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수 연대기: 3.그 새끼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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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수 연대기: 3.그 새끼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염문경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을지 모르는 사회초년생, 특히 여자 배우에게. 

얼굴에 사짜라고 쓰인 듯한 그 인간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이유 없이 당신에게 관심을 쏟는다. 물론 수천 장의 프로필 중 당신이 눈에 띄어서일 수도 있지만, 진짜 수천 장의 프로필로 바삐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좀 눈에 띈다고 해서 일일이 조언하고 수다 떨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미팅이 필요하다면 정확하게 연락해서 효율적으로 만나면 그만이다. 

둘째. 오디션에서 당신을 후려친다.“너 솔직히 예뻐? 아니 물론 예쁘지, 근데 연예인처럼 예쁘냐고. 아니거든.” 그럼 어쩐지 스스로가 ‘연예인처럼 예쁘지 못해 송구스러운’ 마음에 쪼그라들고 말지만, 그들은 그 위축된 마음을 쉽게 휘두르려는 것뿐이다. 진짜 업계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못생기고 재능 없다 생각한다 해도 그걸 굳이 말하는 무익한 짓을 하지 않는다. 비슷한 말로 “너 살 더 빼야 돼” “넌 스타일이 촌스러워” “넌 인상이 너무 세” 등등의 레퍼토리가 있겠다. 결국 당신이 어떻게 생겼어도 후려칠 생각이니 심려치 말길.

셋째. 그렇지만 넌 매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건 너무 쉽다. 그렇게 내 매력에 반했다면 후려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뻔한 조언을 대단한 선심쓰듯 늘어놓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들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다섯째. 오디션 과정이 쓸데없이 길고 지난하다. 역시 효율성 측면에서 말이 안 된다. 저녁까지 시간을 끌어 술 먹으러 나가자고 하려는 의도거나, 오디션 과정을 투자자 등에게 공개하고 언론에 뿌리며 돈을 모으려는 심산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고소한 인간은 저 특징들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말이 너무 많아 신뢰도가 높지 않았다. 허름한 사무실에 빼곡한 담배연기, 그리고 스스로를 꼬박꼬박 오빠라고 칭하는 그 ‘캐스팅 감독’을 만나자 불신은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정해진 기준대로 1분만에 영상 찍고 끝나는 일반적인 광고 미팅과 달리, 그는 ‘뻔한 조언을 선심쓰듯’ 한 시간 동안 늘어놓았다. 무용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래도 왔으니 영상은 찍고 가야지 싶어서 버텼다. 영상도 여섯 명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모니터링해가며 찍었다. 자긴 이런 식으로 스터디를 시켜주기도 한다나. 

‘후려치면서 추켜 세워주느라’ 한 시간이 걸렸다. 중간 중간 그가 약을 치는 게 느껴졌다. “이따 SBS oo피디랑 치맥하기로 했는데, 우리 xx이 같이 가야지, 우리 같이 발리 가서 작업하기로 했잖아 그치? 아, 치맥하고 싶은 사람들 같이 가도 좋아.” 너무 뻔하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조용히 웃고만 있던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 xx라는 여자가 바람잡이인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나와 함께 최초로 고소를 제안한 사람이었다. 웃기게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놈이랑은 그날 초면이었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 그녀가 모두의 번호를 따 뒀던 것이 단체 고소의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일정이 있다는 핑계로 치맥을 같이 못해 참 아쉽다고 웃어주며 먼저 영상을 찍고 혼자 빠져나왔다. xx씨에게 전화가 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래서 “이 새끼 사기꾼이에요. 지금 저희 테이프 다 지우라고 경찰 불렀어요. 무릎 꿇고 빌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그냥 ‘역시나’ 싶은 마음뿐이었다. 평범한 찌질인줄 알았더니 정말 사기꾼이었다는 게 좀 신선했다. 

우리가 봤던 브랜드 오디션은 실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브랜드를 사칭해 마치 그 기업에서 CF 외주를 받아 제작하는 행세를 계속해 왔던 거다. 진짜 CF도 그런 식으로 컨택이 오곤 하니 연락받는 배우로서는 구분할 방법이 없다. xx씨의 전화를 끊고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할까? 그토록 한가한 변태인가?

예상컨대 정답은 그 ‘치맥 자리’에 있었다.

내가 가지 않은 그 자리에 앉았던 또 다른 친구는 그 날 신체적 접촉과 강제성을 포함한 성추행을 당했다. PD니 대표니 불러 앉히는 남자들도 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인간들일 게 뻔했는데, 나중에 증인들을 찾아봤더니 그 자리를 겪고도 당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같이 술 마시고,선물로 피부과 상품권도 받았는데 쓰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 뒤로 연락이 안 와서 떨어졌나 보다 했어요.’ 

수소문 과정에서 찾은 또 하나의 증인은 모르는 여자와 함께 그 남자들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그 여자로부터 ‘왜 그래? 접대 처음 해봐?’라는 말을 듣고 울었다고 했다. 문제의 캐스팅 감독에게 설득당해 함께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는 또 하나의 증인은 스터디 장소인 오피스텔로 갔더니 다른 사람들은 없고 자기 혼자뿐이더란다. 그녀는 그곳에 단둘이 갇혀 ‘자기는 섹스 경험이 없다’는 헛소리를 듣거나, ‘내가 돈이 이렇게 많다’며 꺼내드는 통장을 보아줘야 했다.

