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

알다여성 예술가

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

쥬나 리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오늘의 목적지는 그렇게 ‘힙'하다고 알려진 독일의 가장 분주한 도시 베를린이다. 베를린은 진보적인 큐레이터십, 대도시의 매력,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가 더해져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있는현대 예술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어디서부터 봐야 할 지 모르겠을 정도로 수도 없이 많은 갤러리가 포진해 있다. 

갤러리/미술관 소개 어플리케이션 <ARTFORUM>의 베를린 지역 검색 결과 지도. (2017년 8월) 

내가 10년 전 베를린에 왔을 때는 미테(Mitte) 지역의 아우구스트스트라세(Auguststraße)에 작은 갤러리들이 줄지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길을 잘못 든 건지, 10년 간 많이 변한 것인지, 쓸만한 갤러리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미테보다는 크로이츠베르그(Kreuzberg) 지역에서 좋은 전시들을 볼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딱 하루밖에 시간이 없는데, 현대 미술이 보고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나의 답은 함부르크 반호프(Hamburg Bahnhof)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 베를린 국립 미술관(National Galerie: Staatliche Museen zu Berlin)이다. 삼룽 보로스(Sammlung Boros)의 현대미술 컬렉션도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소규모 투어를 예약해야만 입장할 수 있으니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면 방문하기 어렵다. 한 달 내내 예약이 꽉 차 있으니 한참 전에 꼭 체크해 두어야 한다.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 (Hamburg Bahnhof)

먼저 미술관 이름이 의아할 것이다. 베를린에 웬 함부르크? 반호프(Bahnhof)는 기차역이라는 뜻으로, 기차역을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만든 형태이다. 원래는 함부르크로 가는 열차가 주로 드나들던 역이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보면 역내 보도를 재현해 놓은 통로도 있다. 기차가 드나들었을 커다란 홀에는 애드리언 파이퍼(Adrien Piper)의 개념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세 개의 리셉션이 설치되어 진행 중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몇 가지 정보를 적어내고, 이 정보의 축적을 통해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미술관의 영구 컬렉션으로 투어를 시작하자. 오른쪽 첫방으로 들어가면, 독일의 신표현주의 예술가 중 한 명인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이어 대단한 규모는 아니지만 북미의 매우 중요한 걸작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관을 만나게 되는데, 이 전시관은 독일의 예술품 수집가 에리히 맑스(Erich Marx) 박사가 기증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 따라 맑스 컬렉션 (Marx Collection)이라고 불리는 이 전시동은 안젤름 키퍼의 작품들이 입구 역할을 하고, 본격적인 컬렉션을 향해 걸어들어가면 첫눈에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마오쩌둥 초상이 포토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앤디 워홀 뿐만 아니라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사이 톰블리(Cy Twombly) 등 1950년대 미국 현대미술의 스타들이 남긴 빼어난 수작들과, 독일의 자랑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설치 작품과 비디오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에서 사이 톰블리의 식물의 제국 <Empire of Flora> (1961)은 놓치지 말 것. 사이 톰블리의 얼굴 격인 대표작으로, 실제로 봐야만 느낄 수 있는 회화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흠씬 느낄 수 있다. 

맑스 컬렉션도 무척 좋지만, 사실상 이 예술가들의 작품은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작가들이다. 함부르크 반호프의 더 큰 장점은, 훌륭한 동시대 미술 기획전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 <움직임은 모든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Moving is in evert direction>는 중요한 현대, 동시대 미술 작가들을 세련되게 엮은 좋은 기획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시에서 눈에 띄었던 네 명의 동시대 여성 작가들을 골라보았다.

바바라 블룸 (Barbara Bloom)

미술관 왼편의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온통 연녹색으로 칠해진 방을 만나게 된다. 로스앤젤레스 태생의 미국 작가 바바라 블룸의 <집의 외관 Semblance of a House (2013-2015)>이라는 설치작품이다. 가구를 본 떠 만들어진 조각들이 요목조목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제목처럼 누군가의 집에 들어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펼쳐진 책 모양의 단단한 구조물에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글들 뿐만 아니라 음악가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가사가 적혀 있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서로 참조하고 연관되는, 정신적인 대화의 공간을 연출해내고 싶었다고 한다. 한쪽 구석의 서랍에는 루이비통이나 까르띠에 같은 명품 브랜드의 빈 상자가 진열되어 있다. 이 상자들은 일종의 빈 껍데기이고, 집을 닮은 이 설치 작품도 내부 공간의 겉모습만을 떠낸 것이라는 점에서 상응하기도 한다.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오가면서 모순적인 말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간 전체를 통일시키는 흐린 연녹색은 사물들의 물질적인 존재감을 미미하게 만들고 전체적으로 마치 유령의 집같은 인상을 준다. ‘변기’로 악명이 높은 현대 미술의 고조 할아버지, 마르셀 뒤샹이 남긴 <Guest + Host = Ghost>라는 말장난에 착안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상상의 손님들을 불러들이는, 일종의 열린 살롱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글쎄. 어딘가 을씨년스럽다.

