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인상적인 제목의 책은 바로 <혼자 사는데 돈이라도 있어야지>다. 책 제목을 보는데 갑자기 커진 눈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만화 속 여성 캐릭터가 되어 외쳐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건 사야 해!” 따뜻함이 흘러 넘치는 위로의 말들이나, 자신을 먼저 돌보라는 독려에는 늘 시큰둥했던 내가 유일하게 반응한 제목이다. 그렇다. 혼자 산다면, 다른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
프로돈돈러
처음 SNS 프로필에 ‘프로돈돈러’라고 써놓았던 때만 해도 반쯤은 장난이었다. 서울에 붙어있으나 개발이 제한되어있어 모든 것이 애매하고 동네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사는 내내 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왔음에도, 이상하리만치 돈 문제에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다. 숫자를 마주하면 일단 뇌가 리셋되는 기분이 드는 뼛 속까지 문과생에 어설픈 반자본주의자였던 대학생 시절에 갖게 된 태도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프리랜서로 시작했기 때문에 고정적인 수익이 보장되지 않았던 탓도 있다. “다음 달 수익이 0원일 수도 있어서요”가 첫 책의 메인 카피였으니 말 다 했다. 고정수익을 만들 방안은 프리랜서 십년 차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알아내지 못했으므로, 나는 고정 지출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만 돈 관리를 했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대책도, 미래에 대한 준비도 없었다. 그저 당장은 내 노동의 값을 제대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어딘가에 가서 돈 타령을 한다면 대부분 그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삶에서 비혼이라는 기준을 명확하게 한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싱글이라고 하는 범주의 삶에서의 돈과 비혼으로 확실한 상태 변경을 한 뒤의 돈은 그 의미가 달라진다. 앞서 미혼과 비혼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언젠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결혼’의 존재 유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경제적 공동체가 되어줄 배우자의 존재로 인해 미혼의 현재 경제적 상황은 계속 결혼의 그날이 오기에 앞서 유예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혼자인 내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 세워도 되는 인생 계획의 이전 상태에만 머무르는 것이다.
내게는 결혼보다는 탈조선의 꿈이 그랬다. ‘어차피 언제 어떻게 나가게 될지 모르니까’라는 모호한 기대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할 계획을 유예시켰다.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이민이나 해외 취직을 준비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일단 닥친 일을 하며 오늘을 살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다보니 학비나 유학 생활에 필요한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합격증만 받아들고, 절반의 가능성 마저도 유예시키게 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혼자서 살까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는 사실의 인정, 혹은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결심은 단순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바꾼다. 일상을 바꾼다. ‘어떻게든 되겠지’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 걸어나온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1순위는 바로 돈이었다. 말 그대로 혼자 산다면 돈이라도, 아니 돈이야말로 있어야 했다. 이건 단순히 ‘싱글녀의 재테크’ 같은 홍보문구를 단 책을 읽는다거나, 갑자기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을 갖는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63만 3천원을 버는 한국 여성으로서, 우리의 몫을 어떻게 되돌려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는 의미다. 왜 부동산이, 주식이, 투자가, 돈이 남자들만의 전문영역이 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는 의미다. 이 사회의 평균과 통계 안에서, 앞으로 결혼해서 가정경제에 편입될 가임기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현재 어느 정도의 돈을 벌고 어느 정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는 개인이 좌표 상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보게 된다는 의미다.
누군가 비혼이 어떻게 그 자체로 정치,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한 적이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남성 배우자, 가부장의 그늘을 인생에서 완전히 걷어내고 걸어가기로 한 이들이 처음으로 직면하게 되는 것은 결국, 대개는 여성으로서 나 자신이 얼마나 여러가지 면에서 취약한 존재인가를 직면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럼에도, 그 길을 간다고 할 때, 우리에게는 노잣돈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