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통장에서 2만원이 빠져나갔다. 빠져서 어디 멀리 가는 것은 아니고, 바로 붙어있는 또 다른 통장으로 간다. 주택 청약 통장이다. 청약 통장을 만들라는 이야기는 한 10년도 전부터 들었던 것 같다. 그때 통장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하나, 한국에서 집을 사서 살아가는 미래 같은 것은 조금도 그려지지 않았고, 둘, 한 달에 2만원이라고 해도 고정 지출을 늘리는 것이 오늘의 삶을 빠듯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택 청약에 가입한 건 2년 쯤 전이다. 그것도 역시 내 집 마련의 꿈이 갑자기 생겨나서는 아니었다. 부모님의 늙어감을 직면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잠시나마 여기 발 붙여 놓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리고 10년 전 만큼은 빠듯하지 않으니까 시작해본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고정 소득은 인간으로 하여금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법이다.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행복주택
지난 봄, 청약 통장을 처음으로 써 볼 일이 있었다. 여름 전까지 일단 머무르고 있던 본가 근처, 서울의 외곽에 행복주택 청약에 지원을 하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보증금도 월세도 모두 높았지만 부동산을 전전하지 않고 내가 쥔 돈으로 가질 수 있는 집의 수준에 함께 후려쳐지지 않고 머물 곳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인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원래 지원하려던 예술인 자격이 왜인지는 모르지만 만 18세 이하, 만 40세 이상만 해당이 됐기 때문에 당시 만 34세였던 나 역시 일반 청년 자격으로 지원해야했는데, 청년들에게 할당된 집이라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했던 것이다.
당시 행복주택 청약은 강남권을 비롯해서 서울 중심부에도 꽤 많은 세대가 제공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그 중심권에 살 수 있는 청년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신혼부부에게만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는 작게는 5평에서 넓어도 9평이 채 되지 않는, 그러니까 집이라기보다는 방이 제공되었다. 그것도 서울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하철도 아직 개통이 안된 끝자락에 있는 방 한 칸이었다. 그 방 한 칸을 갖는 것도 아니고 그 방을 겨우 몇년 빌리는 데 필요한 경쟁에 정당히 참여할 기회를 얻기 위해, 내가 지금까지 청약 저축이라는 걸 한 거라는 생각을 하자 좀 복잡한 마음이 됐다. 어찌됐건 일단 기회가 주어졌는데 안 할 수는 없지. 동쪽 끝의 끝자락 행복주택의 청약 경쟁률은 25:1. 나는 당연히 떨어졌고, 그 달 말에도 청약 통장으로 2만원이 빠져나갔다.
얼마 전, 주택 청약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차라리 10년 전에 청약을 했더라면 어디든 청약을 넣을 때 그래도 점수 걱정을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로 운을 띄웠더니, 청약에 대해 잘 아는 친구가 말했다.
넌 혼자잖아. 어차피 안돼.
예를 들어 내가 15년을 넘게 주택 청약 저축을 성실히 납부했다고 하더라도, 부양 가족 2명이면 그 점수를 월등히 뛰어넘어버린다는 것이다. 무주택 기간 역시 만 30세 이상부터 점수를 받게 되기 때문에, 거기서도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결혼을 하면, 30세 이하라고 해도 가점을 또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비혼 여성은,
꼴찌라는 거지.
그랬다. 대부분의 국가 정책은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곧부국강병의 근본이 되는 인구증대에 기여하지 않는 나와 같은 여성을 꼴찌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일단 300만원 정도 묶어놨으니까 마저 붓고 있다가, 민영 나오면 추첨할 때 로또를 바라는 수밖에.
정말 명쾌한 자본주의의 논리였다. 그러니까 내가 쓸 수 없는 300만원과 추가로 매달 내 통장에서 나가는 2만원은, 언젠가의 로또도 아니고, 언젠가의 로또를 살 기회를 얻기 위해 지불되는 비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묻고싶었다.
‘내가 결혼을 안해. 아이도 안 낳아. 그러면 작은 방 한 칸을 빌릴 기회를 얻은 것에 감지덕지하면서 살고, 나라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법적인 파트너를 가진 사람들과 똑같이 누리지 못하는 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묻지 않았다. 당연히 친구 역시 대답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둬 봐. 청약 통장이 이율은 괜찮아.
그래서 오늘도, 2만원이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