화가 나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 인간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의 흔적을 최소 2002년부터 찾을 수 있었다. 몇 번 가명도 쓴 것 같았지만 그간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니 황당했다. 누군가 카페에 올린 하소연글에서 그 인간의 이름을 발견했다. 같은 수법, 비슷한 피해자. ‘이 바닥은 원래 이런 거구나 싶어서 무서워져요, 그만 두려고요.’라는 글귀가 사무쳤다. 밤이 새는지도 모르고 네티즌 수사대를 자처했다. 

그가 버젓이 운영하는 모델 에이전시 카페가 나왔다. 아동 모델 에이전시였다. 어린 아기의 엄마들이 ‘너무 잘 케어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전부 캡처해 인쇄했다. 결과적으로 그 자료들은 수사 과정에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우리가 고발할 수 있었던 범죄는 딱 그날 당한 성희롱, 성추행 건에 한해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소한 사건에 ‘괘씸죄’ 같은 건 별로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시무룩했다.

예상대로 고소는 지난했다.

지난한 고소 과정을 굳이 묘사하진 않으려 한다. 예상대로 경찰은 고소장 접수부터 비협조적이었고, 2차 가해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였고, 경찰로부터 외면당하지 않도록 ‘성폭력 피해 여성의 슬픔’을 강력히 연기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 실제 우리가 겪은 감정은 슬픔보다 분노에 훨씬 더 가까웠음에도.

결과적으로 나에 대한 언어적 성희롱 건에 있어 그는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회사 내 직장 상사라든지 하는 위계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맥이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건 알았으나 씁쓸했다. 판결의 해석대로라면 그와 나는 ‘오디션’이라는 참으로 ‘동등한’ 상황에서 처음 만나 순전히 업무적인 차원에서 ‘내 가슴이 진짜인지’에 대해 논하고 ‘내 허벅지가 자기 스타일이라 마음에 든다’고 칭찬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수평적 관계에서의 조언과 칭찬도 불편하게 여겼던 내가, 참 잘못했다.

다른 두 사람은 신체적 터치가 있어 재판으로 넘어갔으나 결과적으로 기각되었다. 아무래도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은 듯했다. 가해자는 잠적해버렸고 피해자들도 일상을 영위하느라 흐지부지된 모양이었다. 처음 내 번호를 받아갔던 그 xx씨는 꼭 이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결국 배우를 그만두었다. 차가웠던 올 봄에 시작된 이 일은 그렇게 새드엔딩을 맞았다. 슬펐지만,

후회스럽지 않았다.

고소 때문에 마포 경찰서를 드나들던 날들에, 나는 떠올렸었다. 스물 넷, 상쾌하고 비참한 기분으로 호프집을 나선 뒤 들었던 그 생각들.

그 새끼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십 수 년간 같은 짓을 하고도 멀쩡했으니,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십 수 년간 같은 짓을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똥 밟았다 치고 잊으면, 내 다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마음을 낭비하게 될까. 나는 저항하기 귀찮아서 피하는 걸까, 저항할 수 없어서 피하는 걸까. 그렇게 쭉 피하다보면 나는 결국 저항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걸까.

저항하지 않는 인간은 저항하지 않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결국 시스템 자체를 긍정하는 인간이 되기 쉽다. 그것이 세뇌의 과정이다. 어떤 연출이, 어떤 판이, 어떤 사회가 나를 세뇌하려 할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도 한 줄기 께름칙함을 놓지 않았다. ‘이건 당연한 게 아니야. 더 좋은 길이 정상이야.’ 내가 그 속삭임조차 놓아버렸다면 난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 무엇에도, 복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복수했으면 좋겠다.

내 복수는 전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복수했으면 좋겠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신경 쓰이고 귀찮더라도. ‘그 사람은 이상해 상종 말아’라고 소문이라도 냈으면 좋겠다. 그럼 적어도 ‘그 사람은 이상해보이지만 사실 나 잘되라고 그러시는 거야’의 늪에 빠지진 않을 테니까. 혹은 ‘여기는 이렇게 고생스럽지만 원래 다 그런 거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이 스스로를 건강하게 가다듬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를 후려치고 이용하려는 사람을 좋게 보려 노력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것들이 당신을 더 이상 호구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이용하려 들지 못하게 하는 것. 우리의 복수는 최소한 그런 의미를 가져야 한다.

연예계는 꿈의 산업이다. 연극이건 영화건 드라마건 심지어 CF건, 이곳은 이야기꾼으로 가득하고 색색의 꿈들이 어지러이 뒤섞인 세계다. 꿈을 이야기하는 자라면 적어도 남의 꿈을 짓밟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자각은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 공감능력도 없는 자는 내게 있어 예술가도 뭣도 아닌 사이코패스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이 꿈의 세계에 역시 사이코패스들은 곳곳의 요직에 배치되어 있지만, 그래도 잊지 말자. 그건 당연한 게 아니다. 더 좋은 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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