수잔 필립스 (Susan Philipsz)

함부르크 역사를 재현한 복도를 쭉 걸어가, 일렬로 늘어선 작가들의 방들을 또 훌쩍 넘어서, 이번에는 수잔 필립스의 사운드 설치 작품 <전쟁으로 부서진 악기들 (셸락) War Damaged Musical Instruments (Shellac) (2015)>로 가보겠다. 웬 확성기 같은 것들이 띄엄띄엄 천장에 매달려 있다. 수잔 필립스는 2010년 영국의 터너상을 수상하기도 한 사운드 아티스트로, 나는 그녀에게 ‘스테레오 서라운드 아티스트’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소리들을 공간에 걸맞게 해석해 묘한 느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강을 가로질러 가녀린 귀신 울음 같은 소리를 주고 받는 한 쌍의 스피커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쉽게도 뮌스터의 그 스피커들은 10년의 세월을 못 이기고 고장나버렸다고 한다. 어쨌든, 특유의 그 귀신 같은 느낌은 이 설치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쟁 때 손상된 악기들을 연주해서 만든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스피커는 각각 하나의 악기에 대응하고, 이제는 장례식이나 추모식에서 사용하는 전쟁 음악의 멜로디를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 번, 저기서 한 번,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듯 스피커들이 울리고 관객은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공간 속을 거닐게 된다. 어딘가 구슬프기도 한, 연약한 소리들이 주위를 부드럽게 둘러싸는 기분이다. 옆방에는 어떻게 소리를 만들었는지,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필로티 리스트 (Pipilotti Rist)

앞의 두 작품이 좀 심심하다고 느꼈다면 피필로티 리스트의 <주말의 리메이크 Remake of the Weekend (1998/2017)>를 더 좋아 할 지 모르겠다. 그녀는 얼마 전 뉴욕의 뉴 뮤지엄(New Museum)에서 제법 큰 규모의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회고전이 진행되는 동안 뉴 뮤지엄은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그녀의 '총천연색 그로테스크 판타지'를 경험하려고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객들로 늘 붐볐다. 함부르크 반호프에 전시된 작품은 프랑스 누벨 바그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영화 <주말 (1967)>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 저기 흩어진 돌무더기 위에 영사된 이미지는 왜곡되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화려한 색상 속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어디선가는 나체의 누군가가 걸어가고 있는 것 같고, 어디선가는 수초가 흐느적거리는 것 같기도 한다. (사실 그녀는 전문적인 수중 사진가이기도 하다.) 비디오가 투사된 돌무덤들은 마치 색색의 작은 호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가 만든 영상은 분은 유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으니, 궁금하다면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약간 몽롱할 때 보시기를.

이자 겐즈켄 (Isa Genzken)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가는 이자 겐즈켄이다. 독일의 가장 유명한 동시대 예술가 중 한 명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전 부인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던, 약간 운이 나빴던 여성 작가로, 요즘은 오히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저물고 몇년전부터 그녀의 작업이 눈부시게 부각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은 그녀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고, 역시 어마어마한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mans)와의 협업이다. 제목은 <사이언스 픽션/여기서 지금 만족하라 Science Fiction/Hier und jetzt zufrieden sein (2001)>이 되겠다. 벽에 볼프강 틸만스가 찍은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고, 거울로 만든 이자 겐즈켄의 구조물이 사진을 반사하는 형태다. 

사실, 이자 겐즈켄의 전형적인 작업은 허섭 쓰레기 같지만 조형적으로 완성된, 조각도 아닌, 설치미술도 아닌, 오브제의 조합이 특징적인데, 이 미니멀리즘적인 거울 구조물이 그녀의 작업이라는 것이 조금 의아해진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은 그 커다란 스케일 때문에 마치 전장의 폐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파티 후에 남은 쓰레기장의 풍경이다. 널브러진 오브제들의 모습이 어딘가 이자 겐즈켄의 평소 작업 같기도 하다. 거울 구조물은 두 개의 벽으로 되어 있고, 두 벽 사이로 관객들이 들어갈 수 있다. 양쪽에 거울이 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러듯이, 거울상이 서로를 반사하며 무한히 반복된다. 그 안에 서 있으면 무한히 반복되는 폐허에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 과연, 뉴 밀레니엄을 맞이했던 2001년에 이 두 범상치 않은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업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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