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하기 좋은 날 10. 비혼의 명절, 그다음

생각하다결혼과 비혼

비혼하기 좋은 날 10. 비혼의 명절, 그다음

윤이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아휴, 언니. 요새 누가 그런 말을 해! 그런 얘기 하면 애들한테 욕 먹어.

막내 이모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엄마가 나의 사촌 동생, 그러니까 막내 이모의 큰아들이 서른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결혼 생각은 없대? 연애는 좀 해?”하고 물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말이다. 이모는 알아서 나의 근황에 대해 묻지 않았건만, 굳이 그런 질문을 하다니. 지난 몇년 간 명절을 우리 가족과, 결혼한 오빠네 가족 정도만 함께 지내다가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 식사를 하려다보니 또 깜짝 잊으신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되새겨 줄 타이밍이다.

‘취업은? 연애는? 결혼은? 애는? 둘째는? 이거 다 안돼.’

그러면 엄마는 어른들이 궁금해할 수도 있지, 그것도 못 물어보면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느냐고 할테고, 나는 그런 대화는 안 하는 게 낫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딸은 몰라도 동생의 말에는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이모의 말에 엄마는 대답했다.

그러게, 요새 애들한테는 그런 거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니라더라. 우리 딸도 매번 그러더니, 나도 이제 안 물어봐야지.

요새 애들한테만 안 물어봐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제 안 물어보겠다니, 이 정도면 정말 큰 변화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 가기만 하면 요새 하는 일은 무엇이고 그 일로 돈은 좀 괜찮게 벌고 있는지, 도대체 해외는 왜 그토록 자주 나가는지, 연애는 하는지,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인지를 만나는 친척 어른의 수만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저는 비혼이라서요.’라고 말한다면, 일단 비혼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며, 결혼을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에 대해서 온갖 예의없는 추측과 힐난과 아무말을 들어야 할 터 였다. 여기서 벗어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런 말을 할 사람들을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이라는 걸, 만나지 않게 되고서야 알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한때 막내에 딸인 주제에 주제 넘는 소리를 한다며 큰 비난을 받았던 ‘각자의 형제자매가 보고싶다면 각자 움직이도록 하자’는 나의 제안이 모두의 사정에 의해 자연스러운 현실이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명절에 큰집에 모이지 않고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쓸데없는 오지랖과 참견을 들을 일은 현저히 줄어들게 됐다. 사촌의 아내들, 곧 성씨가 다른 여성들이 생판 남이나 마찬가지인 남자들의 한끼 식사를 위해 동원되는 일도 없어졌다. 여러모로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다들 나를 혼냈던 일은 잊고, 지금의 상태가 이전보다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변하고 나자 명절이 그저 며칠의 휴가일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도 노동도 없고, 같이 쉬니까 가족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그런 날.

이번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것은 최근 이사를 한 나의 새로운 집에 대해 묻는 큰 조카 뿐이었다. “고모 방은 완전 커요? 거기 아이패드도 있어요?” 이런 질문이야말로 진정한 근황이 아닌가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은 생애주기에 따라 반사적으로 나오는 질문들이 없는 명절이란, 정말 얼마나 쾌적한 것인지.

몇년 째 명절이면 내게 주어진 지면을 통해서 명절 노동에 대해서, 하지 않아야 할 질문들에 대해서 말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이 다음에 대해서 물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 억지로 만나 서로를 이상한 방식으로 할퀴고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는 대신,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 연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말이다. 지금까지 비혼 여성의 명절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부정적인 경우는 홀로 동떨어진 사람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기혼 여성들이 명절 노동을 할 때 해외 여행을 떠나는 식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으로 그려져왔다. 이전에는 나도 아예 이 명절 자체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상이 비혼인 이들에게는 가족, 그러니까 혈연으로서의 가족만이 아닌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의 공동체라는 의미로서의 가족 없이 대체로 혼자이리라는 편견이 들어간 반 쪽 짜리 상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혼의 삶에 대해서도, 명절에 대해서도 다른 상상을 하고, 또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저 비혼이든 아니든, 수확과 풍요의 기쁨이,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연휴를 각자의 방식으로 누릴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방식들을 존중하기를. 이제 그 다음에 대해서, 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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