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심과 선긋기의 미덕

생각하다여성의 노동

경계심과 선긋기의 미덕

염문경

배우로 ‘데뷔’한지 4년 째. 

연극영화과 졸업생도 아니요 아는 거라곤 오티알과 필름메이커스(대표적인 연기자 구인 정보 사이트)에 엉성한 프로필을 뿌리는 것뿐이었던 당시, 나는 ‘그저 뽑아만 주신다면 어디든’ 갔었다. 서류만 붙으면 아무리 가망 없는 오디션이라도 서너 시간씩 기다려 봤고, 정말 이상한 아저씨가 심히 어이없는 행동을 시키더라도 미소를 잃지 않고 성심성의껏 응했다. 

그러기를 4년. 그저 과거의 추억이었더라면 좋겠지만 사실, 지금도 상황은 거의 마찬가지다. 어느 선배님이 해주셨던 말마따나 ‘배우는 캐스팅이 전부’인데다가,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도 훨씬 더 절박하고 아슬아슬한 나이의 무명 여자 배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그때보다는 조금 더 상대를 골라가며 작업한다는 것. 내 주제에 상대를 고르다니, 세상에! 어떤 꼰대가 보기엔 기도 안 찰 수 있겠으나 사실이다. 그걸 오만이라고 부를 사람도, 눈곱만한 요령이라고 부를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그건 생존과 직결된 최소한의 경계심이다.

얼마 전에 한 캐스팅 관련 업자를 성희롱으로 고소했으나 실패한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나의 허접한 페북치고는 이례적인 '좋아요'를 기록했다. 신기했던 건, 남성 지인들은 대부분 ‘고생했다, 안타깝다’는 반응이었던 반면, 여성 지인들 중 일부는 댓글 대신 개인적인 연락이 오곤 했다는 거다. ‘그거 봤다’ ‘한 번 만나자’ ‘할 얘기가 많아’- J언니를 오랜만에 만나 감자탕을 먹은 것도 사실, 그 글이 계기였다.

“많이 좋아졌어, 네가 알려준 데는 굳이 안 갔어.” 

고소 진행하면서 알게 돼 소개해 준 상담센터 얘기였다. “그런데 좀 싫은 건, 요새 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 사람을 처음부터 너무 의심하게 돼. 혹시 저 사람도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 이야기하는 언니 접시에 고깃덩어리가 고스란히 말라가고 있었다.

내가 막 고소 진행을 시작하던 올해 초,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나는 ‘미친 사기꾼 새끼, 인실좆을 보여주겠어’ 하며 깔깔 떠드는 걸로 상쇄하고 다녔다. 내 이야기를 듣던 J언니는 당시 한 중소업체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피골이 상접해 가고 있었다. 이유는 열받도록 흔했다. 폭언, 정신적 학대, 일상적인 성희롱. 

“내가 고소해 봤자 그놈 벌금 오백 물고 끝인데 뭐. 아무것도 아니야 걔한텐.” 

그러면서도 언니는 내 고소 과정을 쭉 궁금해 했었다. 언니는 결국 퇴사했다. 혹시나 싶어 녹음해뒀다는 사장의 개소리 녹음파일만이 남아있다고 했다. 써먹지도 못했고 듣기도 싫은데 지우지도 못하는 녹음파일을 부여잡고, 언니는 자기 성격이 이상해진 게 아닐지 검열하며 부당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글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봤을 때 그런 의심병은 오히려 좋은 거야. 경험치를 쌓아서 스킬을 습득했다고 생각해 버려.” 감자탕을 양껏 먹은 후, 나는 위로랍시고 강연을 늘어놨다. “나는 내가 어린 여자 배우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애들 만나서 얘기해보니 어디든 다 똑같더라. 을 중의 을이니까 웃고, 버티고, 맞춰서, 아무리 구린 인간하고도 일을 만들어내고 작업 성사시키려고 노력하지. 근데 결론은, 그렇게 구린 인간한테 내가 맞춰서 얻어낸 인연은 결국 끝까지 구리더라는 거야. 내 취향에 안 맞는 인간이잖아. 작업을 한들 그 작업이 내 취향에 맞겠어? 결국 끝까지 맞춰야 되는 사람은 나뿐이더라구. 최악의 경우엔 내 이름 걸기 창피한 결과물이 나와 다 지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말하자면 이런 얘기였다.

