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7회째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세계 미술의 동향을 짐작할 수 있는 예술계의 ‘올림픽’ 격 행사다. 비엔날레는 ‘bi-annual’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2년에 한번씩 열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90년대, 2000년대에 예술의 세계화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함께 각종 도시에서 ‘비엔날레’가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중 가장 역사가 깊고 유명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행사는 아르세날(Arsenal)에서 열리는 본 전시와 함께 86개의 크고 작은 국가관들에서 선보이는 각국 대표 작가들의 전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캐치 프레이즈는 ‘Viva Arte Viva’로 번역하자면 ‘예술 만만세’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술 생태계의 양극화와 주변화로 우울한 비전을 품고 있는 현 예술계의 분위기와는 사뭇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르세날의 본 전시는 7개의 관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 <기쁨과 공포 Joys and Fears>, <공통 Common>, <지구 Earth>, <전통 Traditions>, <디오니소스 Diomysian>. <색채 Colors>, <시간과 무한Time and Infinity>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 기획 측은 이러한 주제를 아울러 본 전시 전반을 엮는 목표가 인본주의(Humanism)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휴머니즘’이라는 단어가 가진 막연함 만큼 전시는 감각적으로는 잘 구성되어 있으나 명확한 논설적 지표는 갖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 소개했던 도쿠멘타가 ‘다큐멘트’라는 이름 만큼 많은 언어적 정보와 맥락적 독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느끼는 피로감이 있는 것에 반해 비엔날레는 텍스트 의존도가 낮고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보다 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관객으로 들끓었던 도쿠멘타와 달리 비엔날레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8명의 여성 작가들을 선정했다. 6명은 본 전시에서, 2명은 국가관에서 선보인 작가들이다. 오늘은 그 중 네 명의 작가를 먼저 살펴보자.
안나 할프린 Anna Halprin
안나 할프린의 <행성의 춤 Planetary Dance>은 집단적 치유를 위한 공동 퍼포먼스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1981년 샌프란시스코 북쪽 마린 카운티(Marin County)의 타말파스 산(Mount Tamalpais)의 등산로에서 7명의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안나 할프린과 그의 남편 로렌스 할프린(Lawrence Halprin)은 이 사건으로 인한 지역 공동체의 충격을 극복하고 상처받은 산을 치유하는 커뮤니티 워크샵을 기획하였다. 한 샤먼이 할프린에게 진정 산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식을 반복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였고, 그는 이후 정기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을 모집해 다같이 자연 속에서 군무를 추는 이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할프린이 암을 진단받음에 따라 그는 HIV/AIDS 환자들, 암환자들, 노인들과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모두 함께 춤을 추며 하나가 되는 경험은 참여자들에게 심리적인 치유의 효과를 주고, 공동체에 대한 정서적인 소속감을 갖게 한다. <행성의 춤>은 이제 37회째를 맞이 하였고 작가는 어느새 97세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100세를 넘긴 후에도, 혹은 세상을 떠나더라도, 언제까지나 이 공동체적 치유의 제의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
마리아 라이 Maria Lai
마리아 라이는 사르디니아(Sardinia)라는 이탈리아의 한 원시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랫동안 사르디니아의 전래 동화에 등장하는 “자나(Jana)”를 작업의 모티프로 삼아 왔는데, 자나는 집단적인 기억과 신화들을 엮고 짜는 작은 요정이라고 한다. 라이는 사르디니아의 토착 문화를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쉽게 사라지고, 유기적이고, 허름한 소재들을 작업에 이용하는 1960-70년대의 이탈리아 미술 운동)와 같은 아방가르드와 결합시켰고, 스스로 “자나”가 되어 머리로는 읽을 수 없는 책들을 신비스럽게 수놓고 있다.
라이에게 글쓰기란 상호적인 관계들의 그물망을 엮는 것과 같은 일이다. 부드러운 천이나 종이 에 겹겹이 재봉틀로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을 새기면서 작가는 스스로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방대한 양의 실로 수놓은 스티치들은 어떻게 보면 미미한 심전도 그래프 같기도 하고, 실험 음악의 악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3년 작고한 작가가 이토록 세상에 들려주고 싶어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리나 바너지 Rina Banerjee
리나 바너지의 재활용 조각이 가진 미학은 종종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정의되곤 한다. 현실 속의 사물들을 취사 선택하지만, 그 조합과 형상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영적인 존재들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태어나 현재는 미국 뉴욕에 살면서 작업하고 있고, 원래 공학을 전공했지만 예일대학교에서 순수 예술로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절충적 교육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현재 이주의 문제와 혼종적 정체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일상적 사물들로 조각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숱하게 많았지만 바너지의 조각은 그 신화적 레퍼런스 때문인지 어딘가 신비롭고, 징그럽고, 아름답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수집’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하는데, 뉴욕의 거리를 누비면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버려진 물건을 줍거나 상품을 사고, 그러한 수집 과정에서 상상력이 발휘되고 창조적인 과정이 시작된다고 한다. 수집된 사물들로 완성된 조각은 그 동세와 색감 때문인지 사물에 묻어 있는 현실의 조각들 때문인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영적 존재들을 사유하고 구현해내는 작업 과정에서 그가 사물에 일종의 ‘신성’이나 ‘영성’을 불어넣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주디스 스캇 Judith Scott
주디스 스캇은 2005년에 작고한, 다운 증후군으로 고통 받던 장애 여성이다. 그는 25년간 감금되어 살다가 1987년 처음으로 오클랜드의 창조적 성장 예술센터(Creative Growth Art Center in Oakland)의 집단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이 워크샵은 한 예술 치료사와 심리학자가 정신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의료적인 구실로 감금하는 제도에 대한 반응으로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캇은 색채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고, 실비아 세벤티(Syliva Seventy)라는 예술가에게 섬유 예술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 18년 동안 스캇은 다섯시간씩, 일주일에 5일을 워크샵에 나와서 작업했으며, 천, 실, 모, 등 다양한 섬유 재료들을 이용해 작은 조각을 만들었다.
섬유로 꽁꽁 싸여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기 힘든 이 사물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하나의 페티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형태들은 갇혀 있지만 그것들 둘러싼 섬유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상의 조화를 보여준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감춰야만 했던, 하지만 내면에는 강한 창조적 의지를 갖고 있었을 작가의 작은 분신들 앞에서 왠지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