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과 낙태라는 사태가 벌어진 후로부터 정확히 1년 1개월 동안 나는 농축된 방황을 했다. 아저씨들을 만나고 다니며 흑역사를 쌓았고 매주 클럽에 가서 머리를 흔들다가 모텔에서 깨어나는 식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정신을 차리니 엄마와의 관계가 망가졌다. 그렇게 살 거면 집을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집을 나왔다.
혼연일체에서 탈출하기
나의 주체 없음의 역사는 엄마로부터 독립을 못한 데서 왔다고 할 수 있겠다. 엄마는 나의 모든 일에 관여했다. 직업, 신앙, 연애 등등. 엄마 생각이 곧 내 생각이었고, 내 생각이 곧 엄마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아빠에게 맞는 엄마를 보면서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의무와 연민이 있었고, 한편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겉으로 보기엔 매우 씩씩했던(때론 사납기까지 했던) 엄마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두 마음은 뒤죽박죽 섞인 채 나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내가 성인이 되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엄마는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나의 연애를 진두지휘 하고 싶어 했다. 이런저런 충고는 물론이고 페이스북에서 내 애인이 될 수도 있을 법한 사람과, 우리의 대화에 거론된 몇몇 남자들의 타임라인을 염탐하다가 실수로 좋아요를 눌러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내가 '친구처럼'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하길 원했다. 내게 비밀이 생긴 것 같으면 섭섭해하거나 양심에 찔리는 게 있어서 이야기를 못하는 게 아니냐며 나무랐다.
본격적인 연애를 하면서는 엄마와 더 멀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곧 다른 세계관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였다. 기존의 나의 세계관(곧 엄마의 세계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엄마도 그 균열의 여파를 맞닥뜨렸다. 내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딸이 자기와 같이 불행한 인생을 살까 봐 두려워했다. 약혼자는 장모 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려서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그 둘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이 있었다. 나는 둘 사이를 중재하느라 진이 빠졌다. 엄마는 끝내 날뛰며 결혼에 반대했다.
결국 나는 그 남자와 영원히 헤어졌다. 파혼의 이유에는 엄마의 반대도 한몫했다. 그렇기에 나는 더 분노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부정당한 것, 그 부정이 온당하다고 할 만큼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만났던 내 안목에 좌절했으며 주체 없는 나 자신에 대해서, 내 삶을 마구 주무르려고 하는 엄마에 대해, 내 결혼과 파혼까지도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결과적으로 파혼은 내 인생에서 매우 성공적인 사건이지만.
육체, 경제적 독립
엄마의 관여가 좋은 결과를 낳았다 치더라도 내게는 친밀을 가장한 간섭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매우 반항적으로 변했고, 약간의 충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의 방황과 반항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딸이 더 이상 복종하지 않아 상처를 입었다. 나는 겨우 대출을 얻어 엄마와 32km 떨어진 곳에 5평 원룸을 구했다. 엄마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집을 나갔다고 해서 독립이 되는 것도 아니다. 육체적, 경제적으로는 독립을 이루었지만 심리적, 정신적 독립은 쉽지 않았다. 몸이 떨어져 있으니 애틋한 마음이 생겨서 1년간은 엄마의 사사로운 일처리를 해줬고 한 번 통화하면 1시간 이상 시시콜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도망치듯 집을 나온 게 미안하고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되니 그렇게 했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웬만하면 전화를 하지 않기로 했다. 통화를 하더라도 별일 없다는 말로 빨리 끝냈다. 간단한 인터넷 쇼핑도 도와주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엄마를 제외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무척 외로워했고 그 결과로 친구들을 더 만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고독에 잠식될까 두려웠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했다. 엄마는 나 없이도 잘 살았다.
독립은 진행 중
나는 여전히 엄마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엄마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말린다. 엄마는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내 탓으로 돌리고 내 약점을 이용해 교묘한 폭력을 휘두른다. 최근에는 해외에 있는 오빠를 대신해 결혼식 준비를 도왔는데, 엄마는 결혼식장에서 축의금을 뜯어 비용을 지불하는 게 면이 서지 않는다며, 내게 어렵게 모은 목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빌려주기 싫다고 하니 갚아달라고 한 적도 없는 학자금 대출을 갚아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들었다. 화가 나서 따지자 오빠 결혼에 비협조적인 이유가 파혼의 트라우마 때문이냐는 말을 한다.
누가 들으면 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가족도 가스라이팅을 한다. 순간적으로 엄마가 내 탓을 할 때는 그것이 가스라이팅이라는 생각을 못한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부분의 경우 엄마의 욕망이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를 나에게 덮어 씌우는 것뿐이지만. 이런 일들이 전에도 정말 많았지만 잘 분간해내지 못했다. 최근에야 비로소 그것이 가스라이팅임을 알게 된 건 글을 읽고 쓰며 내게 언어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다르고 '어'다른 것을 지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묘한 감정이 섞인 언어를 끊임없이 분간해내야 한다. 엄마가 나에게 '팍팍하다'는 프레임을 씌울 때 그게 아니라 나는 '분명한 것'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나를 피곤해 한다.
엄마에게 독립의 자유를
엄마는 나에게 '유세 떨지 말라'는 말이라든가, ‘이제 너한테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런 말로 미루어보아, 내 심리를 조종하려고 하던 엄마가 나의 독립으로 어떤 좌절을 겪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독립 과정이 누구에게 평화로울 수 있을까. 누구에겐 어렵지 않을 수 있겠으나 누구에겐 하나였던 것을 둘로 찢는 것 같은 고통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당분간 관계가 무너지지는 않을 정도의 선만 지키며 친분을 유지해갈지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의 독립이 중요한 건 엄마의 독립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독립이 되어야 엄마도 나로부터 독립을 한다. 종종 엄마는 쓸쓸함을 느끼며 잠에 들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어렵다. 그러나 알량한 인간적 연민에 사로잡히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인간적 연민에 사로잡히면 내 자아를 지워가면서 부당한 요구를 끊임없이 들어준다. 그러나 욕망이란 끝이 없으므로 결국 채워지지 못하는 욕망은 원망으로 돌아올 뿐이다.
엄마는 점점 내게 의지하려고 할 것이다. 의지를 넘어서 의존을 하는 순간 그 길의 끝은 파국이다. 늙어가는 엄마에게 독립은 훨씬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미 엄마는 새로운 직업을 가졌고, 폭넓은 관계망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 각자가 스스로 서 있어야 정말 힘들 때 도와줄 힘도 생긴다. 과도하게 친밀한 관계는 결국 그 관계를 망친다. 너무 친밀하고 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되짚어본다. 독립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