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하기 좋은날 2. 엄마 딸은 결혼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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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하기 좋은날 2. 엄마 딸은 결혼을 안 해

윤이나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난 결혼 안 할 건데.”

오랜만에 나름 다정한 모녀의 산책길이었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 것은 아마도 친척이나 타인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또 다시 엄마 입에서 흘러나온 ‘네가 결혼을 하면’이라는 가정의 문장을 듣고서야, 이때가 그때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는 어머니, 딸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랍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아무렇지 않게 ‘결혼 뭐, 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나름대로 비혼을 선언해봤자 ‘얘가 또 이러네’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SNS에는 비혼을 선언한 딸에게 “여자는 능력 있으면 혼자 사는 게 좋다”거나, “마음에 맞는 동성 친구들과 살아라”와 같은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9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자라왔고 결혼 후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다른 이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노동으로 지탱해온 나의 엄마에게, 결혼은 탄생한 자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수순이었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 행복했는지, 행복한지를 물으면 “이만하면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신은 결혼을 해서 1남 1녀를 낳아 길렀고, 이혼하지 않았다. 자녀 중 큰아들이 사회가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고, 그들 또한 이혼하지 않았고 손주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엄마는 이런 삶이 아닌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상상까지 하기엔, 일상이 너무 고단했다. 그 고단함을 위로한 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삶의 궤도 내에서 무탈히 살아가는 가족들 뿐이었다. 그러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곧 칠십년에 가까워질 자신의 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정하게 들린다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엄마의 사정이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딸이 그 궤도 안에서 가족들의 기대를 모두 충족하며 살아가지 않기로 했음을 엄마가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나 진짜로 결혼 안 해."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엄마는 의아한 듯이 돌아봤다. “엄마. 나 진짜로 결혼 안 해.” 엄마는 다시, 그 말을 듣지 못한 척을 했다. “아니, 날 좀 똑바로 봐봐. 그리고 정확하게 들어. 엄마 딸은 결혼을 하지 않을 거야.” 어린 시절, 혼날 때면 눈을 피하지 말고 똑바로 마주 보라고 할 때 같았다. 둘의 상황이 반대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나는 천천히 이것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경우는 이 선택이 ‘한국 남자로서의 삶을 충분하게 영위해 온’ 아버지나 다른 가족들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했다. 조금 언성이 높아지고,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일단 거기까지였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누군가는 굳이 가족에게 선언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중요하다. 내가 비혼으로 살아갈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친구나 동료들 말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결혼하지 않은 30대 딸’의 존재를 결함으로 느끼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이, 무엇보다 엄마가 ‘언젠가’의 기대 없이, 내 삶을 보아주었으면 했다. 거기까지가 무리라면 기대를 하더라도 속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었다.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비혼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여전히 ‘나 혼자 살아남겠다’는 비장한 선언으로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혼을 택하는 일은 혼자 살아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법적 배우자와 둘이서, 혹은 한국 사회의 ‘정상 가족’ 단위를 유지하며 살아남겠다는 선언이 아닐 뿐이다. 거기까지는 가지도 못한 대화였지만, 일단 엄마는 내가 ‘어떻게든 되겠지’의 태도로 결혼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엄마.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아.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가 이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어. 왜냐면, 이건 엄마가 만든 사람이 스스로 선택해서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니까.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이 말을 하기 전에 엄마는 앞서 혼자 걸어갔다. “이렇게 해야 팔뚝 살이 빠진다더라”하는 말을 할 때의 팔동작으로, 90도로 만든 팔을 휘저으며 씩씩하게. 엄마는 괜찮을 것이었다. 그리고 괜찮지 않대도 어쩔 수 없었다. 엄마의 삶은 거기, 내 삶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여기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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