상업 입봉한 영화감독을 만난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어느 판이 안 그렇겠냐마는 영화판 역시 톱배우 아닌 다음에야 사적 인맥이 필수라는 풍토가 꽤 만연하다. 그 중에서도 ‘인맥이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이다’ 주의였던 한 남자 선배가, 하루는 같은 동네 후배인 나를 ‘도와주고자’ 자신이 친하게 지내는 영화감독과 셋이 함께 볼링을 치자고 제안했다. 아, 지겨운 선택의 순간이었다. 내향성 인간인 나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절대 가지 않을 ‘친목의 자리’. 그것이 술자리라면 대개 어떻게든 거절하는 편이었으나 볼링이라니, 게다가 당연히 갈 거라 여기고 있는 저 선배의 ‘고맙다는 말은 넣어둬’ 하는 눈빛... 그래, 스포티한 면모를 보이며 좋은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도, 한 번쯤 나쁘지 않겠지! 인맥 제로의 무명 여배우는 그렇게, 두 남자와 볼링을 치러 가는 것이었다.

술은 먹지 않았다. 그러나 볼링을 친 뒤 우리는 카페에 갔고, 의미라곤 없는 수다가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동네라는 이유로 막차 카드도 안 먹혔다. 퍽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기왕 좋은 ‘지인’이 되기 위해 만난 거, 인상 찌푸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똑똑한 동네 긍정 소녀가 되어 감독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이후로, 그는 대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나 내 사투리에 대해 묻고 싶을 때, 심지어 영화가 보고 싶을 때까지 연락하기 시작했다. 스케줄 핑계도 한두 번이요, 술자리도 아니고 데이트도 아니니 정색하고 거절하기도 애매했지만, 한 번 커피를 마시면 재미없는 대화 끝에 결국 자정을 훌쩍 넘겨야 했다.

처음 보는 누군가와 볼링을 치는 것 자체는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만약 그 사람과 잘 맞아 친구가 된다면 더 좋고, 그 인연이 발전해 작업까지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현실은 주로 시궁창이다. 

감독을 만날 때 나쁜 인상을 주고 싶은 배우는 없다. 캐스팅에선 종종 연기력보다도 더 큰 비중으로 그 인간 자체의 느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배우의 이미지는 연기를 보여줄 때 뿐만 아니라 오디션 전후의 인사와 잡담, 혹은 일상의 사적인 순간에도 똑같이 카운트된다. 그래서 소위 ‘건전한 인맥’을 쌓아보고자 시작되는 친목의 자리는, 내가 그 ‘좋은 인상’을 유지하려고 맞추고 애쓰는 순간 결국 흔하디 흔한 갑질의 테이블로 전락해 버린다. 만날수록 별로라 한들, “내가 왜 소중한 여가 시간에 너랑 커피를 마시나요?”하고 되물을 수 있는 타이밍은 오지 않는다. 애초에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인연이라면, 이제 와서 ‘싸가지 없이’ 굴어 ‘나쁜 인상’을 남길 순 없는 게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력이 없는 나는 두어 번의 만남 끝에 금세 ‘선을 긋기’ 시작했다. 몇 번의 단호한 시도 끝에, 어느 밤의 ‘싸가지 없는’ 사무적 답장을 끝으로 그 감독과의 인연은 끝나게 되었다. (싸가지를 유지한 예의바른 답장으로는 눈치 없는 상대의 연락을 끝낼 수 없다는 거, 아시리라 믿는다.) 

J언니는 고기를 깨작깨작 씹으며 내 얘기를 유심히 들었다. 요점은 그거였다. “만약 그 감독이 다음 작품 찍으려다 오디션 목록에서 날 본다면, ‘어 이 싸가지없는 애!’ 하겠지. 나라도 안 뽑아, 짜증나잖아? 근데 만약에 내가 처음부터 그런 만남 없이 그냥 운 좋게 그 오디션을 봤어, 그랬더라면, 뭐가 어찌됐든 간에 일단 제로에서 실력으로 평가받았을 거 아냐.

