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밀레니얼의 직장일기 4. 이 죽일 놈의 밀레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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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밀레니얼의 직장일기 4. 이 죽일 놈의 밀레니얼

은순

이 연재 제목에 있듯 저는 밀레니얼이에요. 정확한 나이를 밝힐 수는 없지만 밀레니얼의 중간에서 끝자락을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지금처럼 밀레니얼에 열광할 때는 아니었어요. 사실 언제든 세대론은 있잖아요. ‘신인류’라는 말도 그렇고 ‘88만 원 세대’도 있었고 ‘X세대’도 있었고요. 게다가 한두 명(개)을 일반화시키며 집단 나누기를 좋아하는 나라기도 하고요. 여자라고, 남자라고, 비서울 출신이라고, 여대라고, 남녀공학이라고, 나이가 많다고, 어리다고... 뭐 정말 끝도 없죠. 밀레니얼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발단이 <90년생이 온다>(웨일북, 2018)가 될지는 몰랐어요. 사실 우연한 계기로 <90년생이 온다>를 미리 읽어봤거든요. 그때 제가 그걸 대략 읽고 느낀 건 ‘별걸 다 책으로 만드는군’이었어요. 제 입장에서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가 가득했거든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랑하면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진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며 이별하면 한 세계가 파괴된 것처럼 고통스럽고 괴롭다.. 같은 당연한 얘기들이랑 똑같았어요. 이런 걸 이렇게 정성스럽게 책으로까지 만들어야 한다니! 이건 환경 파괴야! 지구를 막 쓰는 행위라고! 딱 이렇게 느꼈어요.

저는 저 책이 대성공을 거두고 나서 제가 단단히 착각하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왜 이렇게까지 회사에서 지난했던 건지, 왜 매번 높고 단단한 벽에 둘러싸인 것 같았는지 비로소 알게 된 거죠. 이미 회사 생활을 하며 그 구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밀레니얼의 사고방식이 당황스러우며 이해가 안 됐던 거예요. 제가 회사 윗사람들에게 느꼈던 걸 어쩌면 그들도 똑같이 느꼈겠죠. 물론 그분들은 이해가 안 되니 이해를 하려 노력하는 대신 자신들과 다른 아이를 짓밟고 무시하며 비꼬는 걸로 대처했지만요.

눈 앞의 밀레니얼이나 보세요

일러스트 이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제가 있던 업계는 다른 업계보다 트렌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곳이었어요. 밀레니얼, Z세대, 포노 사피엔스, 90년대생 등등 제 나이대를 명명하는 단어는 숱하게 쏟아졌고 업계는 열광적으로 반응했죠. 물론 이건 업계를 막론하고 일어난 현상인 것 같긴 해요. 주 소비층이 될 그들을 잡아야 하는 기업들은 밀레니얼을 이해해야만 했을 테니까요. 각종 강연이 여기저기서 쏟아졌고 (특히) 어른들은 자의든 타의든 그런 강연을 듣고 책을 읽었죠. 정작 눈 앞에 밀레니얼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강연을 듣고 기사와 책을 읽으면 뭐 합니까. 그건 말 그대로 글자 속에 살아 있는 어떤 특정한 타입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강연자들은 늘 ‘밀레니얼이 대략 이렇다는 거지 모든 개개인이 꼭 이렇다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지만, 모든 일반화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맥락과 성격이 무시되기 일쑤잖아요. 여기저기서 정보를 갖고 온 어른들은 회사에 있는 밀레니얼, 그러니까 그들 기준에서 젊은 사람들을 그 틀에 맞춰 보더라고요. 정말 단순하게는 좋아하는 음식(주로 패스트푸드)과 먹는 방식(주로 혼밥)부터 선호하는 운동(주로 요가와 필라테스와 러닝),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크다(인간 다 그렇지 않나요?), 기부를 잘한다(여기서 기부는 크라우드 펀딩인데 정말 크라우드 펀딩을 기부로 생각해도 되나요?) 등등이었죠.

밀레니얼이란 이유로

일러스트 이민 

한번은 거의 제 또래인 선배와 점심을 먹으러 나가다 본부장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는데 저희랑 같이 걷더라고요?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고 침묵하며 걸어가는데 역시 본부장은 알아서 막 떠들더라고요. 이제 점심시간에 운동을 좀 하려고 하는데 무슨 운동을 할까 생각해보다 요가를 하기로 했다고요. 저랑 선배가 할 말은 “아, 네, 그러시군요” 정도였죠. 물론 그분은 그래도 말을 했죠. “저기 역 앞에 요가원이 하나 있더라고. 오늘 거기 한번 둘러보러 가려고~” “아, 네~” 그럼 이제 그냥 자기 갈 길을 가면 됐는데 또 말을 하더라고요. “근데 자기들은 요가 안 해?” 일단 그때 선배는 일이 많아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있었고 저는 요가를 할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둘 다 “네, 안 해요”라고 답했더니 본부장이 말하더라고요. “왜 젊은 사람들이 요가도 안 해?” 저랑 선배는 사라지는 본부장의 뒷모습을 보며 “ㅋ”를 뱉었어요. 저와 선배가 “왜 늙은 사람이 요가를 하세요?”라고 물어볼 입이 있는 사람이란 걸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제 또래 지인은 밀레니얼이란 이유로 피자를 먹으러 간 적도 있었죠. 지인 회사 상무가 어디서 밀레니얼에 관련된 강연을 들었는데 거기서 피자나 햄버거 같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 이런 얘기가 나왔던 모양이더라고요. 밀레니얼과 친해져야겠다는(..그런 마음은 제발 접어줘요) 생각을 한 상무가 신입이 많은 지인 팀에 와서는 말한 거예요. “신입들은 보통 피자 좋아한다며? 저녁에 피자 먹으러 가자!” 언니들도 아시잖아요. 상무와 함께 먹는 소고기보다 혼자 먹는 라면이 더 맛있지 않겠어요? 뭘 먹느냐보다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상사랑 양고기 먹을래, 공효진 언니랑 김밥 먹을래, 할 때 전자를 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당연히 밀레니얼의 특성이 있을 수 있어요. 저만 해도 많은 주변 사람에게 ‘이야, 역시 너도 밀레니얼이구나’라는 말을 자주 들으니까요. 불공정한 걸 싫어한다거나 업무 시간이 아니면 회사 사람에게 인사를 혹은 업무를 안 한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그런 점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너무 당연히 개인차가 큰 거 아니겠어요? 밀레니얼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엔 집단이 커도 너무 크니까요. “밀레니얼은 정말 그래?” “젊은 사람들은 유튜브 다 한다던데 왜 안 해?” “젊은 사람인데 TV도 봐?”(근데 이런 질문들 정말 궁금한가요? 그냥 심심한 거 아닌가요?) 같은 말을 하며 사원들을 괴롭힐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밀레니얼이 어떤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눈 앞에 있는 직원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합리적이고 정당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체계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죠.

아, 그런데 이런 걸 말해 정말 뭐 하겠어요. 눈 앞에 있는 직원한테는 관심도 없이 오로지 밀레니얼한테만 관심을 갖고 피자나 사주려는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소 귀에 경을 읽어주는 게 더 빠를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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