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을 활용해 성차별을 반박해보자 2.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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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활용해 성차별을 반박해보자 2. 경제학

윤자영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편집자의 말 : 인정하자. 현대 한국 사회에 태어난 우리는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살아 본 적이 없다. 성차별은 마치 미세먼지, 방사능, 연교차처럼 현대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살아야 할 환경 조건으로 굳세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성차별을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잘못된 상식도 일상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핀치에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모셔 전공을 활용해 성차별의 ‘근거’가 되어 주는 거짓말을 폭로하고자 한다. 두 번째 순서로 충남대학교 윤자영 경제학 교수가 아직도 여성이 과도하게 부담하고 있는 가사노동의 가치 산정을 파헤친다.

 

가사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산정되고 있을까?

여성주의 경제학자들은 GDP(국민총생산)가 한 국가의 국민 복지 수준과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로 썩 좋은 지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GDP 지표는 보육교사가 아이를 돌보면 생산적인 활동이지만, 엄마가 아이를 직접 돌보는 일은 생산적이 아니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UN은 이러한 GDP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가계생산 위성계정, 즉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산정할 것을 권고해 왔다. 우리나라 통계청도 최근 가계 생산 위성 계정을 작성했고 2014년 가사노동가치가 GDP 대비 24.3%이고, 남성과 여성은 각각 24.5%, 여자는 75.5%에 해당하는 만큼 기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산정할까?

시간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사노동에 쓰는 ‘시간량’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생활시간사용 조사'를 통해 개인이 하루에 어떠한 행동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사용하였는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다.

개인이 하는 다양한 행동 가운데 어떤 행동을 무급 가사 노동으로 볼 것인가? 무급 가사 노동을 정의하고 측정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제 3자 원칙’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아이 밥을 먹이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하자. 그 행동을 내가 직접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자를 고용해서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있다면 그것은 ‘노동’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로 무급 가사 노동 시간 측정은 생활시간조사 자료가 제공하는 구체적인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생활시간조사는 ‘행동’에 대해서 조사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행위들은 자녀 양육 시간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밥 짓기, 설거지, 아이 먹이기, 씻기기, 재우기 등의 명시적인 형태의 무급 가사노동은 가사노동 시간에 포함되지만, TV를 보면서 아이가 틈틈이 잘 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호·감독하는 무급 가사노동은 가사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생활시간조사가 무급 가사노동을 완벽하게 측정하려고 해도 무급 가사노동 가치의 크기는 실제보다 작게 추정될 수밖에 없다.

임금

무급 가사 노동에 투입된 시간을 측정하고 나면 시간량에 시간당 가치를 곱해 가치를 산정한다. 시간당 가치는 임금을 적용하는데, 다양한 방법에 따라 누구의 어떤 임금이냐를 사용하는지에서 차이가 있다. 크게 나누면 기회비용법과 대체비용법이 있다. 기회비용법은 '무급 가사노동을 하느라 쓴 시간을 그 대신 돈을 버는 데 썼으면 얼마나 벌었을까?'라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기반한다. 이 방법은 그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급 가사노동을 수행한 사람이 일을 했더라면 벌었을 시장 임금을 가치평가의 잣대로 삼는다. 무급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이 동시에 시간당 10,000원을 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무급 가사노동 1시간의 가치는 10,000원이 된다.

문제는 무급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이 전업주부와 같이 돈을 벌고 있지 않을 때이다. 이럴 경우는 그 사람의 학력, 경력, 연령 등을 고려하여 가상의 임금 수준을 구한다. 경제학자들이 비취업자의 잠재 임금 수준을 구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은 무급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기회비용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무급 가사 노동의 실제 생산성, 즉 가사노동을 얼마나 잘하는지와 상관없이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대체비용법은 '무급 가사노동을 내가 직접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켰을 경우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라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다. 이 방법은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대체 서비스의 가격을 가치평가의 잣대로 삼는다. 내가 직접 1시간 동안 청소하는 대신 청소원에게 1시간 동안 8,000원을 지불하고 청소 서비스를 구매했다면, 나의 무급 가사노동 1시간의 가치는 8,000원이다. 대체비용법은 무급 가사노동을 얼마나 잘하는지, 즉 생산성에 따라서 대체 서비스 인력의 숙련의 차이를 감안하여 전문가 대체비용법과 종합 대체비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전문가 대체비용법은 요리하기, 청소하기, 아이 돌보기를 각각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요리사, 청소부, 아이돌보미의 임금 수준을 가치평가의 잣대로 사용한다. 무급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이 전문가 수준으로 일을 잘 수행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종합 대체비용법은 요리하기와 청소하기 등 모든 무급 가사노동을 일괄적으로 수행하는 직종 종사자의 임금을 적용하는 것이다. 입주 아이돌보미와 같이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모두 하는 직업도 있으나, 무급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모든 개인이 입주 아이돌보미와 같은 성격의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 대체비용법이나 종합 대체비용법 가운데 어느 하나의 방법만을 적용하여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대신, 다양한 임금을 적용하여 복수의 추정치를 제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논쟁