감자탕 고기 빨인지, 방언처럼 말이 술술 터지기 시작했다. 이전의 누구에게도 이런 소릴 인생 꿀팁인 양 늘어놓은 적 없었다. 진짜 이래도 된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날은 약간 달랐다. 종편에 출연한 학원 강사마냥 기분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4년간 쌓인 분노와 혼란이 정리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실력은 기본이지만, 인맥도 너무 중요해’ 
‘술자리는 솔직히 필요해’
‘사람 일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 

학연도 지연도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사회초년생이자 어린 여자 배우로 4년을 보내며, 그 많은 조언과 선택들은 고민스러운 만큼 상처가 됐다. 하지만 식은 감자탕을 앞에 두고서, 난 내가 4년 전보단 진화했으며, 그런 스스로를 비로소 충분히 긍정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된다. 싫은 새끼는 안 만나도 된다. 경계하고, 선을 그어도 된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내가 살아남는다.

사실 너무 당연한 얘기다. 

‘바보같이 이제 알았냐’고 한다면 좀 억울하지만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고소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상담센터에서 차지게 배운 것 중 하나가, 그게 내 탓은 아니라는 거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배우는 특히 ‘예술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증명할 것을 강요받는다. 어리고 연고가 없을수록 그 기준은 더 가혹해진다. 나는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연기해?’라는 질문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받아야 했고, 그게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때문에 가혹한 극단에서 모든 여자 배우들이 떠나는 동안 혼자 남아 학대에 가까운 생활을 견뎌보기도 했고, 내 먹물끼를 감추기 위해 바보스러운 척 헌신도 해 봤다. 아무것도 의지할 게 없는 절박한 누군가에게 그건 유일한 노력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다만 거기서 상처받는 건 그 자신의 탓만이 아니다. ‘그래야만 한다’고 교훈처럼 가르치는 누군가, ‘참는 것이 열정이라’고 호도하는 누군가, ‘실제 그래야만 뭐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엉성한 시스템 탓이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무지하게 싫어하는 내가 맘 속으로 ‘기운 내자’ 읊조리며 볼링을 치러 갔던 이유는, 실제로 사적 인맥이 맺어주는 캐스팅이 공개 오디션보다 훨씬 많다는 걸 너무나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스킬은 쌓여간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솔직하게 의심하고 온화하게 단호한 선을 긋는다. 쉽게는 페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났을 때 먼저 페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작업자는, 대부분 작업에 들어가서까지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아 결국 사람을 치졸하게 만든다. 그걸 아니까 이젠 첫 미팅이 끝날 즈음, 반드시 물어보는 거다. “페이는...?” 아직도 자리 앉자마자 당당하게 그것부터 묻진 못하겠더라만! 그나마가 나의 발전이다. 페이부터 묻는다고 해서 열정이 없는 배우라고 판단하는 작업자라면, 딱 그만큼의 값어치로 당신을 굴리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흔히 배우가 영악하고 상대를 잘 속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와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을 익히는 만큼 반대로 순간순간에 가장 ‘솔직’해야 하는 것도 배우다. 일상에서 스스로도 모를 정도로 자기 자신을 너무 속이는 사람은 진짜 연기해야 할 때 그 외피를 벗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배우의 일반적인 트레이닝 중 하나는 ‘매 순간에 진실하게 반응하는 연습’이다. 

하지만 그런 배우로서의 일을 위해 누군가를 대면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몇 겹의 방어와 계산 속에 자동적으로 놓이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나는 종종 딜레마에 빠진다. 상대방은 보통 진솔하고 매력적인 내 모습을 보길 원하고, 나 또한 꾸미지 않은 나를 내보이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J언니의 말처럼 ‘저 사람도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경계심을 늦추지 못한 채 호의를 가장한다. 매 순간 진실하게 반응하느라 저 연출님이 치는 섹드립에 ‘아재요 그거 성희롱이야’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아, 하긴 적당히 그래버리면서도 매력을 주는 배우들이 있긴 하다! 그걸 업계에서 주로 ‘똘끼’라 부르며 칭송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먹물이 낀 인간이라 그런지, 그게 잘 안 된다. 부당한 일엔 착실하게 상처받고, 천천히 당황한 뒤 복수하거나 물러서고 만다. 이렇게 평범한 내가 기댈 생존법이란 결국- 의심뿐이다. 눈앞의 기회를 놓칠 것만 같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내 직감을 믿는 것. 그 직감은 대체로 맞더라는 4년치의 경험과 통계를 믿는 거다. 그렇게 견디며 기다려본다. 몇 년 더 진화하면, 또 다른 고레벨의 스킬을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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