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왜? 7. 죽거나 미치는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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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는 왜? 7. 죽거나 미치는 지젤

진영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공연예매사이트 I사가 반기별로 분석해 내놓는 소비 데이터에 의하면, 공연 티켓을 구매하는 고객의 약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인터넷 서점 Y사 역시 성별 통계 실태를 반기별로 발표하는데, 40대까지는 전 연령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구매자 비중이 높은 경향이 3년 연속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러한 문화 향유는 너무나 쉽게 '후려치기'의 대상이 된다. '여자들이 예술과 문학을 알아? 남자 아이돌 나오는 뮤지컬 보려고 그러는 거 아냐?' '애들 문제집 사느라고 인터넷 서점 가겠지, 여자들이 무슨 책을 읽어?' 하는 식이다.

후려치기

발레의 경우 이 '후려치기'는 조금 더 노골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 오래전 읽어 제목도 작가도 기억나지 않는 한 단편소설에서 남자주인공은 '여자들이 클래식 발레에 대해서 뭘 알아. 남자 무용수 불룩한 부분 보러 가는 거 아냐?'라는 대사를 한다. 당시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남자 고간을 보고 싶으면 좀더 효율적인 다른 선택을 하지, 그거 보자고 하필 발레를 택할까...' 하고 비웃었다. 지금도 비웃고 있다.

왕자라고 나오는 놈

그렇다면 실제로 발레 팬들은 고전 레퍼토리에 등장하는 '왕자님'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발레리노들에 대해서라면 각자의 다양한 취향을 피력할 수 있겠지만 - 나는 빌런 역할로 나올 때의 이재우(국립발레단)가 그렇게 좋더라 - , 캐릭터에 국한한다면 대부분의 여성 팬들은 '왕자라고 나오는 놈들 중 제대로 된 놈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왕자는 여자친구 얼굴을 못 알아보며, <라 바야데르>의 전사 솔로르는 브라만과 국왕이 니키아를 놓고 죽이니 살리니 하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니키아가 죽고 나서 약물로 도피하기나 한다. <발레 심청>의 경우 남자 주인공이 심봉사니까 달리 보탤 말이 없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올해 국내 두 발레단의 레퍼토리에 모두 포함된 <지젤>의 남자 주인공인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는 개중 그 치사함이 도를 넘은 모습을 보여준다. 지젤의 줄거리를 요약한 많은 콘텐츠들은 알브레히트를 '신분을 속이고 평민과 사랑에 빠진 귀족 남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알브레히트에게는 약혼녀가 있었다. 이를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은 지젤은 춤을 추다 쓰러져 죽지만, 알브레히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막에서 괜히 자기연민에 쩔어서는 남몰래 지젤의 무덤에 찾아가 울 뿐이다. 왜 '남몰래' 찾아갔는가 하면 역시 약혼녀에게 들킬까봐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2018년을 살아가는 여성이 이런 남성 캐릭터에게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제물이 되는 여성

고통받는 여성과 자책하는 남성의 페어링에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을 죽게 함으로써 자기 징벌의 욕구를 대리 해소하는 설정은 문학 내에서(특히 남성 작가의 작품 속에서)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흔히 발견되는 장치이다. 특히 남녀가 멀쩡히 사랑을 이룬 뒤에, 종교적 금욕주의를 배신하고 성적인 욕망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윤리적 징벌로써의 죽음은 오직 여성만을 제물로 삼는다. 작품 속 남성들은 얼마나 무능하면, 여성을 방패로 삼지 않고는 자학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인가.

<지젤>을 재해석하려는 현대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 출신의 안무가 마크 에츠가 재해석한 지젤은 알브레히트에게 배신당한 것을 알고는 죽음에 이르는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책임질 일을 한 쪽은 남성인데 왜 매번 여성이 죽거나 미쳐야 하는가. 현대의 여성 안무가에게 재해석의 기회를 준다면, 알브레히트는 지젤과 그녀의 친구들에 의해 법정에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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