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친밀한 이와의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특히 남성과 연인 관계를 맺은 이들이 보이는 인내는 경이롭다. 상대가 아무리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약속한 것을 자꾸만 잊어도 이들은 불굴의 의지를 발휘한다. 상대에게서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아내는 데 혼신을 다했지만 돌아서면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문제의 발생과 똑같은 문제제기와 쉽지 않은 인정과 더 쉽지 않은 사과라는 절차가 예비되어 있음을 상대도 알고 자신도 알면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불일치
나는 열심을 다하는 이 여성들에게서 어떤 불일치를 목격한다. 상대와 자기 자신 중 자신을 고를 의지는 발휘되지 않는데 지난한 투쟁에 뛰어드는 초인적인 의지는 발휘한다. 심지어 이 투쟁의 전망이 밝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한다. 이 중에서 어떤 여성들은 서로의 인내를 응원한다. 항복을 선언하는 여성에게 인내를 권한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다른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은 서로를 향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를 부여잡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투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변화를 기대하고 투쟁에 매달리고 있겠지만 이것은 반복되는 패턴이니 가망 없는 싸움을 영원히 지속하는 일에 너의 소중한 감정적 에너지를 쓰지 말라고, 이 여성들은 서로를 위해 진심을 다해 말하나 막상 자신의 투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 나는 기이한 불일치를 보이는 이 여성들이 가진 믿음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안, 또 믿음
관계에서 비롯된 고통을 호소하며 나에게 이야기를 청하는 여성들에게 관계에 대해 가지는 믿음에 대하여 질문한다. 여성들은 답한다. “그래도 아직은 사랑하는 것 같아.” “사랑은 계속되어야 하잖아.” 여성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종래에는 상대가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혹은 사랑이란 시작된 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들이 남의 일이라면 냉철하게 무용하다 판단하는 노력을 스스로도 비합리적임을 알면서 계속하는 이유에는 우선 폭력에 대한 굴종과 상대가 없으면 죽을 것만 같다는 주입된 불안이 있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여태껏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맺는 친밀한 관계 안에서 몰아내기 위해 싸워 온 대상이다. 그런데 그 외에 또 있다. 바로 사랑에 대한 지고의 믿음 그 자체다.
상대의 변화는 나의 노력에 대해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상대가 변화하기를 바라며 노력을 들이는 행위는 자신이 노력을 들일수록 상대가 변화로 가까워지리라는 믿음에서 온다. 이 믿음은 자신이 투입하는 노력의 양이 상대의 변화가능성을 만든다는 잘못된 인과의 연결에서 온다.
하지 않으려고 하기
내가 굳게 가진 믿음은 자신은 자신의 의지로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일단, 뭘 하려고 하지 말고 하지 않으려고 해 봐.’ 나는 저마다의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일관된 문장으로 말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를 유심히 관찰한다. 여성이 상대의 변화에 매달리는 이유는 대체로 그가 변화하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성에게서 사랑하는 감정은 이미 떠난 지 오래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는 사랑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만이 남아 그 자리를 채운다.
사랑하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말하는 이들은 자신의 믿음 안에서 천천히 말라 죽어간다. 나는 이들을 꺼내기 위하여 꿋꿋이 말할 예정이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변화를 대신할 수 없음을 알아차려줄 이들이 나타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