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최저임금 관련 취재를 하다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여관방보다 좁은 고시원의 월세가 2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당연히 없고, 침대와 책상이 겹쳐져 있어 누우면 발목부터 책상 밑에 들어가는 공간이었다. 양 옆 방과 복도 소음이 다 들리고 담배 쩐내가 진동을 했다. 아무리 보증금이 없다고 해도 20만원을 내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서울 집값,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8년 전 자취를 했을 때,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짜리 10평 투룸 반지하방에 살았다. 룸메이트와 함께 월세를 내면 대학생의 아르바이트로 그럭저럭 감당할 만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안전 비용이 있었다. 더워서 창문을 열면 사람들의 발목이 보였고, 번호키가 아닌데 열쇠 잠금은 무거웠다. 헛손질 한 번으로 문이 잠기지 않았던 날, 술 취한 남자가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경찰을 부른 적도 있었다. 다행히 범죄자는 아니고, 그냥 인사불성이 돼서 자기 집도 못 찾은 20살짜리 대학생이었다. 그런데도 며칠 간은 덩치가 비슷한 남자의 뒷모습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을 구할 때 가급적이면 반지하나 지층은 안전과 습기 문제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가격, 같은 면적에 조금 더 안전한 위치나 오피스텔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저렴한 집은 없나? 부동산 시장에서 그런 집을 찾으려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집 주변 부동산을 최소 세 군데이상 가 보길 추천한다. 비슷한 위치의 부동산은 매물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주변보다 훨씬 저렴한 매물을 갖고 있는 부동산을 찾으려면 결국 여러 군데를 가보는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나 부동산 앱은 시세를 알아보는 힌트 정도로만 생각하는 게 좋다.
그러고보니 정부가 청년 주거 안정을 꾀한다고 임대주택을 잔뜩 짓는다고 한 것도 같다. 그런 곳은 좀 더 싸고 안전하지 않을까? 나도 청년이고 돈 없는데, 들어갈 수 없나? 국가에서 마련한 복지정책이니 사정이 잘 맞는다면 최대한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문재인 정부가 청년, 서민계층 주거 안정을 위한 핵심 복지정책으로 밀고 있는 행복주택에 대해 알아봤다.
기본 개념
행복주택은 대학생, 취업준비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을 위해 지어진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이다. 다른 공공임대주택이 고령자나 유자녀 신혼부부, 주거급여 수급자 위주로 공급되는 것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청년층에게 열려 있다는 게 특징이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은 2년 계약으로 최대 3회까지 계약을 갱신해 6년 간 살 수 있다. 대학생 자격으로 행복주택에 입주한 뒤 중간에 취업을 하면 사회초년생 자격으로 바꿔서 재계약할 수 있다. 1인가구로 입주했다가 중간에 결혼을 해서 신혼부부가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최대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은 10년을 살고 나면 분양전환을 통해 자기 집으로 매매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행복주택은 그럴 수 없다.
입주자격
대학생 : 해당 지역 또는 연접지역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다음 학기에 입학, 복학 예정인 무주택자
취업준비생 : 해당 지역 또는 연접지역의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 중퇴한 지 2년 이내이며 직장이 없는 사람
*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은 본인과 부모의 월 평균소득 합계가 5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사회초년생 : 해당 지역 또는 연접지역의 직장에 재직 중이고 취업 기간이 5년 이내인 무주택자
재취업준비생 : 해당 지역 또는 연접지역의 직장에서 퇴직 후 1년 이내 구직급여 수급자격을 인정 받았고, 취업 기간이 5년 이내인 무주택자
* 사회초년생과 재취업준비생은 본인의 월 평균소득이 400만원 이하여야 한다.
*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여야 한다.
* 자동차 등 소유 자산이 기준 이하여야 한다.
* 문화예술인도 해당된다.
신혼부부 : 해당 지역 또는 연접지역의 직장에 재직 중이고 혼인 기간이 7년 이내인 무주택자
대학생 신혼부부 : 해당 지역 또는 연접지역의 대학에 재학 중이고 혼인 기간이 7년 이내인 무주택자
예비 신혼부부 : 위 조건을 충족하면서 혼인을 계획중인 자(입주지정기간 만료일까지 혼인사실을 증명해야 함)
* 해당 세대의 소득이 2인 월 500만원 이하여야 한다(맞벌이의 경우 600만원)
* 자동차 등 소유 자산이 기준 이하여야 한다.
*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여야 한다.
행복주택 계약 이후에도 주택청약종합저축의 청약 기능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므로 행복주택에 살면서 다른 임대주택을 청약에 도전해도 상관없다. 실제로 주택 복지정책을 활용해 저렴한 임대료를 내면서 돈을 모아서 더 나은 조건의 주택으로 이사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많다.
