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살기: 헤프거나 이기적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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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살기: 헤프거나 이기적이거나

김평범

나는 혼자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이다. 별 특이한 일은 아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거주 20~30대 여성의 44.4%보증금·월세, 34.6%전세로 집을 점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내가 자취를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부터다. 대학에 다닐 때는 친동생과 함께 지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학생인 동생과는 서로 생활 패턴도 엇나간데다 기자 초년생으로의 생활이 많이 고되다보니 걸핏하면 동생에게 화를 냈고, 잦은 싸움이 반복되자 서로 견디지 못하고 각자의 생활을 꾸렸다.

그러면서 처음 혼자 얻은 집이 지금의 '월세가 아주 기막히게 싼 자취방'이다.

“그 집에 남자 살죠?”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은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많다. 그 중 범죄 위험에 수시로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거주 20~30대 여성 가운데 36.3%주거지에서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힘쓸 일이 생기면 다소 불편하다는 것 역시 다양한 불편함 중 하나다(혼자 해낸 뒤 능력치가 올라감을 느껴 뿌듯하긴 하지만).

그 외에 주변의 시선으로 인한 불편함도 꽤 크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주택 한 채에 여러 집을 나눠 세를 주는 방식인데, 애석하게 수도 계량기를 각 가구에 따로 설치하지 않고 한 계량기로 수도세를 집계한 뒤 그것을 사람 머리수대로 나눠서 청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나 혼자 사는 집에 2인분의 수도요금을 청구하는 쪽지가 나붙었다.

나는 당장 주인집에 연락해 왜 수도요금이 2인분이 청구된 건지 물었다.

"그 집에 남자 살죠? 내가 남자 드나드는 것 몇 번 봤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이따금씩 집을 찾아올 때였다. 게다가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독립한 기념으로 집에 사람 초대하기를 즐겨하던 때 이기도 했다. 당시 사귄 남자친구 외에도 대학시절 여자 친구들이라던가, 근처에 사는 '남자사람 친구'라던가, 대학 동기모임 등으로 우리 집은 여러 사람의 방문이 잦았다.

친구들의 출입이 잦아서 라던가, 집에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봤다던가, 하는 말도 아니고 '남자가 사냐'고 물어본 것은 일종의 공격이자 비아냥이었다. 

계약 당시 분명 혼자 사는 여성임을 밝혔는데도 그러한 질문을 한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 한 마디로 나는 여러 남자가 드나들게 만드는 '헤픈' 여자가 되어 있었고, 집 주인은 수도세를 빌미로 내게 트집을 잡았다.

내가 누구를 초대하는 행위에 어떤 성적인 의미를 담아 나를 공격하려 드는 의도가 뻔히 여겨지는 질문에 머리가 멍해졌던 것은 분노라기 보다는 수치심에 가까운 감각이 먼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남자친구를 집에 초대할 때도,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때도 늘 신경쓰고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남성’인 친구가 오갈 데가 없어 우리집에 며칠 머물다 간 뒤에도 나는 '집주인이 나의 행실을 가지고 또 트집을 잡는 것은 아닐까', '다른 집에서 나를 또 남자 끌어들이는 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사는 여성은 남자 경험이 많다

그리고 '혼자 사는 성인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미디어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이 그려진다.

사진 제공 = tvN

예능 프로그램 'SNL'에 배우 황우슬혜가 호스트로 출연한 편의 영상 클립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황우슬혜가 신동엽에게 바래다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혼자 산다'고 어필하는 장면이었다. 그러자 신동엽은 곧바로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사진 제공 =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는 오해영이 혼자 산다는 사실을 안 중국집 배달원에게 추행을 당할뻔 하다가, 박도경의 기지로 간신히 상황을 모면하는 장면이 방영된 적 있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에서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옆집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구두 한짝을 선물하고 갈 박도경이 없을 확률이 좀 더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자취하는 여성의 경우, 혼자 있을 때는 무서워서 음식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거나, 택배 배달이 와도 곧장 문을 열지 않고 집안에 아무도 없는 척 했다는 경험담이 넘쳐난다.

이처럼 미디어는 '혼자 사는 성인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이를 또다시 부정적으로 재생산하는데 일조한다. 한 술자리에서 여성 중 한 명이 "자취하고 있다"고 말하자 또다른 동년배의 남성이 "남자 경험 많으시겠어요"라고 되묻는 걸 보고 아연실색한 적도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은 집안일을 잘 해야 한다

여기에 혼자 사는 여성은 집안일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가지고 또 한 번 여성으로 재단되고 평가받는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여성 게스트는 집을 청결하게 유지할 경우에는 '천생여자' 소리를 듣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호된 잔소리를 듣거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다.

사진 제공 = mbc

반면 남자는 조금 더러워도 정상이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깔끔하거나, 집안 일을 혼자 척척 해내면 곧장 '주부'라는 호칭을 듣는다. '삼시세끼'의 차승원은 '차줌마'였고, '살림하는 남자들'의 봉태규는 '봉주부'였다. 그나마 집안 일에 서툰 남성은 '허당'정도로 취급받는다.

TV 속에서도 이런 상황이니 현실에서 연애와 결혼 후 여자에게 남겨지는 것은 1인분이 아니라 2인분, 혹은 그보다도 더 많은 분량의 집안일과 독박 육아일 것이 뻔하다.

혼자 사는 여성은 이기적이다

이 와중에 혼자 사는 여자는 이기적이라는 인식까지 미디어에서 손쉽게 조장한다. 뉴스 등에서는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저출산 시대의 주범이 '1인 가구 여성'이라는 관점을 은연중에 심어주고 있다.

최근 한 통계·마케팅 관련 업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취재를 갔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통계 전문가' 라고 나선 한 남성의 말이다.

"저출산 요인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증가한 것이 주된 이유로 보인다. 25~29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980년 32%에서 2015년 72.9%로 늘었고, 미혼율도 1980년 14.1%에서 2010년 69.3%로 대폭 늘었다."

이같은 발표의 문제는 '출산'이 여성만의 문제인 것처럼 그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독신 여성은 자신의 사회 진출을 위해 결혼과 출산을 버린 것처럼 말하면서, 출산과 육아의 책임은 여성에게 그대로 남아있어 여성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데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 사는 삶'이란 것은 적어도 여성에게 있어 다양한 방향으로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이런 상황에 미디어가 앞장서 혼자 사는 여성을 이기적이거나 헤픈 사람으로, 혹은 직장 일 뿐만 아니라 집안 일까지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광경은 씁쓸하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 더 혼자 살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나아가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혼자 사는 삶이 가장 좋은 선택지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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