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않는 멍청함이 필요할 때야

생각하다데이트 폭력

이해하지 않는 멍청함이 필요할 때야

두사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개자식이라 말할 용기

나는 수년간 그에 대해 옹호해보려고 했다. 그라고 하면 9살 연상남이자 몇 년 전 나와 파혼했으며, 나에게 술을 먹인 뒤 성관계 도중 몰래 콘돔을 빼서 나를 임신시켰던 구남친을 말한다. 구남친이 개자식일 때 그가 구남친인 것을 정확히 지칭하는 동시에 그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고 싶을 만큼의 모멸을 주는 용어는 없을까? '구남친'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자의 수치심만 들쑤실 뿐 명쾌한 명칭이 아닌듯하다. 아무튼 나는 구남친이 아무리 개자식이어도 사람은 다면적 존재이므로 그 또한 다면적인 개자식이라 믿으며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일러스트 이민

그는 전형적인 데이트 폭력을 저질렀다. 그는 내가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헤어질 것처럼 행동했다. 무언의 압력으로 긴장하게 만들고, 잠수를 타기도 했다. 성관계에서도 지배적이었다. 나는 그가 첫 경험 상대였기 때문에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섹스를 배웠다. 그는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데이트하는 모든 날에 섹스를 원했다. 생리 중에도 삽입을 원했고 싫다고 하면 입으로라도 그를 즐겁게 해줘야 했다. 결혼해서 임신하면 맨날 입으로 해줘야 한다는 말을 너무 당연하게 해서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는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동시에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밤길은 위험하다며 거리가 멀어도 집까지 바래다주고, 헤어질 땐 언제나 헤어지기 싫다는 눈빛으로 마음을 녹게 했다. 헤어질 때뿐만 아니라 거의 언제나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사랑도 아니었는데, 그런 사랑은 처음 받아보는 꼬꼬마였던 나는 그것에 감동했다. 그만큼 나는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미루고 싶다는 나의 말에 돌연 그의 얼굴은 싸늘해졌다. 그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보다는 자신이 쏟아준 사랑을 거두는 방식으로 날 위협했다. 나는 대화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었다.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럴수록 더욱 결혼에 확신이 서지 않았던 건 그가 알았을까?

아빠와 그

아빠는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평상시엔 자신의 본심을 숨기다가, 술을 급히 퍼부은 뒤에 진심을 말한다. 그러나 거의 만취가 돼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역시 대화는 불가능하다. 아빠는 자신이 저지른 외도에 죄책감을 느낄수록 더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고 늦은 시간 잠이 든 어린 나와 오빠를 깨우고 언어 폭행을 일삼았다. 덕분에 우리 남매는 키가 안 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식들을 때리지 않았던 것인데, 엄마의 경우는 달랐다. 나는 아직도 아빠가 칼을 들고 엄마를 찌르려 했던 일과 아파트 복도에서 엄마를 떨어뜨리려고 했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아빠가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에는 책을 읽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렸다. 내 숙제를 도와주고 공들여 요리를 해주는 날엔 심지어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낙차가 내게는 너무나 두려운 것이었고 또 그 낙차 때문에 아빠가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심지어 행복했다. 그 행복은 환희에 겨운 행복이라기보단 안심에 가까웠다.

그를 만나며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와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불안했고 안도했다. 표면적으론 그가 나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반대였다. 그는 자신에게 주도권이 없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서 이미지 뒤에 숨어 나를 조종했다. 그는 나를 이해해주기보다 화를 내거나 한숨을 쉬며 가르치려 했다. 이제는 그것이 그의 미성숙함을 보여주는 증거란 걸 알지만 그 당시 나는 나를 자책하기에 바빴다. 그는 나를 사랑했다기보다, 나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내 몸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자 했다.나는 그의 섹스토이이자 임신 기계였을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내 자존감은 박박 찢어져 바람에 날아갔다.

그와 헤어지지 못한 이유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변 여자 어른들은 내게 '괜찮겠지'하면서 대충 뭉개고 넘어갔던 일을 잘 되새겨보라고 충고했다. 찝찝하지만 그냥 지나쳤던 일들이 결혼 후에는 큰 문제가 되며 사람은 변하지 않는데 결혼 후에는 더더욱 변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런 충고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속으로 삼키고 넘어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어떻게든 좋게 보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보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 그를 본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결혼에 반대했는데, 결혼에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사람들에게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내가 선택한 사람, 결혼할 사람은 좋은 사람이어야 했고 나는 그걸 증명하기 위해 그의 부정적인 모습까지 두둔했다. 그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거짓말을 단번에 알아채는 듯했다. 그를 감싸면 감쌀수록 어쩐지 그의 태도와 행동에서 문제만 더 드러났다. 내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를 끊임없이 경험했다. 자아가 분열됐다. 그를 감싸려고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속이는 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왔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내 정체성의 일부였다. 나는 그와 나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를 부정하면 곧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상처를 받았다. 내가 선택해서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선택 또한 얼떨떨하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됐지만, 나의 선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날의 선택이 뭐 그렇게 대단히 주체적이었겠으며, 신중했겠는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난 어리석었다.

일러스트 이민

개자식이라 말할 용기

그에게도 아픔과 극복하지 못한 어두움이 있다. 또 긍정적이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도의 명암을 지니고 있기에 다면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다면성으로 죄의 인과를 해석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다면성으로 그의 패악을 변호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의 패악을 실수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그는 스스로 꺾어왔다.

애초에 나는 왜 그를 이해해 보려고 했는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의 미성숙함을 참아 준 고마움이거나, 그렇기 때문에 남아 있는 죄책감 때문이거나, 인간적 연민이나, 혹은 여전히 그를 선택했던 나를 옹호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엉켜버린 실타래를 쥐고 있다. 앞으로 이 실타래를 더 풀어가야 할 테다.

그러나 그를 개자식이라 말할 용기를 한 번 더 내본다. 그를 개자식이라 호명하는 건 내겐 용기다. 그것은 내 선택의 미련함을 인정하는 행위이자 지난날의 실수와 과오와 죄책감에 정면승부하겠단 각오다. 그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 씌운 채 나 혼자 무결한 척 하는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를 개자식이라 부르기 위해 기꺼이 나 자신의 멍청함에 쾌재를 부를 것이며 죄책감의 늪에서 춤을 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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