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를 잘 하는 사람들은 기록도 잘 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누구나 자신의 사례를 공유해준다. 책으로 내는 사람도 있고, 블로그, 카페, 유투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정말 인상적인 ‘재테크 덕후’들이다. 일부러 자동이체를 하지 않고 적금을 직접 이체하며 그 때마다 설렘과 기쁨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남의 덕질 구경하는 걸 정말 좋아해서 재미있게 탐방했다.
이런 성실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아무래도 이들처럼 열심히 해서 아주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나는 돈 모으고 돈 버는 일조차 의욕이 없고 게으르고 소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돈에 관심을 가지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최소한 길거리에 나앉거나 폐지를 줍고 싶지 않다는 발버둥. 심지어 폐지 줍는 노인 가운데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힘들고 빈곤 탈출이 어렵다고 한다. 남성 노인은 폐지를 줍다가 규모를 키워 트럭을 몰고 폐업장과 중고시장을 중개하는 ‘나까마’ 업자가 되기도 하는데, 여성 노인은 업계에 만연한 성차별 때문에 그렇게 ‘사업 규모’를 늘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난 아마 폐지조차 제대로 못 주울 것이다. 더더욱 최소한의 노후 대비를 하고 싶다.
노후 대비를 하고 싶어서?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던 사회초년생 시절, 연금보험에 가입한 이유도 같다. 당시 잠시 동안 룸메이트였던 연상의 지인에게 가입 추천을 받았다. 그 사람은 보험설계사가 직업이 아니었다. 단지 자격이 있어 가끔 부업처럼 일을 한다고 했다. 해가 지나면 보험법이 바뀌어서, 올해 안에 가입하는 게 이득이라며 나에게 연금보험 가입을 추천했다.
사실 그 때 들었던 설명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남아있는 기억을 모아보면 이렇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돈이 늘어나는 어떤 표를 보여줬는데, 매달 내가 20만원씩 넣으면 20년이 지난 후에 연금이 1억원이 된다는 표였다. 4800만원이 어떻게 1억원이 된다는 거지? 아마 보험사에서 준비하는 ‘책임준비금’을 합산해서 말한 수치였을 것이다. 책임준비금이란 내가 20년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죽거나 무슨 일이 생겨서 남은 사람이 보험금을 받게 될 때를 대비해 보험사가 내가 낸 돈의 1.5배 이상을 준비해 놓는 것을 말한다. 최저보증이율은 2.8프로 정도로 연 복리로 적용된다. 현재 적금보다 약간 높지만 앞으로 은행은 이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중간에 깨면 손해를 많이 보게 되니까 꼭 끝까지 넣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런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말들은 따로 있다. 그 지인은 나에게 20대에 가입하면 20년 후부터 연금을 개시할 수 있으니 40대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정말 부럽다고 했다. 어쨌든 노후를 준비할 수단을 한 개는 마련해 놓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너무 적게 받으니까, 사적인 연금이 하나는 필요할 것이라고. 사실 상품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노후에 대한 내 불안한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이런 말들이 강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저축이 아닙니다
나는 당시 연금보험을 노후를 위한 저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금보험은 저축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연금보험은 금융 상품이다. 그것도 내가 낸 돈에서 보험사가 사업비를 가져가는 상품이다. 그래서 중간에 깨면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저보증이율은 내가 낸 돈에서 사업비를 뗀 나머지 금액에 적용된다. 오래 넣으면 떼어 가는 사업비가 점점 줄어들어서 마치 원금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넣은 돈에 비해 떼인 돈이 더 늘어난다. 심지어 이율 2.8%가 계속 적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약관을 확인해보니 최저보증이율이 가입 5년 이후에는 2%, 10년 이후에는 1%로 줄었다. 10년 간 은행에 1년짜리 적금을 넣어서 복리 효과를 보는 것만 못하다.
적금이 이율이 너무 낮아서 다른 금융상품을 알아보고 있는 사람에게 연금보험은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다만 중간에 깨면 손해가 너무 크다는 사실이 엄청난 저축 압력이 된다. 저축을 하기에는 자기 자신을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사람, 꼬박꼬박 적금이나 예금으로 노후자금을 마련하기엔 적금이 만료되는 대로 다 써버리는 사람, 최소 20년 뒤까지 보관료(사업비)를 내더라도 누군가가 나 대신 내 돈을 맡아 주길 바란다는 사람이 있다면 연금보험이 적합할 수 있다. 사실 나에게 연금보험 가입을 추천한 지인은 프리랜서였고, 나보다 그 사람에게 연금보험은 더 잘 맞는 노후를 대비한 금융상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내가 가장 불안해하는 부분을 명중했다는 이유로, 장기적인 금융상품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덜컥 구매한 대가는 비쌌다. 나는 3년 간 꼬박꼬박 보험사에 20만원을 냈고, 많은 고민 끝에 100만원을 손해 보고 연금보험을 해지했다. 원금이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도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업비를 낼 뿐이라 조금이라도 손해가 적을 때 해지하기로 했다. 그나마 내가 낸 돈을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금이 매번 변하는 ‘변액보험’이 아니라서 사업비를 제외한 금액은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만일 보험사 직원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거나, 가입 서류 서명을 대필했다면 ‘민원 해지’로 원금 전액을 돌려받는 방법도 있다. 나는 제대로 된 설명을 받지 않았다는 증명을 하기엔 관련 홍보 자료나 서류를 제대로 보관하고 있지 않고, 내 손으로 서명한 기억이 너무 분명해서 도저히 민원 해지를 할 수 없었다. 연금을 받는 시기에 세제 혜택을 받는 연금보험과 달리, 연금저축보험은 연금을 낼 때 세제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연금을 해지해서 돌려받는 돈에도 기타소득세가 붙는다. 해지를 생각한다면 이 부분도 확인해야 한다.
차라리 적금이 나을 거에요
보험사가 판매하는 연금보험이나 연금저축보험은 앞서 언급한 공시이율과 최저보증이율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은행이 판매하는 연금저축신탁은 투자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채권에 100% 투자하는 채권형과 주식에 10% 미만 투자하는 안정형이 있다. 당연히 어디 투자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증권사가 판매하는 연금저축펀드도 투자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며, 신탁에 비해 좀 더 기대수익률이 높은 대신 원금 손실의 위험성도 크다. 만일 적금보다 높은 이율을 원하고, 투자하는 펀드에 따라 수익률을 높일 자신이 있다면 연금저축펀드를 선택할 만하다. 하지만 ‘경알못’에게는 결코 적합한 상품이 아니다.
참고로 2018년 7월 기사에 따르면, 개인연금저축 상품의 연평균 수익률은 생명보험사가 4.11%, 손해보험사가 3.84%였다. 같은 기간 30만원씩 저축은행에 적금을 넣었을 때의 연평균 이율(4.19%)만 못하다. 이것도 매달 30만원씩 개인연금저축 판매가 시작된 지난 2001년부터 17년간 꼬박꼬박 돈을 넣은 가입자에 한해서다. 내 지인이 나에게 연금보험을 소개하며 했던 말 중 가장 맞는 말은, 매년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 조건이 가입자에게 불리하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2001년보다 더 늦게 가입한 사람들은 이만한 수익률조차 못 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00만원의 교훈. 경제를 잘 모르면 일단 적금 넣는 금액부터 늘리자. 연금보험을 판매하는 멘트가 솔깃하다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자. 이 세상에 은행처럼 꼬박꼬박 돈을 내기만 했는데 일정한 이율을 보장하는 상품은 없다. 즉, 게으른 사람이 떼돈을 버는 금융상품은 없다. 게으른 수익에 만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