8월22일, LH공사가 2018년 3분기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 사전 공고문이 올라왔다. 공고문을 보면 입주 자격에 대한 상세한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 8월30일에 정식으로 단지별 입주공고문이 올라오면 입주자격별 면적과 세대 수, 임대료를 알 수 있다. 9월 초부터 입주신청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3분기에 신청을 받는 지역은 서울 이천마장, 인천 시흥은계, 경기 성남고등, 화성동탄2, 충북 괴산, 대전 아산탕정, 전북 완주삼봉, 광주 광주용산 지역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단,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용 행복주택은 상당히 좁다. 가장 작은 면적이 전용면적 16.71제곱미터(16형)다. 약 6평 정도로 화장실이 있는 원룸 형태를 생각하면 된다. 행복주택 신청자 및 거주자 커뮤니티에서는 “16형 만든 공무원은 그 집에 10년씩 살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두 명이서는 도저히 못 살 곳이다.
그만큼 저렴하긴 하다. 지난 7월 모집이 종료된 서울공릉 지역 행복주택 16형은 보증금 2815만원에 월세 11만원이었다. 보증금 3천에 11만원으로 서울에서 안전하고 깨끗한 8평짜리 집을 구하는 건 복지정책이 아니고는 상당히 어렵다. 서울공릉 행복주택의 경우 청년 계층 차격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큰 집은 전용면적 29.38제곱미터(29형)로 약 13평 정도이며, 보증금 5122만원에 월세 20만원이었다. 내가 살던 반지하방보다 크고, 비슷한 보증금에 월세가 절반이다. 당첨만 된다면 청년 1인가구에게 상당히 좋은 조건이다. 물론 서울 지역의 비교적 넓은 임대주택은 공급이 적어 당첨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실전
행복주택 입주공고문이 올라오고, 청약 신청을 받는 LH공사 홈페이지는 정말 ‘더럽게’ 복잡하다. 오죽하면 자기들도 ‘청약 연습하기’ 페이지를 따로 추가해 놨을 정도다. 기본적인 사항은 LH공사 홈페이지 메인에서 [청약센터] → [분양공고문] 으로 들어가, [임대주택] 란을 누르면 아래 나오는 [행복주택] 을 누르면 행복주택 관련 공고문만 따로 볼 수 있다. 가끔 이전에 분양공고가 났던 지역 중 계약이 미달되어 추가입주자를 모집하거나 예비번호를 주는 ‘예비입주자’를 모집하는 지역도 있으니 한 번 자신이 사는 지역 위주로 둘러봐도 좋다. 콜센터 1600-1004에 전화해 관심단지를 등록하면 추가 모집이 있을 때마다 문자로 연락을 준다고 한다.
공고를 보고, 자격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입주하고 싶은 지역과 평형을 골랐다면 청약을 해야 한다. 본인 명의의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또한 세대주와 세대원 관련된 정보를 정확하게 적어야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표 등본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월평균 소득 정보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청약 접수를 할 때는 실수로 서류와 다른 조건을 적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잘못 쓰면 바로 탈락한다. 실제 증빙서류는 계약 단계에서 보내면 된다.
행복주택은 비혼 청년에게 가장 허들이 낮은 주택 복지정책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국민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 장기전세시프트 등 수많은 주택 복지정책이 존재한다. 신청 자격만 된다면, 전세보증금을 저렴한 이율로 빌려주거나 지원해주는 정책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종합적인 정보를 정리해 둔 네이버 카페 <국민임대아파트 들어가기>가 있다. 여러가지 주택복지제도를 한번에 정리해 놨고, 실시간 공고문이 올라와서 유용하다. 복잡하고 불편한 SH공사와 LH공사 홈페이지를 뒤지기보다는 이곳을 추천한다. 회원들끼리 정보 공유나 질의응답도 활발하다. 공공임대주택이라면서 보증금이 턱없이 비싼 곳을 같이 욕하기도 하고, 저런 돈을 가지고 왜 저기 사느냐고 어이없어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역시 집단지성이 최고다.
이 카페에서 제일 흥미로운 곳은 실제로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 내부를 공개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시판이다. 사실 제곱미터든 평이든 숫자와 도면 만으로 내가 이 정도 평형에서 잘 살 수 있을지 가늠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경우 같은 평형의 다른 임대주택의 사진을 여러 장 보다 보면 실제 집 보러 다니는 기분으로 다른 사람들이 공유해 준 ‘임대주택 인테리어’를 구경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은 방을 보고 계약하면 되는 민간과는 달리 신청하고, 당첨되고, 서류를 보내고, 계약을 하고, 실제로 입주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오는 8월30일 입주공고문이 뜨는 행복주택은 모두 2019년에 입주예정이다. 현재 살고 있는 주거지와 계약 만료 시점이 잘 맞을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