소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예술행사다. 도쿠멘타에 참여하는 관객 수가 해를 거듭할 수록 늘고 있으니, 북적이는 가운데 정신없이 전시작들을 훑으면서 바삐 다녀야 한다. 심지어 이번에는 아테네에서도 행사가 동시에 열리고 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놓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시작들 가운데 자기 관심사에 맞을 만한 것들을 빨리 인식하고, 필요한 작품들에만 시간을 오래 들이는 것이 말하자면 관람 팁이다. 

내가 방문했던 2007년, 2012년의 도쿠멘타는 절반 정도는 누구나 아는 스타 작가들이 채우고 있고, 절반 정도는 기획에 걸맞는 작품들이 전시되었기 때문에 관람이 비교적 편했다. 하지만 2017년의 도쿠멘타는 그야말로 낯선 이름들의 천국이었다. 이름만으로는 성별도 식별하기 어려운, 그리스 작가들과 '제3세계’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도쿠멘타?

도쿠멘타는 1955년 카셀의 화가이자 교수였던 아놀드 보데(Arnold Bode)가 나치에 의해 “퇴폐적”인 것으로 취급 당했던 20세기 예술을 복권하기 위해 입체주의, 야수주의, 청기사파, 미래주의 등과 당시 독일에 소개되지 않았던 근대의 고전들, 피카소, 마티스 같은 대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전시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5년 후 보데는 다른 예술사학자들과 함께 전시를 한 번 더 열게 되는데, 이때부터 5년이 도쿠멘타의 개최 주기가 되었다. 보데는 1968년 도쿠멘타4까지 기획을 맡았고, 1972년부터 도쿠멘타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전설적인 기획자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이 도쿠멘타 5부터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도쿠멘타 유한회사가 설립되고, 매 5년마다 감독을 선정해 진행하게 되었으며, 1997년엔 처음으로 여성 도쿠멘타 감독이 등장했다. 현재 도쿠멘타는 예술 담론을 주도하는 동시대 예술의 세계적 운동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도쿠멘타의 페미니즘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다른 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참여하고 있는 작가 중 상당수가 여성이고 다양한 국가 출신이며 페미니즘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작업도 많이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도쿠멘타 편은 1편, 2편으로 나누어 참여한 여성 작가 9명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마르타 미누진
<책의 만신전>

마르타 미누진, 책의 만신전 (1983/2017), 철, 책, 비닐. 프리드리히 광장 Marta Minujín, The Parthenon of Books, (1983/2017) steel, books, and plastic sheeting, Friedrichsplatz, Kassel, documenta 14, photo: Roman März

도쿠멘타 전체의 중심이 되는 장소는 역시 프리드리히 광장(Fridrichplatz)이다. 주요 전시장 중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 광장에 무엇이 설치되는 지가 도쿠멘타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이 광장에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기념비적 작품을 설치한 것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르타 미누진(Marta Minujin)이다. 

이 작업은 198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처음 선보였고, 2017년에 카셀을 위해 다시 만들어졌다. 1983년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특별한 해다. 1955년 쿠데타로 시작된 아르헨티나의 ‘국가 카톨릭’ 군부 독재 시절은 1983년에 종식되었는데, 작가는 그동안 독재 정권에 의해 밀실에 잠겨 있던 25,000권의 금서들을 입수하여 아테네의 판테온과 동일한 스케일의 구조물을 만들어 광장에 설치했다. 유일신 종교와 결합한 군부 독재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여러 신을 모시는 성전인 ‘만신전’이라는 형식은 참으로 적절하다. 이는 지배 계급이 억압하려 했던 수많은 진보적인 생각들을 공평하게 모시는 성소로서,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강력한 상징물이 된다. 이번 카셀 버전은 맥락도 ‘민주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도쿠멘타 기획팀은 이전에 금지되었던 적이 있는 책들의 목록을 발표한 뒤, 개인들에게 기증을 받아 이 기념비를 장식할 책들을 모았다. 엄청난 숫자의 책 제목을 다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살만 루슈디, 밀란 쿤데라, J.D. 샐린저, 장 자끄 루소 등 익숙한 이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도쿠멘타의 제목 “아테네로부터 배운다(Learning from Athens)”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배우겠다는 것이 아닐까?

