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섹스 앤 더 시티>의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다시 볼 일이 있었다. 친구의 베이비 샤워 파티에 갔던 주인공 캐리가 아끼는 구두를 잃어버린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친구들이 싱글인 캐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게 벌어진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캐리는 ‘나 자신과의 결혼식’을 선포하고 결혼 선물로 친구에게 똑같은 구두를 받아낸다. 10년도 훨씬 전에 본 에피소드인데 모든 장면이 기억나고 새삼스러울 만큼 재미있는 와중에, 오래 전 한 친구가 이 에피소드의 캐리에 대해 말했던 게 생각났다. “저 독한 년.” 문득 내가 지금 기혼의 친구들에게 축의금을 (돌려) 받는 파티를 연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궁금했다.
"저 독한 년."
이제 나도 삼십 대 중반, 그때의 캐리 나이가 되었다. 물론 나에게는 뉴욕의 아파트도 신발장을 가득 채운 명품 구두도 없으며, 캐리가 일주일에 칼럼 한 편 쓰는 일로 도대체 어떻게 월세와 생활비와 그 모든 명품을 감당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캐리와 나의 같은 점은 어찌 됐건 맥북으로 뭔가를 써서 먹고 산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삼십대 싱글 여성이라는 점. 비혼이 아니라 싱글이라고 쓰는 이유는, 모두들 알다시피 캐리는 후에 미스터 빅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비혼의 길을 올곧게 걸어간 것은 사만다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계산이 복잡해지는 캐리의 셀프 결혼식보다는, 제대로 혼자인 사만다의 환갑 파티야말로 진짜 모두에게 축하를 받을 일이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여하튼 캐리의 나이가 되었지만 내가 사는 곳이 2018년 한국인 바람에 지금 내 주변의 비슷한 나이대 친구, 동료 중 결혼을 지상 목표로 전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는 결혼했고 또 일부는 안 했지만,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또 적지만 일부는 나처럼 비혼으로서의 길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결혼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라는 상태로 접어든 친구들이 많아 결혼식에 갈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낮에 시간이 있을 테니 드레스 투어에 따라와 달라거나, 스튜디오 촬영에 따라와 휴대폰 스냅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도 들을 일이 거의 없어졌다. 자연히 축의금이 나갈 일이 없어졌고, 그러자 오히려 없는 살림에 경조사에 나가는 지출 비율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해외에 나가 있으면 나는 다 필요 없고, 그게 제일 좋더라고. 경조사 안 가도 되는 거.
40대 중반으로 비혼의 삶을 사는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계획된 삶의 여정 속의 기쁨의 날보다는, 예기치 못한 돌부리처럼 들이닥쳐 마음을 넘어뜨리는 슬픔의 날에는 반드시 함께 머물며 마음을 표하려고 해왔기에 조사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마도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경사보다는 조사가 많은 날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순리와 운명대로라면 슬픔을 건너가야 할 날이 내 삶에도 꽤 많이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인들의 결혼식, 심지어 돌잔치에 대해서라면, 너무 많은 돈을 써왔다는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오빠가 결혼했을 때야 처음으로 다들 받은 돈을 수기 혹은 무려 엑셀로 기록하고, 받은 만큼 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수많은 엑셀 파일 속 내 이름 옆에는 적게는 오만 원, 많게는 그 열 배가 되는 돈이 적혀있을 것이다. 그중 또 많은 이들과 다시는 연락할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뷔페라도 맛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한심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역시 파티를 열어 뷔페보다 나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축의금 반환식을 여는 것이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느 날 친구가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 유학을 갈 거라면 그 전에 반드시 축의금을 돌려받아 학비에 보태고, 그게 아니라면 이사할 때 집들이를 하면서 축의금만큼의 돈을 받으라고 했다. 자신은 이미 결혼을 했는데도, 내가 그 돈을 못 받을 생각을 하니 그렇게 아까웠다고. “독한 척은 혼자 다 하고 마음은 여린 년.” 맞다. 캐리에게 욕했던 그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