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함부르크 반호프를 훌쩍 둘러본 소감이 어떠신지? 처음 보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조금은 벅찼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두 이 시점 유의미한 작업들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들이니 동시대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모쪼록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오늘은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그(Kreuzberg)지역에서 만난 한 여성 예술가를 집중적으로 다루어보려고 한다. 베를린의 탑 텐 갤러리 중 하나인 칼리에 | 게바우어(Calier | gebauer) 갤러리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작가 함경아다.
제작 과정까지 예술이 되기
함경아는 작업의 재료 혹은 제작 과정 자체가 내용을 구성하는 데 능하면서도 결과적인 작품으로서의 물리적인 매력을 잃지 않는, 말하자면 '개념-절충적 프로젝트’형 작가라고 칭하면 어떨까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역사를 조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즈음 미국에서 물질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언어나 생각이 작품이 된다고 믿은 일군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필자의 영웅이기도 한 솔 르윗(Sol LeWitt)은 이 ‘개념미술’이라는 흐름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일련의 벽화 시리즈에서 실제로 작품을 자기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어떻게 제작해야 하는 지 순서대로 적어 보내고, 이 작업 순서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작품이 완성되는 지시문 작업(instruction-based work)을 선보였다. 작가의 숙련된 손기술이나 말초적 감각이 아니라 순전히 생각만으로도 예술 작품은 성립한다는, 역사적으로 혁명적인 성취 중 하나로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개념적’ 성격은 동시대 예술에서 거의 빠질 수 없는 하나의 항목이 되었는데, 함경아의 경우에 있어서 솔 르윗의 예는 무척 적합한 것이,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역시 그녀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정교한 자수 작업들은 작가 보낸 도안을 받아든 북한의 자수 공예가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들이 직접 손으로 작업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고전주의 시기 거장들이 많은 도제들을 두고 워크샵을 꾸려 작업했던 예를 드는 사례도 많이 있지만, 수십명의 어시스턴트들을 데리고 스튜디오를 기업처럼 운영하는 작가들의 경우에 비해서 함경아의 ‘아웃소싱’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집 앞에 떨어진 ‘삐라’를 보고 북한에 자신만의 ‘삐라’를 만들어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부터, 중개인과 접촉해 얼굴도 알지 못하는 북한의 자수 공예가들의 손에 그녀의 작업이 맡겨졌을 때, 그리고 그것이 어렵게 그녀의 손에 돌아오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그녀의 작업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진부하게 말하면 남북한 예술가-공예가의 금지된 교류라고 할 수도 있고, 좀 더 복잡하게 해석하면, 식민기 시기를 거친 한 나라의 예술가가, 서구중심적인 상징들로 도안을 만들고, 이것을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된 다른 반쪽의 공예가들에게 보내고, 그들의 손에서는 공예품으로 만들어졌던 것이, 예술가가 짜놓은 개념적 기획을 거쳐 동시대 예술작품으로 완성된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가진 흥미로운 관념적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유통 과정들이 시사하는 현실과, 이 모든 공정을 작품의 일부로 포괄하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흥미롭지 않은지? ‘서구’를 상징하는 도상의 의미는 ‘샹들리에’에서는 좀 더 흐릿하지만, 제1세계 예술의 고전적인 상징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각각 다른 북한의 공방에 보내 작업하고 한 데 모아 전시했던 이전 작업(<입체적 모나리자> 2015)에서는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함경아의 작업이 순전히 ‘개념적’이 아니라 ‘개념-절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솔 르윗의 벽화가 전시 기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물질의 덧없음(ephemeral)을 강조했던 개념 미술가들의 작업과는 달리, 그녀의 개념적 여정은 시각적인 호소력을 지닌 물질적 완성품으로서 그녀의 손에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그 스케일과 정교함으로 공예적인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것들은 고가에 거래되어도 무색하지 않을 만한 훌륭한 공예품이며, 작가의 기획으로 인해서 이것은 단순히 공예를 넘어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가치들은 작가의 이름으로 수렴한다. 익명의 북한 공예가들은 시대가 바뀌지 않으면 그 이름을 얻을 수 없을, 작가의 개념적 기획의 일부로 봉사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공예가들이 제대로 대가를 받았다는 전제 하에 그렇게 일방적인 판단은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예술은 수많은 이율배반적 가치들이 뒤섞이고 너무나 당연시 되는 것들도 논란 속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장이기 때문에. 일말의 불편함을 느꼈다면 거기서부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이다.
서구의 문화적 상징들을 전유하여 전혀 다른 유통의 장으로 옮겨 놓으려는 작가의 야심이 돋보이는 작업은 역시 1950-60년대 미국의 추상 화가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의 전형적인 대표작들을 자수로 옮겨놓은 <추상적 짜임>이다. 모리스 루이스는 1950년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을 위시해 일어났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에 대한 즉각적 반향으로 나타난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 그룹을 이끌었던 작가 중 하나다. 색면 회화는 화면에서 공간적인 환영을 말끔히 제거하고,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를 반복하며 선명한 색 대비를 사용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대 미술계의 담론을 독점했던 ‘아재’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내세운 ‘회화의 본질적 속성은 평면성’이라는 원칙과 깊은 관련을 맺고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회화적 평면을 최대한 얇고 투명하게 만들려는 시도의 하나로, 루이스 모리스는 밑칠하지 않은 생천에 염료가 번지고 흘러내리는 효과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런 저런 미술사적 사설은 차치하더라도 무척 단순하고 아름다운 작업이며, ‘미국적 추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함경아의 <추상적 짜임>은 물감이 흘러내리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색실로 표현해낸 것이 놀랍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색띠에 각종 뉴스의 파편화된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 뉴스들은 작가가 북한에 자신만의 ‘삐라’를 만들어 보내려고 했던 초기의 아이디어와 상응하는 작업이지만, 어딘가 코미디 같아 보이는 면이 있다. 색면 회화 작가들이 추구했던 회화의 순수성을 얄궂게 뒤엎어버린 괴작이랄까. 사실 자수로 모리스 루이스의 회화를 재현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법한데 여기에 이 문구들이 들어간 데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싶다. 이번 전시의 전반적인 작품들은 공예적 완성도에 천착하고 원래의 개념이나 내용은 좀 희석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그 와중에 이 색띠에 달라붙은 엉성한 글씨의 뉴스 조각들은 작가의 ‘초심’을 붙드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이번 전시를 보면서, 처음에는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정교한 완성도나 미감에 집중하다가 결국은 예술을 흉내내는 잘 만든 공예품으로 전락해버린 모 조각가의 사례를 떠올렸던 것도 사실이다. ‘개념’과 ‘물성’, 또는 ‘내용’과 ‘형식’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과연 작가가 추락하지 않고 모종의 예술적 성취들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