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게임: 아무 약이나 먹지 마세요

생각하다독립

서바이벌 게임: 아무 약이나 먹지 마세요

진영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먹는 약이나 화장품 같은 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효능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에게 효과가 좋았더라도 나에게는 부작용만 나타낼 수 있고, 별 효능이 없으면 사용을 그만두거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맞다. 조언이나 충고도 이와 마찬가지다. 취할 것은 취하고 피할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난 조언을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약이나 화장품의 경우만큼 쉽게 처리가 안 됐다. 모든 조언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아닌 조언에 내 상황이나 마음을 갖다 맞추려고 하는 때가 자주 있었다. '당장은 효과가 없지만 장복하면 분명히 몸에 좋을 거야' 하면서.

나는 지금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고, 한때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던 우울이나 불안 같은 것도 대부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속의 일부분은 여전히 꽤 험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가끔 '버튼'이 눌리면 이런 것들을 다 쏟아내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내 부모가 나에게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를, 얼마나 치사하게 굴었는지를, 34년 인생 내도록 닥쳤던 가장 큰 위험도 부모였고 가장 큰 공포도 부모였다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물론 운동센터 탈의실에서 만난 사람을 붙들고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엄마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즉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나 생계를 유지하는 데, 혹은 교우관계를 적당히 유지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노출을 잘 조절해왔다는 거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균형잡힌 삶인 줄 알았다.

적당히 잘 사는 척

그런데 얼마 전, 트위터에서 어떤 글을 읽고 크게 멈칫한 채 회복이 안 되고 있어서 문제다. '실상은 험하더라도 겉으로는 멀쩡한 척해야, 적당히 잘 사는 척을 해야 남들에게 만만한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부모가 아직 건강하며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돈도 좀 있고 인맥도 있고, 따라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달려올 사람들이 있다는 걸 주변에 팍팍 티 내는 게 좋다'고, 그러지 않으면 외로운 인간(특히 여성, 또 주로 여성)의 취약함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달라붙어 인생이 꼬인다는 취지의 조언이었다. '안 멀쩡한 여자만 쫓아다니는 습벽을 가진 남자들'에 관한 간증도 이어졌다. 그 간증들은 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주로 내 상황이 멀쩡하지 않음을 일부러 널리 알려, 부모와의 관계가 멀쩡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을 쳐내는 방식을 활용했고, 결국 트위터에서 본 조언의 정반대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인지 뭔지, 내 20대는 말 그대로 호구-환장-대축제였다. 그때 그 사람도, 그 전의 그 사람도 나의 취약점을 노렸다. '쟤는 가정이 원만하질 못하니까 내 배경을 이것저것 따질 배짱이 없겠지?' 하면서 본인의 신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숨긴 뒤, 결국 내가 관련 정보를 모두 알아내자 '너 같은 애들은 그런 거 안 따질 줄 알았는데 정말 실망했다'며 울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안 따지는 데도 정도가 있지, 거짓말을 해놓고는 그게 들키자 대성통곡을 하는 성인이라니 어지간히 아쉬운 구석이 있었더라도 받아주기 힘든 타입의 사람이었다. 

나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던 모든 갈등을 내 탓으로, 궁극적으로 내 부모 탓으로 돌리던 사람도 있었다. 자기가 머리 안 감은 것을 지적당해도 내 부모 탓, 술 마시는 것을 나무라도 역시 내 부모 탓을 했다. 즉 나는 그런 부모 밑에서 그런 대접 받고 자란 탓에 성격이 이렇게 되어 버려 모든 사안을 '문제'로 본다는 식이었다. '내가 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너네 부모에게 숙이고 들어가야 하냐? 난 너보다 더 잘난 여자와도 결혼할 뻔한 적이 있는 남자다'라던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애초에 밝고 찬란한 나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 바 아니고, 반드시 쓰러져 좌절하는 나를 위로해주겠다며 접근했었다는 점이다. 나는 또 그 위로를 덥석 물었다. 끔찍한 나날들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트위터에서 본 저 조언이 맞는 말일까? 내 생각이 짧았던 걸까? 부모에게 맞아 울던 어린 나를 숨기고, 그저 성인이 되어 독립해 따로 나와 사는 양 굴면서 가끔 내 가족을 소개할 일이 생기면 그 현장만을 단편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식으로 영악하게 굴었어야 했을까? 그랬더라면 지금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꿈에도 부러운 볕 잘 드는 24평형 아파트 거실에 회색 소파와 초록색 관엽식물을 놓고 잘 생긴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저는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앱니다

사실 나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가상의 그 삶이 지금의 삶보다 더 풍요로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현재의 내 선택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 답이다. 게다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상의 그 삶에라고 고난이 없겠는가. 원래 가지 않은 길이 환하다. 남들이 나를 호구로 보건 뭘로 보건, 나는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저는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애'라고 어딜 가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정신은 그쪽이 체질이다. 다만 내가 천지간에 끈 없는 사람인 점을 만만하게 보아 접근하는 사람을 훑어낼 능력을 갖추면 그만이다. '적당히 잘 사는 척'에 필요한 에너지 정도면 '날 호구로 보는 사람 훑어낼 능력'도 갖출 수 있다. 온 세상 천지가 끝내 나를 끈 없는 호구로만 본다면 차라리 혼자인 것이 왜 나쁜가. 그리고 세상 변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편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자위하고 꽁꽁 매듭을 지어 놓아도 잠결에 두세 번 뒤척이면 결심 따위 금방 스르르 풀린다. 그리고 또 번민, 번민. 역시 멀쩡한 척 하고 살았어야 했나!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요즘은 심지어 복권을 사는 데 재미를 들이는 데 이르렀다. 1등에 당첨되면 이 번민이 혹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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