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방 전화기가 울렸다. 우리는 불길한 눈빛을 공유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화를 받은 우주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주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수화기에 대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저희가 왜 나가야 하죠? 셋이라서 일부러 트윈룸으로 잡았잖아요. 그게 왜 문제죠? 법적으로 문제 있으면 경찰 부르세요. 이건 저희의 권리를 침범하는 겁니다. 아니요, 환불 필요 없고요. 쫓아내려면 경찰 불러서 합법적으로 진행하세요.” 전화를 끊은 뒤 방에는 침묵이 흘렀다.
애인들과 다른 지역에 놀러 갈 때면 매번 숙소에서 발목이 잡힌다. 셋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산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굳이 방을 두 개 예약할 필요를 못 느껴서 방 하나를 예약하면 대부분 ‘혼숙 금지’에서 걸린다. 나름대로 찾은 방법은 연극이다. 두 사람이 온 것처럼 먼저 들어가고, 한 명은 다른 손님인 것처럼 나중에 들어오기. 이번에도 평소처럼 연극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날따라 심술이 났다. 죄지은 것도 아니고 이미 트윈으로 잡았는데 굳이 연기할 필요 없잖아? 우리 셋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고 5초도 안 돼서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전화를 끊고 불안감이 몰려왔다. ‘씻고 있는데 모텔 사장이 올라오면 어떡하지? 진짜 경찰이라도 오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 관계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우주와 내가 결혼한 사이고 지민이 내 동생이라고 했다가 주민등록증이라도 검사하면 어떡해. 지민하고 나는 아빠가 다른 사이라고 해야 하나.’ 잠깐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폴리아모리라고 말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더 불순하게 볼 모습이 선명하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우주가 카운터로 내려가서 사장과 말을 더 해보겠다고 했다.
우주가 나간 사이 나는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몇 개 꺼내놓은 짐을 다시 챙겼고, 지민은 핸드폰으로 관련 법률을 찾아보았다. ‘미성년자 혼숙금지’는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성인의 경우 법적 문제는 없었다. 시간이 5분, 10분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우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예상 외로 해맑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우리 방 안 빼도 돼.”
불안감, 불합리함
분명 웃으면서 확신하는 말이었는데도 요동치는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둘러앉아 우주가 사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들었다. 우주가 카운터에 내려가자 사장은 서운함을 토로했다. 주위 모텔도 다 그렇게 하니까 관행을 말한 건데, 우주가 다짜고짜 경찰 부르라고 말해서 기분 나빴다고. 우주는 사장을 달래기 위해 일단 사과하고 우리가 느낀 불합리를 설명했다. 정당하게 예약한 손님이고, 셋이라 일부러 큰 방으로 잡았고, 주말 밤이라 지금 쫓겨나면 방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나가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그건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다. 모텔 사장은 전에도 혼숙을 허용했다가 문제 생긴 경우가 많았고, 최근에도 근처 모텔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동반 자살의 위험성을 말했다. 우주는 사장이 자기 앞이라서 그룹섹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설사 그룹섹스면 문제 될 게 뭐야? 그룹섹스 좀 하면 어떻다고. 웃기지. 사장이 무슨 사이냐 길래 동거인이라고 했어. 한집에서 같이 사는 사이라고. 나중에는 노키즈존이랑 동물 제한 구역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자기는 아이를 키우긴 하지만, 노키즈존 찬성한다고. 노키즈존 가게들이 잘 되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면서 법적인 제한은 없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내 생각을 묻는 거야. (웃음) 내가 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내가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게 옳은 일이냐고, 나는 다른 존재를 배제하는 사회보다 다양한 존재가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어. 우리는 그걸 지향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헐, 백분토론 하다 온 거야? (큰 웃음) 노키즈존까지 나오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겨. 어쩌다보니까 얘기가 거기까지 갔어. 그래도 점점 분위기가 풀려서 나중에는 서로 웃으면서 대화했어. 아, 사장님이 마지막에 당부했어. 조용히만 해 달래.”
쿡쿡 웃으며 이야기를 듣다가 마지막 사장님의 당부에 터져버렸다. 우리가 뭘 한다고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 쉬러왔다가 모텔 사장님이랑 노키즈존 토론이나 하고. 씻지도 못하고 단단하게 긴장한 몸이 그제야 스르륵 풀렸다. 한 시간 만에 짐을 다시 풀고, 낮 동안 흘렸던 땀을 말끔하게 씻어낼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방을 빼지 않고 머물 수 있었지만, 계속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몇 달 전, 숙소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뒤에 혼숙금지가 불합리하다는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사람이 혼숙금지의 부당함에 공감했다. 한 장애여성은 활동보조인, 애인과 함께 여행지에 놀러 갔다가 숙소에서 같은 이유로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활동보조인은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존재인데, 장애인은 집밖에도 나가지 말라는 거냐며 호소했다. 법적인 제한은 없어도 누가 어떻게 공간을 빼앗기는지 나는 폴리아모리 관계를 통해 자주 맞닥뜨린다. 다양한 차별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실감한다. 사장님이 아이와 엄마를 거부하는 노키즈존을 언급하며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했던 것처럼, 차별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존재가 차별받는 세상에서는 나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리를 쫓겨나는 상황에서야 새삼 실감하는 것이다.
다른 궁금증도 생겼다. 불법촬영 범죄나 준강간 범죄가 도처에 널린 사회에서, 과연 사장은 술 취해 인사불성인 여성을 끌고 가는 남성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했을까? 아마 사장은 이성으로 보이는 두 명이라면 아무 의심 없이 손님으로 맞이했을 거다. 이성 둘은 동성이나 셋보다 훨씬 안전하고 깨끗한 관계라고 믿을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에 분노하다가 나는 문득 슬퍼졌다. 돌이켜보니 애인들은 그 상황에서 불합리함을 느끼고 분노했지만, 나는 분노보다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사장이 정말 그룹섹스를 상상하고 우리를 바라본 거라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음란한 존재로 바라보진 않을까 싶은 염려와 수치심에 습관적으로 몸을 웅크린 거다. 나는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우주나 지민처럼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짐을 싸서 나갈 준비나 하고 있었다. 아무리 당당해져야지 마음먹어도 여전히 어렵다.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우리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이야기 나눴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늦은 새벽까지 맥주를 들이켰다. 차별, 낙인, 배제를 나누다보니 점점 대화 주제가 이민과 사회보장으로 흘렀다. 한참 열띤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우주가 큭큭거리며 날 가리켰다.
우리 셋이 만난 지 이제 얼마나 됐지? 예전에는 셋이 밖에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어색했는데, 지금은 모텔에서 이러고 있네. 승은이 모습을 봐.
우주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집에서 즐겨 입는 트렁크 팬티 하나만 달랑 걸치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내가 있었다. 여분의 티를 챙겨오지 못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발가벗은 상태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우주와 지민은 지금 우리 모습이 웃기다고, 특히 나를 가리키면서 저런 차림으로 사회보장을 얘기하고 있다고 놀렸다.
그날 밤은 분노, 부끄러움, 안도, 분노, 부끄러움, 슬픔, 웃음, 염려라는 끝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타인의 과도한 걱정과 대비된, 맨몸으로도 자연스러운 우리의 관계. 뭐 그런 이질적인 요소가 맥주 맛을 더 시원하게 만들어주긴 했다. 다음에는 나도 숨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아니요. 방 안 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