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사흘에 걸쳐서 약 30시간 째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의 분량은 원고지 20매지만 나에게는 이미 30매가 넘는 글이 있다. 슬프게도 그 글의 대부분은 여기 실리지 못할텐데, 왜냐하면 중언부언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2018년의 한국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2017년과 비교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흐름을 짚어보고 싶었다. 이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빠르게 밝혀졌는데 사실 이렇다 할 흐름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건들 사이의
<미쓰백>
그 다음에는 사건을 정리해 보았다. 이 부분은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MeToo 고발이 있었다. 그리고 <신과함께-죄와 벌>과 <신과함께-인과 연>은 6개월 텀을 두고 개봉해 올해 각각 천 사백만과 천 이백만 관객을 동원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이 하나 있다면 이 영화 속 눈물의 핵심 정서를 담당하는 예수정 배우에게는 부여된 캐릭터 이름이 없고 그저 ‘자홍모(母)’일 뿐이라는 것인데, 할 말은 당연히 나쁜 말이다. 그 외에는 이전과 비슷한 영화들에 비슷한 배우가 출연해 비슷하게 명절에 맞춰서 개봉한 영화들이 비슷한 관객수를 기록하며 관객의 기억에서 지워진 정도의 일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모두와 비슷하게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올해를 돌아봤을 때 한국 영화와 관련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건은 하나인데, 그건 바로 <미쓰백>의 손익분기점 돌파이다.
<미쓰백>에 대한 지지여론은 개봉 전부터 있었다. 개봉 전 이 영화를 향한 지지는 여성 영화, 여성 서사에 대한 지지에 가까웠다.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배우가 단독 주연을 맡았고 어렵게 개봉하게 됐기 때문에 유의미한 관객 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영화계 사람이 아닌 관객이 손익분기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좀 낯설게 느껴지지만, <미쓰백>이 손익분기점을 넘는 일은 분명하고 유의미한 신호가 될 것이었다. <허스토리>가 좋은 태도를 가진 좋은 배우들의 연기로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관객수(30만 명)를 기록한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다.
좋아하니까
<미쓰백>의 관객동원 추이와 최종 스코어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단관을 열고 거기 영혼까지 보내는 팬들의 힘으로 손익분기점을 향해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2년 전부터 단관 문화를 중심으로 생겨난 영화 팬덤이 (<아수라> 아수리언, <불한당> 불한당원) 남성 캐릭터 중심이 작품이었다면, 올해 관객들의 꾸준한 지지가 이어지고 팬덤이 형성된 작품은 사회문제를 다룬 여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인 <허스토리>와 <미쓰백>이었다. 언론이 앞의 두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의 어떤 면에 팬들이 매혹되는지에 대해 주목했다면, <허스토리>와 <미쓰백>에 대해서는 이 영화들이 여성 영화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지지한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성 영화를 여성들이 지지하는 움직임에 대해 언급하고 그 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 두 영화가 사회에서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고,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두 영화를 둘러싼 관객들의 움직임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팬들이 어떤 당위나 사회적 의미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만 영화를 소비하지 않은 것이다. 팬이 된다는 것은 다른 많은 남성 중심의 영화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영화가 가진 어떤 약점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약점이 내게는 상관이 없거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지지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허스토리>와 <미쓰백>의 팬들은 이 두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열심히 홍보하고 소비했지만, 무엇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기꺼이 팬이 됐다. 이는 여성 영화가 오직 여성 영화이기 때문에 지지해야 한다거나, 여성 영화이기 때문에 완벽해야 한다는 여성 영화를 둘러싼 또 다른 억압에서 벗어난 방식의 소비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올해 초의 암울했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올해를 이야기할 때 어떤 분야이든 #MeToo 고발을 빼놓을 수는 없다. #MeToo 가 터져나오게 된 핵심은 공고한 남성연대다. 특히 많은 문화예술계 남성들이 아무렇지 않게 성폭력의 방식으로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에게 예술가의 권위가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폭력을 예술가의 기행으로 묻어두는 관행이나 예술과 예술인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 역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 참담한 고발이 지나간 뒤,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여성들은 당연히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여성이자 관객으로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은 어떻게 여성을 그리고 있는가? 앞으로 영화들은 어떻게 여성을 그릴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만약 #MeToo 와, 더 나아가 인권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 영화를 소비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국에서도 번지고 있는 <신비한 동물 사전: 그린델왈드의 범죄>의 조니뎁 캐스팅을 향한 보이콧 움직임 또한 이런 고민의 결과다. 영화는 물론이고 예술 역시 현실과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 특히 한국 여성들은 지난 몇 년간 그것을 세계 그 어떤 곳의 여성들보다 잘 알게 됐다.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과 내가 처한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은 그들이 영화를(또 예술을) 선택할 때 역시도 중요한 기준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생각보다 더 많은 수의 여성들에게 말이다.