어떤 방법이든 결국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로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을 적용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임금 결정은 근로자의 인적자본, 일의 특성, 차별, 구인자와 구직자의 수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노동시장에서 가사노동 관련 종사자의 임금 수준은 보통 낮다. 여성의 일은 자연적이고 숙련이 필요하지 않다는 성차별적인 임금 결정 과정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동일한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도 그 일에 종사하는 여성은 많고 남성은 적기 때문에 남성의 임금 수준이 더 높다.

이번 통계청의 가사노동 가치 평가 방법 적용은 다소 문제가 있다. 통계청은 생활시간조사 자료를 사용하여 하루 동안의 무급 가사노동 시간이 여성 214분, 남성 53분이라는 시간량을 계산했다. 여기에 대체비용법을 사용하면서 남녀의 무급 가사노동과 유사한 직종의 임금을 곱해 주었다. 즉 전문가 대체비용법을 적용했다. 

남자의 가사노동이
여자의 가사노동보다
비싸다고?

문제는 여기에 남성과 여성의 임금 수준을 구분하여 적용했다는 점이다. 즉,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식사 준비에 1시간을 쓴 데 대해, 통계청은 마치 남성은 자신의 무급 가사노동을 남성 요리사로 대체하고 여성은 여성 요리사로 대체할 것처럼 가정해 버린 셈이다. 굳이 직종 임금 조사 자료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남성 요리사가 여성 요리사보다 훨씬 임금 수준이 높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대체비용법은 무급 가사노동 자체의 생산성을 고려해야 한다. 대체인력의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생산성이 높다고 믿는다면, 가사노동의 생산성이 높은 사람의 무급 가사노동 시간은 생산성이 낮은 사람의 시간보다 높은 임금을 적용해야 한다. 보통 가사노동에서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생산성이 높다는 데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사노동 생산성은 무시하고 단순히 성별로 분리해서 임금 수준을 적용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의 무급 가사노동 시간에 여성과 남성의 시급을 각각 곱해 연간 단위로 계산한 결과, 연간 1인당 무급 가사노동가치는 남성 346만9천원, 여성 1076만9천원으로 평가되었다. 무급 가사노동 시간의 여성 기여도는 4배 가량 되는데, 화폐 가치로 환산하니 3배 정도로 축소되어 버렸다.

왜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산정해야 하는가

무급 가사노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화폐 가치로 환산하기 전까지 무급 가사노동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노동인지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무급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개인은 소득 상실이라는 경제적 불이익을 겪는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 그리고 사회에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무급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 평가에 대해 여성주의 경제학자들 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무급 노동의 경제적 가치 평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급 가사노동 수행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남성은 시장노동에 참여하고 여성은 무급노동을 담당하는 성별 노동 분업 구조를 재생산하고 강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또한 가사노동에 특화하는 전업주부를 경제적으로 독립시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무급 가사노동 가치평가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GDP에서 무급 가사노동을 배제하는 것은 가사노동이 비경제적인 활동이라는 통념을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급 가사 노동에 화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가정의 생산적 활동을 인정하고 경제적 기여를 공식화하게 되는 효과를 낳는다. 뿐만 아니라 무급 가사노동이 노동력을 재생산하지만 그 비용을 지금까지 대부분 여성이 부담했다면, 비용 부담의 남성과 여성 간 형평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경제적 가치 평가가 필요하다. 

무급 가사 노동이 경제적 복지와 삶의 질에 미치는 역할을 제대로 인정하고 분석하는 것이 곧바로 여성의 무급 가사 노동 수행을 강제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급 가사 노동의 생산성과 여성의 기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우리 경제의 발전과 행복 수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 평가와는 별개로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회와 성과를 누리도록 하는 것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를 개선시키는 데 똑같이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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