마리아 아이크혼
<유태인 소유자로부터 불법적으로 얻어진 책들>

마리아 아이크혼, 유태인 소유자로부터 불법적으로 얻어진 책들 (2016/2017) 설치 장면, 노이에 갤러리 Maria Eichhorn, Unlawfully acquired books from Jewish ownership, installation view, Neue Galerie, Kassel, documenta 14, © Maria Eichhorn/VG Bild-Kunst, Bonn 2017, photo: Mathias Völzke

마리아 아이크혼의 작업은 마르타 미누진의 <책의 만신전>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1943년 베를린 시립 도서관이 구입한, 강제 이주 당하거나 살해된 베를린의 유태인들이 소유했던 책들을 높은 서가에 꽂아 전시장의 한가운데에 놓았다. 관객들은 저마다 책들의 제목을 읽으려 서가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마르타 미누진의 작업이 민주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면, 이 작업은 참혹한 나치 정권이 남긴 서글픈 유물이다. 

작가는 동시에 나치의 유태인 학살로 소유자를 잃은 재산들을 연구하는 로즈 발란드 인스티튜트(Rose Valland Institute)를 발족하였으며, 그와 관련된 워크샵이 이틀간 도쿠멘타의 부대 행사로 개최한다. 워크샵에서 토론할 주제는 다음과 같다. "나치 시기 어떤 과정으로 '사유 재산'이라는 분류가 흐릿해졌는가?”, “필요와 탐욕의 패러다임 안에서 어떠한 담론이 주인 없는 재산을 전유하는데 동반되었는가?” “주인 잃은 재산들과 새로운 주인들의 연결이 시공간의 측면에서 어떻게 그들의 사회적 관계망에 영향을 미쳤는가?” 이처럼 주인을 잃은 재산들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구조적 질문들을 폭넓게 탐구하면서 그녀는 사적 소유와 헤게모니의 문제들을 구체화해나간다.

엘리자베스 와일드
<판타지아>

엘리자베스 와일드, 판타지아 (2016-17) 40개의 콜라주, 22.1 x 21.5 cm 부터 38.5 x 30.7 cm. 노이에 갤러리 Elisabeth Wild, Fantasias (2016–17) Forty collages, Dimensions ranging from 22.1 × 21.5 cm to 38.5 × 30.7 cm Neue Gallerie

추상 회화를 좋아하는 나의 눈을 사로잡은 엘리자베스 와일드의 이 조그만 그림들은 어딘가 종교적인 도상 같기도 하고, 잘 짜여진 구도의 기하 추상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끔한 그림들은 사실 잡지에서 오려낸 페이지들을 잘라 붙인 콜라주다. 콜라주는 다다이스트들과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창안된 이래 대한민국 어린이 미술 교육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는 흔한 기법이지만, 숱한 콜라주 작업 중에서 본래 있었던 이미지를 이토록 완전히 재해석한 예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보통 콜라주는 이미지들이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뒤섞이면서 비논리적이고 충격적인 시각 경험을 주는데, 작가는 이미지들을 본연의 요소인 색과 형태로 환원시키고 자신의 조형 언어 안에 흡수시켰다. 이 균형잡힌 구성적 이미지들이 흔해 빠진 립스틱 광고, 인테리어 장식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광고 사진들의 진부함으로부터 순수한 조형 요소를 발견해 구성해내는 작가의 작업 과정을 유추하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정신적 경험이다. 

