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면서도 포지션 이름을 알고 있고 기본적인 동작들을 곧잘 따라하는 친구가 있었다. 알고보니 어머니가 한국무용을 전공하셨다고 한다. 그녀는 “외할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어디 기생년들이나 추는 춤을 배우려고 하냐'고 야단을 쳐서 중간에 꿈을 포기하셨대요”라고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그림을 그린다면 환쟁이가 어쩌고, 바이올린을 배운다면 딴따라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는 노인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음악이나 무용이나 그림이나, 오늘날의 예술은 역사상 가장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발레의 역사
발레의 기원이 된 춤은 15세기 이탈리아의 궁정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디치 가문의 딸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의 왕 헨리 2세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에도 발레가 전해진다. 그 시절의 발레는 오늘날의 관객들이 생각하는 발레와 큰 차이가 있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림들을 바탕으로 짐작해 보면 당시의 발레는 궁에 드나드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일종의 사교 댄스였던 것 같다. 오늘날과 같이 근육만을 남기고 깡마른 몸에 포인트 슈즈를 신고 32바퀴씩 회전하는 무용수는 어느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는 이른바 발레의 '쇠퇴기’로 불린다. 이전까지 발레의 종주국으로 여겨졌던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나 예술을 즐길 팔자가 아니었던 것도 원인 중 하나이고, 한동안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낭만발레가 몽환적인 신비로움만을 추구하다 본질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이때를 기회로 러시아(서양화를 꿈꾸고 있었다)에서 엄격한 형식미를 요구하는 고전발레가 탄생하게 된다. 무용수의 뛰어난 기량을 요구하게 되고 치밀한 ‘칼군무’가 등장하며, 체공시간을 늘리기 위해 드레스가 짧아지고 튜튜와 포인트 슈즈도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많은 고전 레퍼토리도 이 때 탄생했다. 발레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많은 글들이 ‘사람들은 발레가 러시아에서 탄생한 줄 알고 있지만, 짜잔! 사실 발레의 고향은 이탈리아랍니다~’라는 일침으로 시작하는데,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포인트 슈즈 신고 가로세로 똑바로 줄 서서 하는 발레는 러시아에서 탄생한 게 맞다.
드가와 발레리나들
에드가 드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발레리나들은 19세기의 프랑스 무대에서 활동하던 무용수들이다. 어쩐지 오늘날의 발레리나들보다 여유로운 체격을 갖고 있고, 의상도 그렇게 죽일 듯이 몸을 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드가의 발레리나들은 행복했을까?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는 발레리나들의 얼굴을 자세히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력이 약했던 탓에(말년에는 조각에만 집중했다) 어쩔 수 없이 이목구비를 뭉갠 것일까? 튜튜와 리본을 그렇게 풍성하고 아름답게 잘 그려놓은 것을 보면 눈이 어두웠던 것을 알리바이로 삼기에는 조금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혹시 그의 여성 혐오 탓일까? 막장 드라마 같은 유년 시절을 보내는 바람에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을 증오하게 되었고, 그래서 ‘여자 얼굴이야 아무려면 어때’ 하고 발레리나들의 눈코입을 일부러 못생기게 그렸다는 설도 유력하다. 일견 수긍할 만한 이야기이나, 하이퍼리얼리즘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인류애가 넘쳐서 사람의 모공과 각질을 그리고 앉은 것은 아닐 텐데. 하여간 죽은 그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한 속시원한 답을 찾기는 요원할 것 같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들의 삶을 유추하는 데 중요한 힌트가 되는 요소는 그녀들의 대충 그려진 눈코입 외에도 다행히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뜬금없이 등장하는(그러나 반드시 등장한다) 검은 옷의 아저씨들이다. 일부는 발레 선생이나, 일부는 딱히 뭘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닌 채로 화폭의 아무 곳에 등장해 있다. 점잖은 백과사전들은 그들을 ‘후원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대의 날개로 찾아와 자신이 후원할 유망주들을 캐스팅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을 성매수자로 지목한다. 당시의 발레 선생은 포주를 겸업한 셈이다.
오늘날의 여성 무용수들이라고 해서 드가의 그림 속 여성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지위란 19세기나 21세기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은 제외하고). 온라인에서, 특히 한국에서 “발레하는 여자”라는 키워드는 끔찍하게 오염되어 있다. 레오타드와 타이즈 차림의 여성들을 관음하고, 고관절을 포함한 신체 관절과 근육의 가동 범위가 넓은 사실을 용케도 섹스와 연관시키는 아저씨들 때문이다. 심지어 발레단 소속의 정상급 단원들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얼평’을 당한다. 19세기의 에드가 드가를 만나, 당신네들은 어쩌면 200년이 넘도록 이 모양이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죽일 놈의 발레에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 희망의 씨앗을 저 멀리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윤혜진이 몸담았던 이 발레단은 현대적으로 날카롭게 재해석한 레퍼토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지 않으며 금박을 묻힌 맨발로 춤추며, 그들은 <백조의 호수>는 악마 로트바르트 역을 발레리나에게 맡긴다. 윤혜진의 꿈이 바로 이 로트바르트 역을 해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발레리나 윤혜진과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