반드시 여성이어야만
하는 이유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올해의 경우, 여성 주연의 영화들은 사회 문제를 다룬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를 다룬 <소공녀>가 그랬고, 일본군 ‘위안부’ 관부재판을 다룬 <허스토리>가 있었으며, 아동학대를 고발한 <미쓰백>이 있었다. 이는 아마도 주인공이 여성이어야 하는 당위가 있는 영화만 여성 주연으로 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을 남자로 바꾸면 투자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미쓰백>의 경우를 미루어 봤을 때, 영화계에서는 성별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면 당연히 남성을 선택하고, 성별이 상관이 있더라도 여성이 해야하는 이야기는 피하거나 남성이 하도록 바꾸고, 반드시 여성이 해야하는 것으로 보일 때만 제작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만난 여성 주연의 영화들은 꼭 그 역할을 여성이 해야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제작된 영화들이다. 집이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오늘의 취향과 존엄을 지키는 사람(<소공녀>)이 남성일 수 있을 것 같은가? 만약 <미쓰백>의 주연이 남자였다면, 익히 알려져있듯이 크게 흥행했던 어떤 영화의 아류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제작 상황은 당연히 성차별적이고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성 배우들은 여성으로서의 현실과 떨어뜨릴 수 없는 캐릭터를 만나 연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여성 관객들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비록 적은 수지만 여성 영화를 만나고 여성 서사와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고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미쓰백>의 손익분기점 돌파는 100만 관객도 동원하지 못한 한 영화가 올해의 한국영화계에 만든 가장 큰 사건이 되는 것이다.
여성 관객은 바뀌었다
올해에도 백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한국 영화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고, 여성 감독 연출작은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다. 한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 전반에 걸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많은 수의 남자들은 사실상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바뀐 것은 우리, 그러니까 여성 관객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페미니즘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담론 중 하나로 떠오르거나 말거나 수많은 남성 감독들이 지리멸렬한 복제를 반복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동안,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기로 선택한 영화를, 관객들은 발견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여성 관객들은 익숙한 남성 서사 대신 여성 서사에서 매력을 느끼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여전히 남성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언론들이 <창궐>이 왜 380만인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는지 궁금해하는 사이, 답을 알고 있는 여성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미쓰백>을 보고 이 영화를 지지하며 입소문을 내고, 단관에 영혼을 보내 자리를 채워준 영화의 팬들은 <미쓰백>이 기어코 손익분기점을 넘는 광경을 보고 같이 경험했다. 이런 체험을 한 관객들도, <미쓰백>이 관객을 모으는 과정을 지켜본 영화계도,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 중 많은 수는 여성의 이야기가 제작되고 만들어지고 개봉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만들기를 선택하게 될지 모른다. 사실 만들고 있다. 올해 주목받은 대부분의 독립영화 감독은 여성이었다. 여성들의 세상은 바뀌고 있다. 작년과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2018년 한국 영화계에서 바뀐 단 하나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그걸 모른다면, 그냥 거기 있어.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