작가는 비엔나에서 출생한 이래 나치를 피해 아르헨티나로 도주했고, 다시 아르헨티나의 정치 상황 때문에 바젤로 이주했으며, 딸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로 돌아와 정착한 호숫가에서는 폭풍우와 산사태 때문에 집을 잃고 말았다. 굴곡진 삶과 역경들 때문에 도가 튼 것인지, 그녀의 작업들은 아무런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초연할 뿐이다. 1922년생, 85세의 할머니 작가인데 이번에 걸린 작업들은 무려 2016년, 2017년 신작들이다. 그는 여전히 매일 잡지를 뒤적이면서 명상하듯 작업을 한다고 한다. 과연 어떤 정신 상태에 이르면 잡지 속의 산만한 이미지들이 명상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처럼 노년에도 꾸준히 훌륭한 작업들을 선보이는 여성 작가들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어 불안해하는 우리 같은 젊은 여성 작가들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커다란 응원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의 팬이 될 것 같다.

마리아 하사비
무대 연출: 빛나는 벽 #2

마리아 하사비, 무대 연출: 빛나는 벽 #2 (2017) 고열 아크릴릭 페인트, 35 코요 54 x 3S 따뜻한 흰색 LED 조명. 244 x 244 cm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 Maria Hassabi, STAGING: Lighting Wall #2 (2017) High heat acrylic paint, 35 Coyo 54 × 3S Warm White LED Par lights Area: 244 × 244 cm Neue Neue Gallerie

마리아 하사비는 중동의 키프로스에서 태어나 현재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자 안무가로 설치 작품보다는 댄스 퍼포먼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퍼포먼스는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이라기 보다는 구분된 신체적 동작이 느린 주기로 연속되는데, 뭐랄까, 약간 괴상한 필라테스 수업 같다. 퍼포머들은 일반적인 춤에서 처럼 몸을 극적으로 움직이며 빠르게 돌아다니는 대신특정한 동작을 한 채 특정한 위치에 오랫동안 자리잡은 채 아주 천천히 분절적으로 미묘한 움직임을 보인다. 즉, 대개 이 자세에서, 저 자세로 바꾸면서 대부분 가만히 멈추어 있다. 

이번 도쿠멘타의 장소 중 하나인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에 설치된 조명들은 눈이 부시도록 강한 빛이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서서히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작업이다. 그의 퍼포먼스 작업의 느린 시간성을 참고할 때 몹시 빛났다가 천천히 차례로 어두워지는 이 빛들이 주는 묘한 몰입감은 그의 ‘춤’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그네스 딘
살아 있는 피라미드

아그네스 딘, 살아 있는 피라미드 (2015/2017) 꽃, 풀, 흙, 목재, 페인트 9 x 9 x 9m. 노르드스타트 공원 Agnes Denes, The Living Pyramid (2015/2017) Flowers, grasses, soil, wood, and paint 9 × 9 × 9 m Originally commissioned and presented by Socrates Sculpture Park, New York. Nordstadtpark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가는 ‘대지 미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이름인 아그네스 딘이다. 대지 미술이란 말 그대로 땅을 재료로 삼는 예술 작품으로, 현대 미술을 접하다 보면 듣고 듣고 또 듣는 예술의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이라는 개념과도 관련이 있다. 장소 특정성이란, 예술이 현존하는 장소가 그 작품의 맥락과 떨어질 수 없으며 그 장소에 있기 때문에 특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아그네스 딘의 대표작 <밀밭(Wheatfield, 1982)>은 뉴욕 배터리 파크의 쓰레기 매립장을 재생하여 밀을 기르고 수확했던 작업으로, 대지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업이다. 

‘장소-특정성’이라는 개념은 단지 대지 미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범위에서 널리 쓰이지만, <밀밭>의 장소는 어느 무작위의 시골 마을 공터가 아니라 맨하탄 다운타운 끝자락의 버려진 땅이었고 그곳을 밀밭으로 바꾸었다는 것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녀는 이번 도쿠멘타에 그녀가 천착하고 있는 인간성과 자연의 관계를 두루 탐구하는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내놓았다. 피라미드 형태는 그녀에게 진화와 재생의 상징으로서, <살아있는 피라미드>는 그녀가 가진 인간관과 자연관의 현현일 뿐만 아니라 백년 천년 그 자리에서 낡아가는 무의미한 기념비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이는 작품을 둘러싸고 꾸준히 돌보아야 할 책임감을 지닌 작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참여적인 작업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 글은 <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카셀 도쿠멘타(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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